[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사연) 

우울증, 경계선 인격장애, 식이장애 등의 병명을 가지고 있는 환자의 연인으로서 5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환자는 일반인인 제 기준으로 병세가 상당히 중하여 언제나 죽음을 말하며 삶에 의지가 없고, 죽을 수 있다면 타살도 마다하지 않으며, 지방조직이 보이도록 열렸던 자해 흉터가 겹쳐져 개수를 세기 힘들고, 실제 자살 연습만 제가 아는 것만 십 수차례이며 한 번은 병원 의료진분들도 늦었으면 사망했을 거라는 상태에서 응급처치로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환자가 살아있는 이유는 직접 말하길 자신이 죽으면 슬퍼할 가족들과 글쓴이인 저를 생각해서, 살려두고 싶어 하는 저희의 의도를 생각해서이고 그것마저도 언제나 흔들리고 억지로 유지되는 상태라고 합니다. 실제로 몇 번이나 제가 진땀을 흘리며 설득하고 막아서야 할 만큼 위태롭고 언제 자살에 성공해버릴지 모르는 그런 나날들을 보내왔습니다.

 

제 고뇌는 환자가 병원의 치료 권고를 무시하는 데에, 더 심각하게는 환자의 부모님이 환자의 치료에 매우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는 데에 있습니다. 

환자는 치료를 싫어하는 이유로 집에 돈이 없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치료가 별로 효과가 있어 보이지 않아서, 상담자가 마음에 안 들어서, 너무 피곤해서, 너무 멀어서 등을 듭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상담치료를 매주 설득해야 5개월 동안 3번 정도 출석합니다. 치료받을 센터가 조금만 멀면 예약도 잡지 않습니다. 아침 일찍 보는 진료는 자느라 질문에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애당초 환자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계속 설득하고 있고, 일단 어느 정도 듣기는 합니다.

 

저의 생각에 문제는 환자 부모님께 있습니다. 단호하게 치료를 권하기는커녕 설득도 잘하지 않습니다. 환자가 마음가짐이 되어야 상담을 해도 제대로 답변을 하지 억지로 가면 거부감만 심해질 거라고 하며, 현재 다니는 대학병원에서도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억지로 치료를 받게 할 필요는 없다"라고. 이 부분은 저도 의사 선생님께 직접 들었습니다. "환자 의지에 반해서 치료하는 것보단 올 마음이 들 때 오는 게 낫다"라고. 

해당 병원 응급실을 수차례 방문하고 죽을 고비도 넘기고 폐쇄병동 입원 경력도 있는 환자에 대해 담당 의사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게 맞는 걸까요?

환자는 치료 의지가 없습니다. 부모님께선 설득도 강행에도 의지가 없습니다.

 

5년째 약만 먹고 치료는 제대로 받은 것이 없습니다. 5년 동안 바뀐 건 맞는 수면제를 찾아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환자는 계속 죽음을 갈망합니다. 최소 열량만큼도 먹지 않고 폭식과 구토를 반복합니다. 주변인들을 사랑하면서도 믿지 못하고 증오하고 다시 미안해합니다. 치료가 아니라 생존을 속삭여 주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정말 환자가 내킬 때만 치료받는 것이 정답인가요?

제가 따로 정신과를 내원해 이 부분에 대해 상담받아 볼까도 고려해 보았지만, 병원은 환자분들을 위한 장소이기도 하고, 의사분들께 짧은 진료시간에 제대로 얘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 질문내용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저의 정신상태에 집중하시진 않을지 걱정되어 실천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내원해보는 것이 좋을까요?

저 자신도 제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위치에 있는 것을 알고, 도움을 줄 수 없어 매우 고통스럽지만, 일상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가슴 저림 같은 신체 증상도 없어 개인적인 병원 진료는 딱히 급한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을 도울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몸이 아파도 행복할 순 있지만, 마음이 아프면 행복이란 것이 있을 수 있는 걸까요? 옆에서 지켜보는 주변인들이 이렇게 힘들다면 그 속에 있는 환자들은 대체 무엇을 감당하고 있는 걸까요?

그들에게 도움을 주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분들께 언제나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는 말씀해주신 대로 섭식장애 및 우울이 동반되는 경우가 흔하고, 치료에 협조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언급해 주신 상황을 보면 자살 가능성이나 식이장애가 심각해 보이는 상황입니다.

치료에 적극적이지 않은 부모님을 보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겠지만, 보호자들도 오랜 기간 증상이 지속되면서 지쳐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치료와 관련하여 현재 약물치료 외에 정기적인 상담치료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는 언급해 주신 대로 본인의 의지가 없는 경우에는 쉽지 않습니다. 정말 자해나 자살 가능성이 높은 상태라면 보호자 동의하에 입원하여 치료를 진행하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환자의 주변 사람들은 환자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실망하거나 지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환자는 자신이 버림받거나, 사람들이 떠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증상이 나빠지게 됩니다. 감정적으로 공감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곁에서 묵묵히 있어 주고 떠날 것 같은 불안감을 덜 느끼게 생활적인 면에서 일정한 틀을 만들어서 안정감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인이 안정감을 찾고 증상이 진정되면 치료에 대한 필요성을 돌아볼 여유가 생깁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곁에서 환자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지치지 않고 환자 곁에서 공감하고 지지해주기 위해서는 사연 주신 분의 정신건강도 스스로 돌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건강한 상태로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환자도 안정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해보면 결국 상담과 관련된 치료는 본인의 동기가 중요합니다. 자해나 자살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 되면 보호자 동의하에 입원하여 치료를 진행해 볼 수는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주변 사람들의 일관성 있는 모습과 지지적인 태도가 중요한데, 경계성 환자를 가까이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연 주신 분의 정신건강을 우선으로 챙기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족한 답변이었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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