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제 증상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 글 남깁니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 중이지만 여기서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서요(익명이라).

다름이 아니라 제가 무언가를 할 때 안될 것 같거나 마감이 임박하거나 시험 치기 전이나 이럴 때 일에 전혀 집중을 못 합니다. 해야지, 해야지 생각하며 엄청나게 불안해하면서도 계속 반복적으로 페북에 들어가 새로고침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하다못해 뉴스를 보기도 합니다. 그때 충동적으로 약한 자해를 하기도 하고요. 

이게 말로는 안 심각해 보이는데, 작은 과제, 약속, 큰 시험 등에서 다 이러니 미칠 것 같아요. 시험 전날에는 매우 불안해하며 노트북을 하면서 밤샌다고 보면 됩니다. 가끔은 약속을 다 취소하고 며칠간 안 씻고 침대에서만 있기도 합니다.

이러니 미래를 상상하면 두렵기만 하고 스스로에게 믿음도 없습니다. 내가 나를 봐도 너무 싫은데 상대방은 어떨까요? 그 생각을 하며 상대방 눈치를 보고 약속을 잡고 못 지키니 또 자책하고..

너무 답답해서 진료를 받고 있고 두 달이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렉사프로정을 받아서 35까지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웰부트린 300mg을 먹습니다. 제가 질문드리고 싶은 건 저 같은 증상을 약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해서 의지의 문제인데... 약을 먹어도 노력해야 하는 걸 압니다. 근데 변명 같지만 노력이 안돼요.... 병명도 없는 이런 게 치료가 될까요? 그리고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고 스스로가 답답해서 자해했는데 이런 부분을 말씀드려야 하나요...? 긴 글 죄송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저는 사연자분이 의지가 부족해서라기보다, 오히려 너무 잘하려는 마음이 지나쳐서 불안하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하는 일들이나 우리의 삶이 완벽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내 생각대로 완벽히만 이루어지는 일들은 열에 하나가 될까 할 정도입니다. 그것은 나의 의지나 노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삶에 변수가 너무 많아서 우리가 모두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열심히만 하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될 거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것은 내 노력이 부족하다는 증거야. 좀 더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야.'라는 생각이 숨어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매사에 '지나치게' 완벽하려 노력할 것이고, 결과가 나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면 부족한 자신을 비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반복되다 보면, 즉 완벽하지 못할 때마다 좌절하고 스스로의 의지 부족을 비난하다 보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나의 마음에 쏙 드는 결과를 마주하는 것은 아주 가끔이고, 무엇을 할 때마다 스스로를 비난하는 상처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또다시 완벽하지 못해 상처 받지 않을까'란 불안이 마음속에 자리하게 되어, 급한 일이 있어도 미루게 되고 외면하고 싶게 됩니다.

 

한 가지 비유를 들어드리겠습니다. 목이 엄청 마를 때는 물을 어떻게 마셔야 할까요? 열심히? 팔 각도를 잘 계산해서? 물병을 최대한 꽉 쥐어서? 아닙니다. '그냥' 마셔야 할 것입니다. 삶의 일들 중 많은 부분들이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해서 먹지도 자지도 않고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친구와 잘 지내기 위해서 나의 취향이나 가치관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냥'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등산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산을 오르기 전에 그 산이 몇 미터인지, 등산로는 어떤지 알아볼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등산로 초입부터 '내가 이 산을 잘 오를 수 있을까? 중간에 다치면 어떡하지? 생각보다 너무 높으면 어떡하지?'를 고민만 한다면, 아마 한 걸음도 옮기기 힘들 것입니다.

'오늘 내가 죽더라도 반드시 이 산을 정복해야 하고, 그것만이 맞는 방법이야!'라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 '오늘 갈 수 있는 만큼 차근차근 가보자. 정상을 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산을 오르는 길은 아름답잖아.'라는 관점으로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진료에 관해서는 담당 선생님과의 면담이 가장 정확하기에 간결히 답을 드리겠습니다. 자해를 비롯하여, 어떠한 생각이든 마음이든 주치의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치료에는 가장 도움이 됩니다.

자해를 말씀하기 꺼린다는 부분에서, 이미 글쓴이님께서 그러한 행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유 없는 마음이란 없고, 비난받아야 할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현상이 일어날 뿐이고,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에 방해가 된다면 왜 그런지,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전문가와 이야기 나누어 보시는 것이 사연자분께 가장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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