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남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50대 여성입니다. 과거를 찬찬히 기억해보면 제가 구석진 곳이나 좁은 공간에 가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아서 그럭저럭 별문제 없이 잘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40대 이후부터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많이 불안합니다. 예를 들자면 봉고차 맨 뒷좌석을 절대 못 탑니다. 창문도 열 수 없고 언젠가 한번 뒷좌석에 앉았다가 문을 닫는 순간 소리를 지르면 내린 적도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을 경험했습니다. 옷을 찢을 정도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통, 당장 고속버스를 세워 내리고 싶지만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가슴을 치고 옷을 부여잡으며 혼자 발악을 했죠. 그래서 남들 다가는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 합니다. 

문제는 좁은 공간, 봉고차 뒷좌석, 구석진 곳, 고속버스, 비행기, 이런 고통도 고통이지만 가슴이 터질 듯 괴롭고 힘든 건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증세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바로 자녀들과 떨어지는 것입니다. 큰애를 기숙사 고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이전에 나타난 가슴 터질듯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며칠 서운한 정도가 아니라 고속버스에서 겪었던 그런 가슴 터질듯한 고통을 느낍니다. 아무리 다잡아 보고 생각을 달리해도 이 고통으로 너무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제가 겪는 이 모든 게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도 궁금하고 도움을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일상적인 상황과 늘 마주하는 공간이 공포가 되는 경험이 얼마나 불편하실까요. 글에서 질문자님의 절박함이 느껴져 안타깝습니다. 

질문자님이 겪고 계시는 경험은 공황장애 혹은 광장공포증(agoraphobia)에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보입니다. 질문자님의 경우 단순히 특정 상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여러 장소와 상황에서의 일반화된 불안이 엿보입니다. 특정 진단으로 범주화하는 것보다 전반적인 불안의 수준이 상당히 높은 상태로 이해하시면 될 듯합니다. 

증상의 시작이 사연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있지 않은데, 과거부터 구석진 곳이나 좁은 공간에 가는 것이 힘드셨다면 꽤 오랜 기간을 거쳐 쌓여왔고, 이제는 특정 장소뿐 아니라 불편한 상황이나 감정에도 고통이 나타나는 모습도 보입니다. 말씀하신 좁은 장소, 밀폐된 공간, 그리고 자녀와 관련해 나타나는 신체적 반응들 모두 같은 맥락에서 나타는 불안의 한 유형인 것 같습니다.

 

과도한 불안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과연 자신이 그 상황과 장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 단계입니다.

좁은 곳에 대한 공포를 가진 이들은 대개 좁은 곳에서 작은 신체 증상들이 촉발 요인이 되어, 이를 ‘끔찍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를테면, 좁은 공간에 들어서면서 느낀 답답함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이 답답함이 심해져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것’이라거나, ‘이러다 쓰러지거나 질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좁거나 밀폐된 공간은 누구에게나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따라서 가슴이 답답한 느낌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경험이지요. 하지만 이런 신체 증상들이 ‘급격히 악화되어’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신체증상에 대한 극단적인 해석이 불안과 공포를 유발합니다. 즉, 상황과 장소에 대해 자신이 가진 생각을 살펴보고, 극단적으로 왜곡된 부분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습관화된 불안은, 상황을 마주하자마자 자동적으로 몸과 마음에서 반응이 나타나게 합니다. 따라서, 그 기저에 숨은 생각을 살피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아마 질문자님의 경우 또한 그러할 테고요. 

 

신체반응들에 대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지식을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체 증상들은 정상적인 생리반응의 범주에 속하며, 대개는 그리 긴 시간 유지되지 않고 ‘지나가는’ 반응입니다. 신체 증상들에 대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느낄 수 있다’는 식의 합리적이고 타당한 반응을 할 수 있다면 증상들은 불편감이 있더라도 이내 시간이 지나 사그라들게 됩니다.

하지만 반응이 나타나는 순간, 이를 끔찍하고 두려운, 이질적인 반응으로 여긴다면 증상은 한층 더 악화되고 신체증상 또한 더욱 격렬해지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이 겪는 증상의 본질을 알기 위한 노력이 증상을 경감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불안은 생활 범위를 좁아지게 합니다. 질문자님처럼 안타깝게도 비행기, 기차를 통한 여행은 꿈도 못 꾸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증상이 나타날 때 신체적으로 과도하게 불편할 수 있지만, 그 증상이 계속되는 게 아니라 일시적이라면, 그리고 그 증상이 나타났다 할지라도 신체적으로 후유증이 남지 않는 정상적인 생리반응의 범주에 속하다면 증상 자체나 증상의 결과에 대해서 그리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요? 최악의 경우는 잠깐 불편해지는 것, 그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게 될 테고요.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던 끔찍한 결과는 근거 없는 왜곡된 생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조금씩 자신이 불편한 상황들에 직면해나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한 번에 먼 곳을 여행 가기보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삶의 반경을 넓혀나가는 것이지요. 직면을 반복하면 불안에 내성이 생기며, 불안한 상황에 대한 해석 또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두려운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변해나가는 과정이지요. 

 

대략적인 극복 과정을 말씀드렸지만, 결국 이는 단편적인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증상과 경험들에 대해 전문가와 상의하여 정확한 평가와 적절한 도움을 구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위에 말씀드린 노력은 극복 과정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며, 본인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부디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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