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신림 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제가 정말 믿던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저는 그 애를 믿고 그 애가 제 친구인 것에 감사했지만, 걔는 아니었나 봐요. 제가 귀찮았다고, 솔직하게 걔가 말하고 저희는 연을 끊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래도 안 떠난 친구들이 있고, 목표가 있으니 잘 버틸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특히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가장 분주한 시기인 지금에는 그 친구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조차 아까울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제 스트레스받을 때 같이 놀러 갈 친구, 잠들 때까지 연락하며 이야기하던 친구, 저를 이해해주고 다독여주고, 저의 버팀목이 되어주던 친구를 잃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그러다 학업에 대한 집중력도 점점 떨어지고, 밤에 잘 때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고 숨 쉬는 것이 버거웠습니다. 그리고 항상 나쁜 생각이 들고, 자살까지 생각해보고 스스로 목을 졸라 보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싶지만, 그 애의 ‘친구가 아닌 사람’에 대한 냉정한 모습을 본 적이 있어서인지 쉽게 연락을 보낼 수도 없었습니다. 제 친구들은 잊으라고 하는데, 쉽게 잊히지 않네요.

너무 제가 믿었던 탓일까요. 시험을 준비하려고 몇 년을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는데, 시험을 앞두고 이렇게 우울증에 빠지면 제 모든 목표는 무너져 내립니다. 그래서 제 미래에 대해 두려워지고, 그래서 더 우울해집니다. 이 우울함에 끝이 보이지 않고 계속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앞날이 막막하고 죽음만이 제 삶의 도피 방법이 될 것 같아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면 꼭 답장 주세요 너무 힘들어서 못 견디겠어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시험과 관련된 부담과 관계가 멀어진 친구 문제로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해주신 것 같습니다.

중요한 입시는 항상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과정입니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사연을 주신 분처럼 집중력이 떨어지고, 답답하고, 가슴이 뛰는 것 같은 증상들이 생기고 일반적으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가라앉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신체증상이 심해지고 불안이나 초조한 마음이 심해지면서 평상시와 같이 차분하게 공부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뇌에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되면, 평소보다 더 나쁜 일을 상상하며 안정을 취하지 못할 정도로 불안해하는 일이 생기게 되는데, 아마도 사연 주신 분도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친구와의 관계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나쁜 미래를 떠올리다 보니 불편한 증상이 심해지는 상황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나쁜 미래보다는 현실적인 결과를 돌아보는 과정만으로도 어느 정도 상황은 나아질 수 있습니다.

 

시험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는 과정에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패턴이 있습니다. 인지왜곡이라고 부르는 생각의 오류들이 그것입니다.

결정적이지 않은 일을 끔찍한 결말로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면, 가령 오늘 공부가 잘 안 되는 모습을 보고, 원하는 만큼 공부가 안되면 시험에 떨어지고, 더 나아가 인생이 망하는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까지 연결 짓게 되는 상황을 떠올리게 됩니다.

실제로 시험에 합격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쌓는 과정은 오늘이나 최근 며칠의 공부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안되더라도 다음 주에 공부가 잘 될 수도 있고, 시험이 인생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시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순간은 한순간일 수도 있으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생각이 잘 나지 않는 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짧은 순간이며 내가 시험에 합격할지 불합격할지 결정하는 요소는 지금 공부가 잘 되는지 여부 외에도 무수히 다른 요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리 오늘 공부가 안 되는 일을 두고 미래에 실패를 걱정하는 일은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시험과 관련해서 내가 걱정하고 있는 생각들을 돌아보면서, 현실적인 생각으로 바꿔보는 과정이 익숙해진다면,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다시 책을 보는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분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점검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분과의 대화나 교류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이 조금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관계를 돌아봤을 때 내 문제나 그 친구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한번 정리를 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그 친구와 다시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 한 번은 그 친구에게 다시 말을 거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야기를 해보지 않으면 친구가 나를 냉정하게 대하게 될지, 다시 예전의 좋은 관계로 돌아갈지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게 그 친구가 나를 미워하는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도 어떻게 보면 충분한 근거가 없는 인지왜곡의 일종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인지적인 문제가 해결되어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관계라는 것은 나와 타인 모두에게 50대 50의 노력이 요구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일방적인 노력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관계에 집착하기보다는 관점을 바꿔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게 좋습니다. 이후에 생각이 정리되고 나면 내가 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좋을지 좀 더 명확하게 길이 보일 가능성도 있고,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지금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은 인생에서 경험한 아주 작은 어려움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쪼록 큰 시험을 앞두고 어려움을 겪고 계신 것 같습니다. 걱정을 털어내고 원하는 일에 집중하셔서 좋은 결과를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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