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윤혜진 연세 채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딸아이의 문제로 답답한 심정에 글을 올립니다. 딸은 30대 여성입니다. 

딸은 20대 초반부터 우울과 불안, 불면 등으로 수면제와 항불안제 등을 처방받아 복용해 왔습니다. 20대 후반에는 수면제 양이 점점 늘어 몇 군데 병원에서 처방받아 과다복용하기도 했습니다. 2,3년 간 약을 한 번에 여러 알, 7-9알을 복용하다 보니 일찍 떨어져서 일주일을 복용하지 않았더니 잠을 못 자게 되고, 그때 금단증세로 환각을 보고 그 뒤에 쓰러져 발작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딱 한 번이었고, 그때 뇌파 등의 검사소견엔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 뒤로는 약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잠을 전혀 자지 못합니다. 또 약을 복용하면 약 기운에 취한 상태에서 자극적인 맵고 짠 음식들과 과자 등을 폭식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약 때문인지 살도 너무 쪘습니다. 약을 줄이려고 해 보지만 약이 없으면 전혀 자지 못하므로 다음날 일이 없는 날은 밤새 게임을 하고, 아침에 병원에 가서 약을 타서 먹고서야 잠을 잡니다.

 

엄마 입장에서 그걸 보고 있으려니 속이 터지는데요. 어떻게 좀 해보려고 하면 '엄마가 끼면 인생 망친다', '난 약 안 먹으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그럼 평생 장애수당이나 타먹고 살면 좋겠냐'라면서 화를 냅니다.

딸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나아지는 방법을 의논해 보려고 다니는 병원을 알려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 답을 하지 않습니다.

과연 이런 식으로 거의 매일 장기적으로 약을 계속 복용해도 괜찮은 건지, 딸애 말대로 의사선생님 처방받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하니 이대로 기다려야 하는 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보고만 있으려니 속이 타다 타다 뚫어져 버릴 것 같고, 그러기 싫어서 모른 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내려니 무력감과 우울감이 밀려옵니다.

 

엄마인 저의 감정이야 그렇게 넘길 수 있지만, 딸아이가 이대로 지내는 게 괜찮은지 너무나 걱정이 됩니다.

오늘도 딸애가 또 한밤중에 라면을 끓여 가지고 제 방으로 가져가는 것을 보니 하도 답답하고 걱정이 돼서 수면제에 대해 찾아보다가 여기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딸애는 이대로 두어도 되는지, 아니면 다른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알려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윤혜진입니다.

십여 년째 약물 치료를 받고 계시는 따님으로 인해서 걱정이 많으시군요.

따님께서 중간에 처방된 약물을 남용한 적도 있지만 단 한 번 뿐이라고 하셨고, 이후에는 의사선생님 처방에 따르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하시니 다행입니다. 정확히 어떤 처방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처방된 약만 복용한다면 매일 장기적으로 약을 계속 복용하는 것 자체에 아주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약물 치료를 장기적으로 받고 있다는 것의 의미는 사실 따님에게 우울, 불안, 불면 등의 증상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약물 복용 자체보다는 병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더 걱정스러운 문제이지요.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따님의 타고난 생물학적인 요인, 그리고 성장 과정에서 형성되었을 심리, 성격적 요인, 과거와 현재 상황의 사회적 요인이 모두 영향을 주게 되지요.

 

따님이 한밤중에 라면을 끓여 가지고 방으로 가져가는 것을 보고 답답해서 수면제에 대해 찾아보셨다고 하셨어요. 따님이 한밤중까지 잠을 자지 않는 것, 밤중에 라면을 끓여 먹는 것, 살이 찌는 것에 대해서 수면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요.

약물이나 약물을 복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불면, 폭식 등의 증상이 계속 관찰되고 있는 것이 걱정입니다.

 

“약을 안 먹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라고 따님이 말씀하셨다고 했는데요.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약을 먹으면 무언가 할 수 있게 된다.”라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어머니가 아마도 “약을 그만 먹어라.”라고 얘기하신 것에 대한 답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따님은 약이 분명히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으니 계속 복용 중이실 것입니다. 이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는 약을 먹는 것 자체에 대한 걱정인지, 따님의 불면이나 폭식에 대한 걱정인지가 모호한대요. 먼저 따님과 대화를 나누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요새 약을 얼마나 먹는지,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 이런 대화보다는, 요새 일상생활에서 어떤 부분이 힘든지? 스트레스는 무엇인지? 그리고 약을 먹는 것과 치료를 받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이런 대화를 먼저 시작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혹시 따님이 다니는 병원을 알려주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머니께서 병원에 찾아오시는 것이 본인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것일 텐데요. 이미 30대의 성인인데 어머니에게 간섭받거나 들키고 싶지 않은 본인만의 영역일 수도 있고요.

 

저는 사실 어머니가 더 걱정인데요, 어머니의 속이 타다 타다 뚫어져 버릴 것 같고, 우울하고 무력하다고 표현하셨어요.

어머니는 본인의 감정은 그렇게 넘길 수 있다고 표현하셨지만, 사실 따님을 돕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감정과 정신건강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는 어머니의 행복을 위한 시간과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딸이 병을 앓고 있는 것, 계속 약물을 복용하는 것에 대한 어머니의 불안과 우울을 내려놓고, 대화를 통해 딸의 현재 상태를 알아가고 이해하시려 노력하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딸이 도움을 청해올 수도 있고요, 그때에 필요한 도움을 주시는 것이 어머니가 해주실 수 있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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