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중학생 때부터 불안장애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불안을 감당하지 못하면 주로 과호흡 증세가 나타납니다. 어렸을 땐 단순 호흡계통 문제인 줄 알았지만, 군대를 갓 전역한 후에 비슷한 증세를 겪었던 분의 조언으로 신경정신과를 가게 됐고 그제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상담과 약물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다소 늦긴 했지만, 꾸준히 관리하면서 불안장애에 구애받지 않는 평범한 삶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최근에는 불안장애를 대하는 제 성향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는 극심한 불안을 일으킬 만한 상황이 생기면 그 자리를 즉시 회피하려고 합니다. 또한, 한 번 과호흡 발작을 겪었던 장소는 두 번 다시 찾아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원하는 직종의 취업을 위해 다니던 학원에서 회의와 토론을 진행하던 중 갑작스러운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과호흡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그 이후로 발작을 겪었던 그 강의실에 들어가는 게 점점 두려워집니다. 발작을 겪었던 그 공간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떠오르는데 저는 그곳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저의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은 다행히 이해해 줬고 불안장애에 연연하지 않고 타인과 똑같이 대하려고 힘을 써주고 있습니다. 그런 배려에 정말 감사히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와 별개로 그런 두려움은 도저히 떨쳐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회의와 토론으로 열을 내는 와중에 저는 불안과 두려움을 겨우 삭이느라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곳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과 의무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몸 사이의 괴리가 저를 너무 괴롭게 합니다. 어떻게든 지키고 싶던 평범한 삶도 더 이상 지키지 못할 것 같고 자칫 극단적인 마음이 생겨 저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포기해 버릴 것 같습니다.

 

최근 유행성 바이러스 때문에 주변이 뒤숭숭한 와중에 과호흡 발작이라도 한다면 받게 될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바깥을 나가는 것도 망설여집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최악을 갱신하는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해결할 실마리를 찾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가고 싶은 곳에 마음껏 가지 못하는 상태가 얼마나 불편하실까요. 글에서 질문자님의 절박한 심정이 느껴져 참 안타깝습니다. 공황장애는 때로 삶의 여러 영역을 축소해버리기도 하지요. 아마 질문자님의 고민은 공황장애에서 흔히 동반되는 광장공포증(agoraphobia)으로 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광장공포증이란, 자신이 두려워하는 어떠한 상황이 나타날 때, 당장 그 장소를 벗어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데 대한 공포입니다. 공황장애를 겪으시는 분들이 지하철, 버스, 사람이 많은 쇼핑몰, 영화관 등을 기피하는 것도, 당장 공황발작이 일어날 때 그 장소를 벗어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탓입니다. 

 

두려움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시라면,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이 그리 친절하지 않다 느끼실 수 있어요. 저는 <상황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불편해하는 장소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라는 말이지요. 불안은 일반화(generalization)하는 속성이 있어요. 한 장소를 피하게 되면, 비슷한 성질을 가진 장소들이 죄다 불편해집니다. 결국, 생활 반경은 점차 좁아질 수밖에 없어요. 

물론, 무작정 아무 준비 없이 상황을 마주해서는 안 됩니다. 직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준비 과정이 필요합니다. 먼저 공황장애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의 본질과 신체화 반응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대개 공황장애는 ‘공포에 대한 공포’가 증상이 나빠지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공황의 본질은 ‘스트레스 반응’입니다. 누구나 겪는 스트레스가, 내 몸과 마음이 취약해진 상태에서 더욱 격렬하게 경험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중요한 건 가벼운 정도의 스트레스 반응이나, 심한 정도의 공황발작 모두 ‘정상적’인 생리 반응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즉 처음과 끝이 있으며, 당장은 불편하지만 지나가는 반응이며, 끝나고 나면 아무 후유증을 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개 공황발작이 나타날 때 사람들은 이 낯선 반응에 대해 당혹감과 공포를 느낍니다. 이내 ‘이러다 죽으면 어떡하나’ ‘기절하지 않을까’ ‘심장이 터져버리지 않을까’라는 식의 두려움이 생겨버려요. 공황발작 자체도 불편하지만, 공황발작이 일어날 때 나타날 결과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나타납니다. 이 과정에서 몸의 사소한 감각에 예민해지고, 급기야 약간의 신체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도 점차 기피하게 됩니다. 이렇게 공황장애가 점차 늪으로 빠져들게 돼요. 광장공포증은 공황장애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흔히 동반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신체 반응의 본질을 이해하고, ‘내가 죽을병이 아니라, 그냥 스트레스 때문에, 또 몸이 좀 피로해서 그런 거구나, 좀 쉬어야겠다’라는 식의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공황반응은 일시적으로 불편한, 하지만 지나갈 수 있는 반응이 됩니다.

또, 공황발작이 일어나더라도 결코 죽거나, 기절하거나, 혹은 통제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 또한 중요하겠지요. 신체 반응에 대한 인식, 공황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신체 반응이 나타났을 때 몇 가지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계신다니 급할 때 복용할 수 있는 투약을 처방받거나, 복식호흡을 통해 호흡을 통한 이완감을 연습하는 것 또한 공황에 대처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들이에요.

불안이 시작될 때 우리 신체는 생리적으로 얕고 빠른 호흡을 하는데, 이런 호흡이 답답한 느낌을 가중시키고, 결국 격렬한 과호흡으로 번지게 됩니다. 이에 반대되는 깊고 느린 호흡을 연습함으로써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무턱대고 불편한 상황에 던져져 이를 견디는 것은 두렵고 불편한 일입니다. 질문자님의 경우 심한 불안발작을 겪은 후, 강의실에 대해 생긴 두려움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증상 자체도 불편하지만, 공황증상에 대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는 거지요. 공황반응의 결과에 대해 본인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도요. 공황발작이 다시 나타날 경우 자신의 몸에 일어날 끔찍한 결과, 혹은 같이 공부하는 이들의 부정적 시선 등이 두려움을 자아내는 건 아닐까요.

과도하고 왜곡된 결과를 예상하고 있다면 그 두려움을 더 이성적이고 건강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황발작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황발작은 ‘처음과 끝이 있는, 정상적인 생리반응’입니다. 공황발작은 ‘죽거나, 기절하거나, 미쳐버리는’ 신호가 아니라 그저 몸과 마음이 지쳐 있으니, 좀 더 관리하라는 내 몸이 보내는 알람과 같습니다. 즉, 공황발작이 일어날 때 나에게 나타날 수 있는 현실적인 최악의 상황은 일시적으로 몸이 불편한 것이지요.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내 몸과 마음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게 될 겁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지만, 공황장애 또한 일어나는 신체 반응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 가에 따라 금세 지나가기도, 깊은 늪에 빠지기도 합니다. 물론 꽤 많은 시간 동안 충분한 고민과 연습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약간의 투약 조절이나 필요시 약을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테고요. 

부디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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