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우연히 보고 용기 내어 올려 봅니다. 다양한 게 겹친 상태라 보이는데 이겨내고 싶어 남겨 봅니다.

유부남과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끊지 못하다가 결국 헤어지긴 했습니다. 만나는 동안 그의 가정에 대해 신경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작고 통통하며 그리 잘날 것 없는 외까풀에 오목조목 작습니다. 그의 와이프는 모델 같이 키 크고 눈코입 다 큰 이쁜 사람이었고 정반대였죠. 그때부터 남들과 비교하는 맘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만나는 동안뿐만 아니라 헤어지고 나서도 저에게만 올인하고 제가 원하는 안심 주는 사람을 만나도 그 남자의 옛 연인의 외모나 행동 혹은 남자 친구 주변 인물, 친구 와이프들 등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고 자존감이 떨어졌습니다.

사실 저는 제 분야에서 일적으로나 외모적으로 괜찮다고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근데 자꾸 다른 여자와 비교를 하게 됩니다... 비단 이 일로 인해서보다는 이 일이 발화점이 된 거 같긴 합니다만, 이로 인해 제 자존감이 떨어지니 모든 일에 있어 일적으로 역시 불안한 맘이 커졌습니다.

원인과 대안을 알고 노력해보고 싶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는 언제나 우리들 마음속을 괴롭게 쑤셔대는 부지깽이 같은 존재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렇습니다. 엄친아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이유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과 비교당할 때에는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나와 비슷한 또래, 같은 성별일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못나 보이고 부족해 보입니다. 비참해지고 우울해집니다.

질문자님께서도 직장에서 만난 남성과의 연애를 발단으로 이야기하셨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끝없는 비교와 스스로에 대한 평가절하임을 잘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물론 처음의 그 관계가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점에서 그런 불편함이 더욱 커졌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관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이미 그 관계는 이미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다른 사람들을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른 여성들과의 비교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쩌면 질문자님의 마음속에 끝없이 질문자님을 다그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어앉아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쉼 없이 다른 사람들과 질문자님을 비교하며 '너는 이게 없잖아' '쟤는 저게 있잖아' '너는 쟤한테 안돼' '너는 결국 안 될 거야' 하는 식으로 다그치는 그 목소리 말입니다.

 

인지치료의 창시자 아론 벡(Aron T. Beck)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 두 가지를 꼽은 바 있습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생리적 욕구들 이외에도 우리에게는 본능적이고 기본적인 욕구가 더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과 인정 앞에서 본능적인 갈증을 느낍니다. 그 말인즉,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마음은 메말라 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두려워집니다. 사랑받지 못하게 될까 봐, 인정받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집니다. 사랑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본능적이고 근본적인 만큼이나, 그 두려움 또한 강렬하고 본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비교하게 됩니다. 두렵기 때문에 비교하게 되고, 비교하면서 더 두려워집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두려워합니다. 저 사람보다 못하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저 사람보다 못하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우리를 하염없이 깎아내리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랑과 인정을 향한 갈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스스로를 비교하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때때로 그 과도한 두려움이 우리를 무척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불안에 눈이 가리어져,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불안해지면, 시야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결점과 다른 사람의 장점들만 거대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들만 부각하고, 나를 아끼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단시키는 고장 난 망원경으로 세상을 내다보게 됩니다. 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인정해줘야 한다는 불가능한 강박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실, 누구나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누구나 결점이 있고 감추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나에게 결점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내가 비교하는 저 대상도 어떤 결점이 있을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똑같은 잣대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는 나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나를 싫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에게 그렇게 큰 관심이 없습니다. 대부분은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내가 만약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워하고 있다고 해도, 사실 그 순간에 그 사람은 나에 대해 그다지 많은 생각을 하진 않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누구나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불안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한 본능이 바로 불안입니다.

때문에 불안은 상황을 더 나쁜 쪽으로, 더 위험한 쪽으로만 해석하게 만듭니다. 작은 솥뚜껑을 자라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두운 골목길의 저벅거림을 강도의 발걸음으로 들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불안은, 앞뒤 상황과 합리적인 현실을 재고 따질만한 여유를 뺏어갑니다. 항상 사소한 상황을 큰 두려움으로 왜곡합니다. 그리고 그 큰 두려움은 더 큰 불안을 불러일으킵니다. 더 큰 불안은 두려움을 더더욱 확신하며 악순환을 가속합니다.

 

이 악순환을 벗어나는 가장 첫 번째 단계는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본능입니다. 자연스러운 두려움입니다. 따라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이 두려움과 마주칠 때마다 불안해하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허락해줘야 합니다. 

"남자 친구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지?" "내가 키가 작아서 나를 안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전 여자 친구는 나보다 더 예쁘던데 그래서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은 걱정과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이 들 때마다 '이런 생각하면 안 돼.'라며 본능적인 감정을 부정하고 맞서 싸우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따름입니다. '이런 걸로 걱정하는 걸 보니 나는 자존감이 낮구나' '또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니 한심해' '나는 왜 이렇게 자존감이 낮을까?' '나처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야'처럼 스스로에 대한 평가절하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보다 우리는 '아 내가 지금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구나' 라며 지금의 두려움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알아차리고 허락해줘야 합니다. 자연스러운 감정이 내 안에 들고 있음을 허락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에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 두려움에 휘말려가 불안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불안에 휩싸여 주춤거리고 있는 우리의 '생각하는 뇌'를 좀 더 깨워줘야 합니다. 불안 시그널에 빨간 불이 켜진 뇌는 '생각'하고 '판단'하는 부분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합니다. '위험' '탈출' '투쟁'을 담당하는 부분에만 모든 에너지가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뇌'를 활성화시켜줘야만 합니다. 지나치게 나쁜 쪽만 보고 상황을 왜곡한 것은 아닌지, 다르게 생각할 여지는 어떤 것이 있는지, 걱정하고 있는 상황의 현실적인 가능성은 얼마나 될지를 합리적으로 계산해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작업을 각각의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해서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나는 자존감이 낮다' '나는 남들과 자꾸 비교한다'는 것처럼 모호하고 광범위한 표현보다는, '남자 친구가 내가 날씬하지 않다고 싫어할 것이다' '저 여자에 비해 키가 작기 때문에 나는 남자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한다' '내 피부가 나빠서, 피부가 좋은 옆자리 직원에 비해 직장 상사에게 인정받지 못한다'처럼 구체적인 예에 대한 나의 생각과 두려움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필요하다면 종이에 써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종이에 써두고 그 문장을 바라보면 나의 두려움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 놓은 문장은 그것이 어떤 진실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생각'일뿐임을 잘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객관적인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가정하는 최악의 상황이 무엇인지, 그 현실적인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해서 적어보는 것입니다. 머릿속에서 엄청난 재앙처럼 커졌던 두려움을 현실에 내려놓고 명확히 판단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우리는 우리 안의 장점들도 제대로 쳐다볼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도 글에서 일적이나 외모적으로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은 그 사실의 진짜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결국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불안과 두려움으로 왜곡된 안경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랑하고 인정해줄 만한 나의 가치들이 제대로 보일 수 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본능적인 악순환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현실을 붙잡는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상담과 함께 진행해볼 수도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는 대표적으로 이러한 왜곡된 시야와 생각을 바로잡는 훌륭한 치료 방법입니다.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해결을 위해서라면, 정신건강의학과의 방문을 주저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모쪼록 스스로와의 대면에 우뚝 마주 서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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