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임찬영 광화문 숲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대학생입니다. 저는 중학교 때 학교폭력을 당해서 지금도 트라우마가 상당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제 성격 탓인지 깊게 사귀지 못하고 다 연락이 끊겼습니다. 현재 대학을 편입해서 역시 주위에 친구 한 명 없습니다. 친구가 다가오려고 해도 저는 항상 두려워서 모든 관계를 쳐내요.

저는 눈치를 굉장히 많이 보고, 모든 일에 있어 당당하지 못합니다. 밖에 나가면 늘 불안하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불편합니다. 엄마는 워낙 무표정으로 제가 무슨 고민을 털어놓으려고 하면 말을 끊어버립니다. 또, 굉장히 바쁘고 저에게 관심이 없었다 보니, 의지할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엄마의 무책임함을 탓하며 학창 시절을 버텨냈습니다.

친구가 없다 보니 동생에게 집착하게 됩니다. 모든 일상을 공유하고 정말 가깝게 지냅니다. 동생은 분노 조절을 잘 못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저에게 욕을 합니다.

사실, 저희 아빠가 술을 먹고 오면 정서적 폭력을 가했습니다. 1년에 1~2차례 정도 불을 지를 거라고 소리를 친다던가 엄마에게 소리치며 욕하는 등등 그다음에 술이 깬 뒤에는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활합니다. 엄마는 회피적 성향을 가져서 그때만 이혼해야지 라고 말한 뒤 또 잘 살아갑니다.

사실 부모님 두 분은 이런 마찰을 빼놓고는 농담도 하고 잘 지냅니다. 아무래도 동생의 분노 조절 장애는 아빠를 닮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태도, 동생의 분노 조절장애, 제가 몇 번이고 타일러 가족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으나 우리 가족은 오히려 저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엄마에게는 속을 털어놓으려고 해도 무관심하기 때문에 말이 안 통하고요.

정말 답답합니다. 제가 의지할 곳 없는 이유가 모두 제 탓 같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살아도 제가 행복감이란 걸 느낄 수 있을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임찬영입니다. 제가 질문자분의 자세한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말씀하신 내용을 바탕으로 답변드리겠습니다.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하나는 가족들의 문제네요. 가족 구성원분들이 각자 어느 정도의 문제를 가지고 있고 답답함을 느끼네요. 다른 하나는 성격적인 문제,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부분으로 인하여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가족분들이 각기 어느 정도의 문제는 가지고 있다고 하셨네요. 1년에 1~2회가량의 주사, 정서적인 문제를 보이는 아버지, 간혹 분노를 표출하는 동생, 정서적으로 무신경한 무책임한 어머니 등을 말씀하셨네요. 전반적으로 자신에게 공감을 해 주지 않는 가족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네요.

가족은 가까운 사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내 뜻대로 움직여주는 사람들은 결코 아닙니다. 가족들이 가족의 구성원이 질문자분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해 줄 수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관계는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가까운 관계인 가족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남이 바뀌거나 내가 바뀔 수밖에 없겠죠. 남을 바꾸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스스로 먼저 변화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머니가 공감을 못 해 주신다는 것은 충분한 대화, 기저의 공감대가 부족해서일 수 있습니다. 좀 더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한 다음에 고민을 토로하시면 좀 더 깊은 대화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가족분들의 사정에 대하여 제가 자세히 알지는 못해서 확실한 조언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가족분들의 긍정적인 부분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집중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질문자분과 많은 것을 공유할 정도로 친한 동생, 간혹 아버지의 주사로 인하여 다툼이 있기도 하지만 서로를 믿고 잘 살아가는 부모님처럼 말입니다.

부정적인 부분도 분명히 있는 가족 구성원들이지만 충분히 긍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나 자신도 좋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또 괜찮은 부분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능하면 긍정적인 부분으로 시선을 돌려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불편해하네요. 스스로 이런 성격이 불편하지 않다면 굳이 바꿀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외로움을 느끼고 가족 외에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면 변화가 필요합니다.

하루아침에 성격이 변화해서 활발하게 관계를 맺게 될 수 있을까요? 그렇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모임도 나가고, 낯설고 어색하지만 서툰 말이라도 걸어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누군가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많은 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거절을 받는 상황입니다. '내가 용기를 내었는데 좋지 못한 반응을 보이면 어떡하지?'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등등, 부정적인 상황에 대하여 지나친 걱정을 합니다. 질문자뿐 아니라 겉으로는 사교적인 성격의 사람들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곤 합니다.

사실 분명히 거절 또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정적인 반응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거절을 피하기 위해서 용기 내지 않는다면 변화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원치 않는 반응은 당연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건 질문자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거절을 너무 크게만 느끼고 두려워하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현재 상황이 부정적이라면 가장 먼저 나를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또한 미래 역시 이런 부정적인 상황으로만 흘러갈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의지할 곳이 없는 것 같고 모든 것이 내 탓인 것 같이 원망이 되기도 하겠죠. 이런 감정이 관계를 막고 현실을 더욱 부정적으로 만드는 악순환이 되기도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적인 상담 등의 치료가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빨리 좋아지는 것입니다. 적절한 도움을 받으면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나아가서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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