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오래된 우울증으로 인해 지난 몇 달 진료를 받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대기업 관리직에서 권고사직을 받고 막연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물론 혼자 생활비를 벌고 쓰고 독립된 성인입니다. 자취하며 분가한 지 10년 차고요. 그럼에도 이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큰 목표가 없이 항상 죽지 못해 사는 삶이 제 스스로도 싫은 데다, 가끔 보는 친척들조차 이런 제 꼴은 보고 싶지도 않은가 봐요. 가족들과도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따로 연락을 자주 하진 않아요.

저는 가족들이나 친척들에게 상담 요청을 잘하지 않아요. 가족들은 각자 먹고 살기가 빠듯한 형편이고, 친척들은 다들 강한 정신력을 가진 건지 아니면 저와 달리 여유롭게 살아와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를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친척과 사촌들은 여유 있는 집안에서 아르바이트라곤 해보지도 않고 명문대를 나온 의사, 교수 등 소위 말해 잘나가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 친척들에겐 초라한 제 고민 얘기를 하는 모습조차 부끄러운 일이고. 애초에 그런 친척과 사촌들과 저의 살아온 삶의 결이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은 듭니다.

 

최근 그런 친척 어른께 또 한 소리를 들었어요. 이렇게 저를 혼내거나 나무라는 일들도 저를 걱정하셔서 하는 말씀이라는 것도 아주 잘 알아요. 결국 그분 말씀의 요지는 뭐 하나를 해도 똑 부러지게 하라는 것이었어요.

사실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마지못해 알바를 하며 고시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지난 일 년 가까이 지지부진하게 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알바만 해온 꼴이 되어버리긴 했어요. 그런 제 게으른 생활 태도를 보시고는 굉장히 뭐라고 하셨어요. 결국 선택은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고 네가 결정하라는 말로 끝을 내셨지요.

그러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 내가 하고 싶은 건 뭔가 목표가 이루고 성취하는 것보다 더 이상 애쓰는 거 관두고 이제 그만 살고 싶은 거다.”

 

사실 이런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했어요. 제가 해온 대부분의 일은 살아있기에 마지못해 하는 일이었고 단지 남들보다 주변보다 조금 나아지기 위해 애쓴 게 다였어요. 학점도 영어점수도 이력서의 스펙도 직업과 직장조차도 말이에요. 다 제가 원한 거라기보단 그냥 살아있으니 하는 작은 목표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제가 속해 돌아가던 사회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다시 밑바닥에서 알바를 하다 보니 느끼게 된 거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원하는 것은 나은 직업과 사회로의 복귀가 아니라, 이젠 더 이상 애쓰는 것 그만하고 (삶을) 관두는 거구나.

저는 작은 목표는 있어왔지만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저는 삶의 목표라거나 살고자 하는 생에 대한 의욕이 없다는 걸요. 혹자는 ‘배부른 소리 한다. 내일을 희망하는 불치병 환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딴 소리를 하느냐’며 뭐라고 하실 텐데, 뭐 거기에 대해 나무라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꽤 오랫동안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왔어요. 고등학생 때는 하도 공부에 대해서 채찍질하시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자살시도를 한 적도 있어요. 당시 제가 스스로 다시 줄을 풀고 내려와서 별일은 없었고 가족들조차 그런 시도를 했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해요.

 

여전히 저는 삶의 의욕 없이 살고 있어요. 지지부진한 제 계획들이나 똑 부러지지 못한 태도, 그리고 더 이상 살지 않을 것처럼 하루하루 계획이나 뭔가 없이 소위 “정신이 없는” 사람처럼 보내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어요.

제 생각엔 이런 삶의 끝은 파멸이고. 그 이전에 제가 끝을 내고 싶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제가 삶에서 얻거나 되고자 하는 것 자체를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고 있으면서, 생활 측면에선 뭔가 작은 노력을 하는 것조차 잘 안되거든요.

특히나 생활습관은 바짝 조일 땐 커피며 뭐며 마시고 가능할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이력서 스펙을 채우고 학점을 만들고 영어점수, 봉사활동을 했고 자격증을 따고 인턴쉽을 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하고 지쳐서 몇 달 혹은 일 년 아주 오랫동안 퍼지고 다시 아주 잠깐 조여서 노력하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대기업에 들어갔죠.

하지만 그게 끝이었어요. 대기업 속에서 버티지 못했죠. 다 끝났다는 생각도 들고. 다시 오래 퍼지고 나서도 괜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할 만큼 젊지도 않아요. 저는 서른 초반입니다. 나이는 예전보다 많아졌고 자포자기한 채로 제 생활은 다시금 끝없이 게으르고 답 없는 생활로 퍼져버렸네요. 과다수면이나 무기력이 문제예요. 

그리고 삶에 의욕이 없죠. 주말 이틀을 아르바이트를 하면 주중 5일을 공부할 계획을 세웠다가도 다 자버려요. 일하는 주말을 제외하면 주중엔 거의 매일 12시간 이상 잠을 자고 심할 땐 하루 21시간 잔 적도 있어요. 하지만 별로 다급하지 않아요. 마지못해 하는 일인 것 같은 느낌이 마음 한구석에 있나 봐요.

 

저도 잘살고 싶은데 생각처럼 잘 안 되네요. 흐지부지 살 바에는 그만하고 죽고 싶은 생각이 강하고 또 제 삶의 의욕이나 욕심은 역설적으로 제 삶의 패턴을 바꾸거나 생각이나 의욕을 만들고 고무시키지 못해요.

저는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까요. 단지 회피의 수단으로 게으른 제가 우울증을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저는 더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잠만 자고 싶고 간절하지도 않고 하기가 싫어요..... 계획은 물론이고 앞으로 사는 것조차요.

제가 저를 버린 듯 자포자기하고 대충 살면서 뭔가 좋은 것이 되기를 바라거나. 제가 변하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게 참 제 스스로도 말도 안 되는 것 같고 우습지만 선생님들의 의견 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길게 써 내려가신 글에서 질문자님의 절박한 심정이 느껴져 참 안타깝습니다. 하고 싶은 의지와 다르게 내내 쳐지는 몸, 그리고 금세 꺼져버리는 의욕, 자책, 이내 다시 찾아드는 우울감. 이 악순환은 참으로 벗어나기 힘든 굴레일 테지요. 부디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많은 고통을 겪어냅니다. 상실, 이별, 가까운 이의 죽음, 목표에의 좌절과 같은 것들이지요.

많은 이들은 고통을 마주할 때 본능적으로 피하려 합니다. 과한 수면, 술, 도박과 같은 것들에 심취하기도 하지요. 혹은 고통을 어떻게든 통제하려 합니다. 나라는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프레임에 가두고, 몰아붙이지요.

실상 이러한 노력들은 삶의 고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고통은 끊임없이 찾아오고, 어느 순간 우리는 그 고통과 싸우다 이내 짓눌려버립니다. 마치 이길 수 없는 괴물과 가운데 깊은 구덩이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과 같아요. 내 삶을 통제하려, 눈 앞의 목표를 억지로 달성하려 전전긍긍하다, 결국 고통에 이끌려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요? 당장 괴물과 줄다리기를 그만두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서는 건 어떨까요? 힘드시겠지만 내 삶의 힘듦과 씨름하기보다, 그 힘듦을 껴안고 더 중요한 것들을 발견해나가는 여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결국, 본인이 고민하는 삶의 어려움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태도로 맞이할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긴 기간의 좌절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테지요. 우울, 염려, 절망에 빠지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또다시 해오던 관성대로 나를 짓누를 것인지, 아니면 지금 느끼는 힘든 마음들을 껴안고 나에게 더 중요한 가치들을 찾아 나설 것인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좀 더 건강한 시각에서 본다면 겉으로 보이는 성취, 사람들의 시선은 삶 전체에서 큰 가치는 아니지 않을까요.

자신을 너무 ‘이래야 한다’는 틀 안에 가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준이 타인, 사회에서 바라기 때문에 나에게 세워진 기준이라면 더더욱요. 

 

회피의 수단으로 우울증을 이용한다 하셨는데, 글쎄요. 저는 질문자님이 빠져있는 자책 중 우울증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조금 과장해 이분법적으로 본다면 질문자님의 지분보다는 우울증이란 놈이 만들어내는 상황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서양에서는 우울증을 ‘악마 석상’에 비유합니다. 유럽의 큰 교회나 성당의 웅장한 정문 옆 벽면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악마 석상 말이지요. 우울증은 그 악마 석상이 내 어깨에 앉아 끊임없이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고 있는 상태와 같아요. 우울증은 무기력, 과다수면, 무의욕, 모든 일에 흥미 저하를 유발하며, 더 나아가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꾸어버려요.

자신에 대한 좌절감, 상황에 대한 절망, 미래에 대한 암담함에는 물론 현실적인 부분도 섞여 있겠지만 우울증이 만들어낸 왜곡된 측면 또한 상당 부분 존재할 거예요.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그러하기보다, 우울증이 나를 무기력하게, 비관적으로 만든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자신의 본질이 게으르고, 무가치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사실도 아닐뿐더러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도 않아요. 또 바꾸어 말하면, 그 악마 석상을 어깨에서 털어낼 수 있다면 이 상황들의 다른 측면들이 보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깨에 앉은 괴물을 털어내는 데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치료일 겁니다. 현재 받는 치료의 형태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증상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필요한 부분들을 주치의 선생님과 함께 나눌 필요가 있어요. 상담 치료든, 약물치료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과,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고민도요.

당장 먼 미래를 바라보기에는 암담하게 느껴질지라도, 함께 방향을 잡아 눈 앞에 있는 것들을 보며 한 발자국씩 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극적 치료를 통해 무기력감에서 조금만 벗어날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들이 생겨날 거예요. 약간의 변화가 새로운 시작점이 되는 셈이지요.

또, 우울증을 겪는 많은 분들은 ‘기분이 조금만 더 좋아지면 활동이 늘어날 거’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는 선후 관계를 뒤집어볼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까,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이를 우울증 치료에서는 ‘행동 활성화’ 라 부릅니다.

무작정 무리를 해서 운동을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건강한 활동을 내 삶에 조금씩 끼워 넣을 수 있다면 기분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첫 번째 장애물이 가장 높은 법입니다. 첫 시작을 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작은 성취들이 쌓이며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자는 시간을 줄이고, 일어나는 시간을 정하거나,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가벼운 산책이나, 카페에서의 공부 등을 시작하는 것도 좋습니다. 

부담스레 느껴진다면 하고 있는 고민의 덩어리를 잘게 조각내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테고요. ‘오늘 하루 10시간 공부’ 보다는 ‘아침 9시에 씻고 도서관으로 가기’ ‘책을 펼쳐 1시간가량 집중하기’ 등의 작은 계획들을 세우는 겁니다. 

 

질문자님의 깊은 고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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