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사연) 

제목 그대로입니다. 갑자기 인생에 대해 진짜 화가 납니다. 나를 이 세상에 데리고 온 누군가, 그게 부모님이 되었건 신이 되었건, 그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인생에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제 주변 환경은 편하지 못하고 제겐 타고난 멋진 외모나 부모님의 재산, 특출 난 재능도 없어요. 어찌어찌 혼자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탈출하려 해도 인생에 지친 전 이미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는 상태예요.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이상적인 목표를 여전히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이뤄내기 위해선 굉장한 제 내면의 에너지가 필요한데. 제 몸속과 마음, 가슴, 머릿속에는 그런 종류의 긍정적이거나 상승하는 에너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요. 제 속에 아주 조금 남은 뭔지 모를 에너지마저도 힘든 일상 속에서 부족하나마 일을 하며 정상생활을 흉내 내며 견뎌내는데 대부분을 소모하고 있죠.

사실상 제 에너지는 고갈상태입니다. 그런 제게 가족들조차 에너지를 채워주기는 커녕 그들에게 욕 안 먹고 제 에너지 빼앗기지나 않으면 다행인 채로 가족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죠. 그래서 결국 오직 제 힘으로만 탈출해야 하는 형편인데, 애석하게도 지금 제겐 바로 앞에 낮은 장애물 뛰어넘을 힘조차 없는 느낌인 거예요.

아주 피곤하고 지칩니다. 무기력하고. 좋아하는 것도 없어요. 있더라도 아주 희미하죠. 예를 들면, 어항을 멍하니 들여다보는 일이에요. 이 일은 부정적인 감정을 조금이나마 잊게 해주는 정도예요. 다른 사람들은 보면 뭔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에너지들을 채우던데. 저는 그런 것조차 없습니다.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니까요.

 

제 인생을 버텨내는 제 모습을 사물에 비유를 해보자면, 마치 주유소가 없는 황야에서 탈출하기 위해 한참을 달려야 하는데 기름이 다 떨어진 자동차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에너지는 점점 고갈되고 종국엔 졸리고 피곤하고 몸은 무겁고. 정상인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의식 없이 하는 아주 작은 일조차 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에너지가 없는 상태인 거죠. 

그 상태에서 어떻게든 계속 가보려고 혼자 애를 써보지만 이따금 기름도 없이 차를 무리하게 굴리니 엔진 자체가 퍼져버리죠. 고장 상태가 되어버리는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고장 나서 차가 퍼져 있는 기간은 점점 길어지죠. 지금도 그런 상태이고요. 그래서 제 인생이 아주 그냥 별로다. 인생 참 xx 같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인생을 원망하는 거죠.

 

인생에 참 화가 나요. 욕을 하며 아 정말 인생 싫다고, 소리치며 울고 싶어요. 특히나 힘들다고 요즘 느끼는데.

최근엔 혼자 있을 때 저도 모르게 마치 미친 사람처럼 이상한 소리를 반복적으로 지르거나, 정말 억울해 꺽꺽 우는 듯한 척을 해보곤 합니다. 속에 뭔가 있다고 느껴지고 이런 내가 불쌍하고 화도 나고 답답해서 진짜로 울고 싶은데 진짜 눈물이 나진 않기 때문이죠. 차리리 속 시원하게 울어버리면 좋겠는데 예전부터 참고, 모르는 척만 하다 보니 저는 이제 우는 법도 까먹은 것 같아요.

그냥 이젠 그만두고 싶다. 이젠 영원히 쉬고 싶다. 소멸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매번 죽음을 생각하지만 시도를 못 할 뿐이죠. 힘들고 지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질문자님의 이야기 곳곳에 힘든 마음이 묻어나는 것만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인생에 화가 난다 느낄 법합니다. 자세히 적혀있진 않지만, 오래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품고 계셨던 것 같아요. 위로가 될진 모르겠지만, 부디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많이 지쳐 보입니다. 지내오신 고된 삶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렇게 느끼실 수 있어요. 질문자님에 힘듦에 대해 감히 조언을 드리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은 질문자님이 말씀하신 마음의 상황들이,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의 우울증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무기력하고, 지치고, 인생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할 힘도 없는 상태는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들입니다. 에너지가 고갈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 또한 우울증에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기도 하고요. 이로 인해 일상생활이 버거워지고, 자책에 빠지게 되며, 다시 우울감이 더 깊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지요. 같은 맥락에서, 말씀하신 대로 ‘황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좌절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슬프고 우울한 마음의 상태뿐만 아니라 내가 나 자신, 주변 상황,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을 부정적으로 바꿔버리는 것이 우울증의 가장 무서운 점입니다. 질문자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면 화가 나는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일 것 같아요.

부정적인 시각은 상황을 왜곡해 받아들이게 합니다. 현실적으로 할 만한 일들도 ‘나는 절대 못 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사건들도 ‘최악의 상황’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좌절감은 더 커질 테고요.

서양에서는 우울증을 ‘악마 석상’으로 비유하곤 합니다. 어깨에 악마 석상이 앉아서 끊임없이 나에게 부정적인 말을 쏟아붓고 있는 상태라는 거지요. 우울증이라는 병 자체가 부정적 인식을 내 머릿속에 심고, 내 삶을 늪으로 가라앉게 만들곤 합니다. 

 

하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를 극복하는 노력과 치료를 통해 비관적 시각, 분노의 감정 또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불안정한 감정이 안정적으로 바뀌고, 흐트러진 수면 리듬이 제자리를 찾게 되면 단단하게 자리 잡힌 왜곡된 시각에 균열이 생깁니다. 좀 더 건강하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거지요.

오랜 기간 동안 습관처럼 지녀온 부정적 태도와 시각이 단기간에 바뀌지는 못하겠지만, 꾸준한 노력은 분명 나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건강함을 깃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만약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셨던 적이 없으시거나, 치료를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중단하셨던 경험이 있다면 지속적인 상담과 치료를 받으시기를 권유드립니다. 혼자 견뎌내시기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물론 도움은 받는다는 건 삶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는 과정이 아닐지도 몰라요. 오히려 내 삶을 좀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 과정이지요.

그러니까, 두렵고 괴로운 감정의 바탕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바라보게 한다는 말입니다. 마주한 있는 그대로의 삶 또한 그리 행복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색안경을 벗고 바라보아도 힘든 상황일 수 있을 테고요.

하지만 치료를 통해 이 삶에서 도망치려 하거나 싸우지 않고 내 삶을 받아들이며, 삶의 고통이 잠시 머물렀다 가게 허용하는 여유가 생겨날 수는 있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현재의 순간, 나라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이 순간이 내가 딛고 나갈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이 될 겁니다.

고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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