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1부. 아팠지만 나는 몰랐다

 

4화 나를 견디게 한 것들 - 1

 


‘12번 자리 찾아서 줄 서세요.’

SBS 방송 공개홀 대문 앞, 나는 대단한 경품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기뻐했다. 

‘그래 오늘은 12번이야. 저번처럼 공치고 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한 솔로가수의 팬이 되었다. 시작은 초등학교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을 먹고 무료한 시간,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을 응시했다. 마침 학교 방송에서 음악이 흘렀다. 아주 맑은 목소리가 특이했다. 맑은 목소리는 몽글거리는 마음이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이 사람이 노래하는 날까지 팬 할 거야.’ 

 

아빠는 자주 집안을 비웠고 엄마는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매일 바빴다. 그런 조건은 팬클럽 활동을 하기에 매우 편리했다. 목소리가 특별했던 가수는 점점 인기가 많아졌다. 그럴수록 나는 바빠졌다. 스케줄을 따라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목소리 한 마디, 얼굴 한 번이라도 보는 날은 아주 기쁜 날이었다. 조그만 얼굴을 멀리에서 보니 점같이 보였다. 하지만 난 알아봤다. 그게 팬이었다. 

팬클럽 활동은 나를 매우 분주하게 만들었고, 그곳에서의 나는 활달했다. 자주 웃었고, 친구도 많았다. 같은 마음인 사람들끼리 모이니 금세 친해졌다. 나이, 남녀를 불문하고 서로가 서로의 특별한 친구가 돼주었다. 새벽에 잘 일어나지고, 밤에는 졸음을 견뎌냈다. 계절마다 다가오는 추위, 더위 따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사춘기를 지날 때는 당시 방황하는 아이들과는 어울릴 틈이 없었다. 하루 24시간을 한 목소리를 들으며 버텼다. 이어폰에서 울리는 음악소리와 그로 인한 행복한 순간을 방해받기 싫어, 빙 둘러 등교하곤 했다. 

슬픈 노래는 나와 함께 울었고, 기쁜 노래는 지친 내게 밝은 마음을 선물해줬다. 내게는 단순히 가수와 팬 이상의 순간으로 남은 기억이다. 이 사람이 노래하는 날까지 팬 할 거라는 어린 나의 다부진 결심은 지켜졌다. 21년차 가수가 되어 유튜브 탑골공원에 등장하는 날이 되도록 나는 현재도 팬을 고수하고 있다. 

 

팬클럽에서 유독 친해진 언니 K가 있다. 말수도 없고, 화내는 법도 없었다. 단어 그대로 ‘무던’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따스함이 느껴졌다. 훗날에 알게 됐지만, 사랑을 매우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따스함이었다. 하루는 수험생이던 언니를 응원하겠다고 주소 하나 달랑 들고 초콜릿과 사탕을 잔뜩 전해주러 집에 간 적이 있다. 늦은 저녁이었건만 K언니는 학원에서 아직 오지 않았고, 댁에 계시던 어머님께서 나를 반기셨다. 

“네가 그 애구나!”

매우 쑥스러웠다. 눈치 보며 자란 아이들의 특징인 ‘스캔하기’를 시작했다. ‘스캔하기’란 내가 지어낸 말인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자란 어떤 사람이구나’ 하는 등의 여러 정보를 훑고 미리 짐작하는 일을 말한다. 

그 날 내가 스캔하기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살구색 전구로 따스함이 느껴지는 집에서 앞치마를 두른 어머님이 저녁과 수험생 자녀의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계셨다. 거실에는 커다란 소파가 있고, 나에게 오렌지주스와 포도 주스 중에 고를 기회를 주시곤 과일과 함께 주스를 마련해 주셨다. 클래식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있는 기분이었다. 직장에서 돌아오고 계시다는 아버님 소식을 듣고 뭔가 들키기라도 할 것처럼 일어났다. 안정적이고 따뜻한 집이었다.

 

언니를 갖는 게 소원이었던 내게 K언니는 친언니 역할을 해주었다. 남들에게 말 못 할 고민들을 K언니에게 털어놓았고, 힘든 일이 있는 날이면 괜히 K언니에게 짜증을 부렸다. 말도 안 되는 아이 같은 짜증을 언니는 전부 받아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내게 커다랗고 까만 카메라 하나를 쥐어줬다. 
 


“아빠가 나 어릴 때 한참 쓰시던 건데, 요즘 안 쓰셔. 사진 한 번 찍어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필름카메라를 손에 쥐고, 나는 이것저것을 찍었다. 빈 길, 고양이,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나무, 비 오는 날의 길바닥, 우산끼리 서두르느라 엉키는 모습, 수많은 것들의 그림자. 

첫 롤이 현상되었고, 컴퓨터용으로 스캔되었다. 마주한 사진은 기대처럼 선명하지 않았다. 주로 어두운 것을 찍는 내 사진들은 모두 엉망진창으로 흔들려 있었다. 걷다가 툭툭 찍는다고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프랑스, 1908~)’이 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사진 찍는 행위는 나도 모르게 병을 앓고 있던 내 마음에 큰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사진을 찍으려면 주변에 관심을 가져야 했다. 가만 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고 모든 것과 모든 것의 그림자까지 살펴보았다. 그다음 찍을 대상이 나타나면 신속하게 노출과 초점을 맞추고 필름을 새 칸으로 넘긴 후 셔터를 눌러야 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숨을 참아야 했다. 손을 떨지 않도록, 수평이 맞도록 최선을 다했다. 다른 생각은 머무를 틈이 없었다. 

일기처럼 사진을 찍었다. 어떤 때는 우리 집 현관문을 찍기도 했다. 집에 들어서기 전, ‘합’하고 기합을 넣곤 하는 내가 나를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사진은 내 마음속을 드러내 주었다. 주로 외롭고 황량하고 거칠고 어두웠다. 훗날, 불안증과 우울증이 심각 해져 손을 심하게 떠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 나는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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