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1부. 아팠지만 나는 몰랐다

 

1화. 도망쳤지만 실패했다

 

어스름이 해가 내려가고, ‘오늘도 다 갔구나’ 소리가 웅얼거려질 때였다. 

‘똑 똑 똑, 밥 먹자.’

런던 가장자리에 위치한 작은 2층 주택, 2층 가장 작은방에 누워있던 나는 당황했다. 취할 만큼 약을 먹었는데 밥을 먹자니… 내가 지금 피아식별이 가능한가? 이어지는 질문들에 확신이 없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열둘, 열셋, 열넷…?’

독한 두통에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 열네 알을 연달아 먹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어지러움이 일며 휘청거렸다. 속은 쓰라리고 그놈의 두통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붙어있었다. 징그러운 놈, 머리 근육막을 잔뜩 조여 오는 통에 귀도 멍하니 잘 들리지 않았다. 

 

가장 작은 방이지만 집을 선뜻 내주었던 이 집 부부는 오랜 인연으로 이어진 내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이다. 스무 살, 아무것도 모르고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왔을 때, 방세를 내고 함께 지내던 집주인이었다. 큰 문제없이 많은 마음과 추억을 공유하며 1년을 함께 살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과 함께 ‘이 부부(나는 언니 오빠라고 불렀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눈물을 훌쩍이곤 했다. 

걱정이 민망할 만큼 나는 런던에 자주 갔다. 있는 돈 없는 돈을 쥐어짜서 비행기 티켓을 구하고 방학이면 한국 집으로부터 런던 식구 집으로 도망쳤다. 살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간절하고 처절한 마음이었다. 이상하게도 런던에 도착하면 내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쳐 온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한국 집, 그 안에서 일어났던 부당한 일들, 죽고 싶은 마음, 아빠, 엄마… 엄마…’ 
 


그래, 나는 엄마로부터 도망쳤다. 집에 있었다면 또 어떻게든 살았겠지만, 죽고 싶은 순간이 매우 많았겠지. 나는 여행 중이라는 명목이 있었고 몸도 런던에 있었지만,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어떤 날은 많이 울었고, 어떤 날은 한국 드라마를 찾아보기도 했다. 오늘처럼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두통에 시달리는 날도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챙긴 타이레놀을 끝없이 삼켰다. 나아지지 않았지만 별다른 도리도 없었다.

“밥은 먹고 약을 먹어야지.”

고개를 깊게 숙이고 갈비탕을 우걱우걱 먹고 있는 내 정수리를 보며 오빠는 더 이상의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방에 돌아와서 침대 머릿 자리를 에워싼 비워진 약 껍질을 보며 울었다. 남에게 의탁하지 않으면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정도로 두통에 시달리면서, 그러면서까지 여기로 도망쳐 온 내가 답답하고 한심했다.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마음이 다리를 실컷 뻗은 느낌이었다. 울고 싶을 때 실컷 울어도 되고, 늦잠을 자도 한심하다는 듯한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다. 머리가 아파서 휘청거릴지언정,

“내가 뭘 어째 주길 바라는 거니!”

라는 차가운 말로 절망하지 않아도 됐다. 그것만으로도 됐다. 약 껍질을 대충 밀어놓고 침대에 누워,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괄호를 치며 살아가는지 생각해봤다. 

“(내가 지금 짜증 나서 그런데) 말 걸지 마.”
“집에 들어오면 (나 대신 네가 좀) 이것저것 청소 좀 해놓지.”
“동생 저녁 굶었는데 (나 대신 네가 좀) 챙겨줄 수 있는 거 아니니?”

어떤 날은 괄호가 너무 길어서 점점 더 깊게 생각하다가 지치기도 했다. 마치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들의 원인이 나인 것만 같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어느 날부터 나는 스스로를 혐오하고 있었다.

 

엄마의 퇴근과 함께 시작되는 잔소리 섞인 짜증으로 나는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장성한 남동생이 들어오질 않아 홀로 저녁을 먹어도 죽을죄를 짓는 것 같이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엄마가 퇴근할 시간 언저리가 되면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마침내 어느 날인가부터는 엄마가 퇴근을 하면 얼굴을 슬쩍슬쩍 바라보며 안색을 살피고, 죄지은 사람처럼 방어적으로 실실 웃게 되었다. 엄마의 기분이 좋은 날이면, 나 자신이 비참해서 기분이 나빠졌고, 엄마의 기분이 나쁜 날이면, 내 웃음 따위는 통하지 않으니 절망감을 느꼈다. 

엄마의 기분이 특히 나쁜 날에는 화살이 모두 내게로 향했다. 링 위에서 KO(knockout) 당하고도 계속 두들겨 맞은 사람처럼, 나는 마음이 너덜거리는 마음으로 울었다. 억울했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이 나를 가득 감싸 안았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가만히 누워서 가장 가만히 죽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다시 저녁이 돌아왔다. 

 

런던까지 와서 그런 기억에 시달리다니. ‘휴-‘ 하고 돌아누운 순간 깨달았다. 나의 도피는 철저히 실패했다. 지구 상 어디에서든 내 기억은 영원할 것이다. 누군가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고 했던가. 도망친 나에게 런던은 천국이라기보다 조금 안전한 지옥일 뿐이었다. 나의 천국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런던은 대개의 날 바람이 거셌다. 어떤 날은 해가 반짝하고 뜨기도 했다. 어떤 날은 구름이 잔뜩 껴 해가 없는 것 같은 날 도 있었다. 그날의 낮이 어찌 되었든지 간에 저녁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내 가슴은 시차를 뚫고 같은 시간이면 규칙적으로 불안해했다. 두근두근하며 심장이 뛰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의 도피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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