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 "꼭 1등 해야 돼, OO 한테 꼭 이겨야 해."

아이는 그 자체로 부모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인격과 기질이 아직 완성되지 못한 미숙한 상태에서는 외부 자극에 무척 나약하고 예민한 성향을 보이는데 이럴 때 가장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자극이 ‘비교’입니다. 

내가 다른 아이보다 공부를 못하면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열등감과 경쟁에 대한 공포를 심어줍니다. 아예 시합에서 시도도 못하고 도망치고 싶게끔 만드는 것이지요.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신은 학창 시절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1등을 당당히 요구합니다.

“너는 꼭 서울대에 가야 해.”

제가 태어나서 19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천배는 많이 들었을 겁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왜 엄마가 못 간 의대, 서울대를 나한테 요구하지?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나온 A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부모님끼리도 친했고 같은 아파트. 위층에 살았습니다. 그 친구가 대원외고에 입학할 때까지 9년 동안 저는 단 한 번도 그 친구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A는 결국 서울대 법대에 갔습니다.)

“엄마가 너 때문에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어.”

A의 아버지는 서울법대 출신의 판사였고 어머니도 서울대를 나오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본인의 학벌 때문에 아들이 공부를 못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으셨었나 봅니다.


“엄마는 왜 좋은 대학을 못 나오셨어요?”
“아버지는 왜 돈을 그것밖에 못 벌었어요? 제 친구는 강남에 사는데 우리는 왜 그래요?”

만약 이런 비교를 당하면 어떻습니까. 부모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내가 좋은 대학 못 나오고, 돈이 없으니 이렇게 무시당하고 고생했다, 너는 꼭 성공해야 돼.'

아니 당신들이 못해낸 일을 왜 어린 자녀에게 강요하시나요. 왜 본인의 콤플렉스와 열등감을 자식을 통해 보상받으려들 하시나요.


전 A와 9년 동안 같은 학교, 같은 학원을 다녔습니다. 심지어 주말에는 체대생에게 운동 과외를 같이 받았습니다. 형제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요. 

“넌 걔한테 맨날 지고 부끄럽지도 않니? 밥이 넘어가?”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는 A를 항상 라이벌이나 적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가장 미워하는 두 사람은 엄마와 A였습니다. 
 

사진_픽셀


2. "네가 엄마(아빠) 말을 안 들으면 도망가 버릴 거야."

이 말은 아이에게 심각한 수준의 유기불안을 심어줍니다. 자신의 보호자(care giver)가 사라질지도 모르다는 두려움은 아이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심각한 공백을 만듭니다. 

부모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유아기의 공포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불안이며 이것은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저희 어머니는 툭하면 이혼하겠다. 혼자 도망가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자식에게 절대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저는 매일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 돌아올 때 혹시 오늘 엄마가 없으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을 참아야 했습니다. “네가 1등을 못하면 엄마는 도망갈 거야.” 라는 말이 무서워 필사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내가 잘못하면 부모가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어린 저에게 불안과 확인 강박을 심어주었습니다. 모든 것을 계속 확인하고 체크하는 버릇이 생겼고 항상 엄마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싸우시는 날이면 엄마가 떠날까 두려워 집에서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시험문제를 실수로 틀릴까 봐 검산을 5번씩 했고, 컴퓨터 사인펜을 항상 10개씩 준비해 다녔습니다. 40살이 된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악몽을 꾸며, 출근할 때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3번 문을 당겨서 확인합니다.
 

어린 시절 들었던 부모의 말이 왜 이렇게까지 오래 남아 있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a. 아이에게 가장 발달한 뇌 영역은 측두엽입니다. 이 부위는 청각을 담당합니다.

b. 우리의 편도체는 부정적인 감정에 특히 민감한데 이 기관은 하필 기억을 저장하는 곳인 해마 바로 옆에 있습니다.

c. 해마체에서는 기억들을 일시적 기억, 단기 기억, 장기 기억으로 분류하는데, 불안과 공포가 실린 기억은 최우선 순위로 라벨링이 되어 장기 기억 폴더에 영구 저장하게 됩니다.

즉, 유년기의 상처가 된 비수 같은 말들은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습니다.

 

3. "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어."

"너를 임신한 탓에 너희 아빠와 결혼했어, 그래서 엄마가 인생을 망쳤어."

아이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실패를 분노를, 아이에게 투사하는 것만큼 미성숙하고 나쁜 부모는 없습니다. 자식을 임신한 것도, 결혼을 한 것도 온전히 자신이 내린 결정입니다. 마치 아이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내 꿈과 인생을 포기했다는 뉘앙스의 말은 아이에게 엄청난 죄책감을 심어줍니다.

왜 당신의 아이로 태어난 것만으로 이런 부당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나요.
 

심지어는 “너를 지웠어야 했어.” 라는 폭언까지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엄청나게 많으며 저희 어머니도 그중 한 분이셨죠. 

남편에 대한 분노와 원망,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그런 식으로 풀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물론 부모도 미숙할 수 있습니다. 실수할 수 있지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 부모 역시 끽해야 30대 중반이었습니다. 인격이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데까지는 30년이 걸렸습니다. 아니 어쩌면 아직 남아 있는지도 모르지요. 정신과, 심리학 책을 수백 권 읽고, 14년 동안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과 상담할 때마다 제 트라우마도 같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부모님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우리 아이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은 금수저와 학군, 인맥이나 정보 따위가 아닙니다.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그 말과 태도를 유지하는 습관. 

그것이 아이를 행복한 어른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임을 반드시 기억하세요.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신촌세브란스병원 전공의
전) 서울대병원 본원 임상강사, 삼성전자 부속의원 정신과 전문의
현)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