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초반의 남성입니다. 제 고민은 너무 오래된 문제라, 참 이야기하기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저는 초-중-고 모두 은따를 당했던 기억 때문인지 무엇이든 저만의 생각에 빠져들면, 그 틀에서 쉽게 못 벗어나는 것 같아요. 특히 제가 했던 말, 행동이 혹시 잘못한 건 아닌지, 끝없이 자책하게 돼요.

예를 들면, 친구들과 모임 후 집에 오면서 내가 잘못한 말을 항상 되짚어 봅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곱씹어 보고 이 말은 내가 잘못한 거 같다고 스스로 자책도 하게 돼요.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데도요.

이러다가 갑자기 힘을 내야지, 하는 생각으로 직장에서는 오히려 오버해서 자신감 있게 표현을 하다가 또다시 뒤돌면 후회와 자책, 질책하게 됩니다. 내가 왜 또 그랬나, 하고요.

양육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두 아들을 양육할 때도 자신감 없는 모습이 계속 보이고 아이들한테 그런 제 모습이 한 번씩 보일 때마다 너무 속상하고 양육을 잘못했나 또 걱정됩니다. 1년 전쯤 상담센터에서 치료도 3개월 정도 받았습니다. 그래도 오래된 기억들이나, 자책하는 습관은 크게 나아지지 않네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희주입니다. 대인관계 혹은, 회사 업무를 하면서 과도한 후회나 자책을 하는 것 때문에 고민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자신감 있게 회사에서 자기표현을 하셨다는 것을 보니 평소에는 스스로 자신감이 부족하고, 주장을 하는 데 있어 주저하시는 면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추측건대 글쓴이분은 자존감의 문제를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존감이란 대인관계나 직업의 영역에서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 친구, 동료 등과의 관계에서 축적되어온 존중받는 경험이 긍정적인 자존감을 만들어줍니다.

가정에서의 관계는 잘 모르겠으나, 안타깝게도 글쓴이분은 학창 시절 내내 지속되어 온 부정적인 친구 관계로 인해 긍정적인 자기감, 즉 자존감을 형성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주 잠깐 모욕당했던 경험도 평생에 걸쳐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초, 중, 고 시절의 지속적인 은따의 경험은 분명 지금의 상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스스로 남들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남들과 자신을 비교할 때는 항상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예컨대 친구들과 모임에서 친구 역시 잘못한 말이 있었을 텐데 그것은 생각이 안 나고 오로지 나의 잘못만 곱씹게 되고, 회사에서 자기주장을 하면서 그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을 테지만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만 주목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생각의 패턴은 감정적인 고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어 점점 자신을 발전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어떤 주장을 했던 것에 대해 부정적인 면에만 주목할 때 나는 남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되고, 이는 다음번의 비슷한 상황에서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고 침묵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된다면 나는 결국 아무런 주장을 하지 못하게 되고 회사에서는 점점 존재감이 없고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먼저 필요한 것은 이러한 패턴을 유발한 낮은 자존감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초중고 시절의 은따 경험을 이야기하셨는데, 당시를 회상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라면(너무 고통스럽다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떠한 말과 행동으로 자존감에 손상을 받았고 당시 내 감정과 행동이 어떠했는지를 복기하는 것입니다. 그 이전 가정에서의 분위기, 부모님이 나를 대하던 태도와 그때 나의 마음에 대해서도 차분히 돌아보는 것 역시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자책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시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진짜였고 그 감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한 것일 뿐이니까요. 비판단적으로, 좀 더 따뜻한 관점으로 어릴 때의 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만남에서 잘못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아도 여전히 친구를 만나야 하고, 회사에서 내 의견을 말했을 때 부정적인 피드백에 실망해도 다음번 회의에서도 내 의견을 주장해야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회피는 부정적 자기상을 더욱 확신하게 만들고 현실에서도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긍정적인 모습을 찾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아마도 글에서 묘사해주신 글쓴이분의 성향상 자신의 모습,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가만히 있어도 자동적으로 쏟아지지만 긍정적인 생각은 노력하지 않는 이상 잘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직접 종이에 긍정적, 부정적인 모습에 대한 목록을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많은 분들이 펜을 들기 전에는 ‘내 행동에 긍정적인 면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적다 보면 그래도 생각보다 잘한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합니다.

 

사실 낮은 자존감과 이로 인한 위축된 감정, 행동은 치열한 경쟁 속에 끊임없이 평가받고 매체의 발달로 남들과 비교하기 용이한 현대인에게 만연한 문제입니다. 이불킥한다는 말이 속담처럼 쓰이고 있는 것처럼 글쓴이분의 후회하는 성향 역시 어쩌면 남들과 별다를 게 없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자신을 자책하지 마시길 바라며, 다만 이러한 성향들로 인해 지나치게 마음이 불편하고 대인관계, 회사생활에 문제가 발생한다며 주변의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가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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