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평범한 20대 중반 남성입니다.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언을 듣고자 글을 남깁니다.

저는 적어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자존감이 중~상 수준이었습니다. '내가 이 분야에서는 최고야.'라고 자부할만한 것은 없었지만 성적, 외모, 대인관계 등 여러 방면에서 비교적 괜찮은 편에 속했고, '너는 뭘 해도 중간 이상은 해서 좋겠다.'라는 말도 들어봤습니다. 심지어 중학생 때는 '다시 태어난다면 내가 지닌 성격 그대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느낌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이유를 모르겠어서 더 답답합니다. 객관적으로 판단해보면 퇴보한 부분은 없고, 오히려 더 나아진 부분이 많은데 예전과 같은 자신감은 들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나 이거 남들보다는 괜찮은 편이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곧 만족감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아마 평소에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어서 그것도 한몫하는 것 같고요.

 

어쨌든 요즘에는 스스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매 순간 그런 것은 아니고 특히 이성 관계에 있어서 심한 것 같아요. 누군가 저에게 호감을 표시해서 사귀게 되어도 '이 사람 왜 나를 만나는 것일까? 내가 그렇게 잘생긴 것도 아닌데.'라는 의심부터 시작해서 '이런 사람이 날 좋아할 리가 없어.'라는 불안감의 굴레에 빠지고, 스스로 만들어낸 불안감이 상대에 대한 불신으로, 불신이 곧 집착으로, 아무튼 여러모로 서로 피곤한 상황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적인 감정 없이 친구로 지내는 이성들과는 매우 편하게 잘 지냅니다.

아마 외모에 대한 낮은 자존감과, '나는 남자 친구로서는 매력이 없다.'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상대방의 외모가 제 이상형에 가까울수록 자존감이 더 떨어집니다. 거기에 더해 스스로를 옭아매는 완벽주의적 성향까지 합세하니 연애에 있어서 자존감은 그냥 맨틀까지 꺼지는 듯합니다. 

보통 자존감을 높이는 법과 관련된 콘텐츠를 보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라.'라는 식인데요.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제로 제 가치를 높여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도록 외모를 가꾸고 성격을 변화시킬 생각입니다. 과연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요?? 

글이 두서없이 장황하기만 했는데 이해가 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궁금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왜 이성에만 국한되어 저런 사고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2. 내가 노력해서 발전하면 자존감도 높아질지 혹은 계속해서 더 높은 기준이 생겨날지

제 자존감은 회복될 수 있을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신림평온정신과 원장 전형진입니다. 자존감에 대한 질문을 올려주셨네요. 어떻게 보면 자존감이라는 건 현대인들의 내면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존감은 보통 우리가 개인적, 사회적, 직업적 영역에서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말합니다. 이것은 가족, 친구, 학교에서 존중받는 경험에서 유래합니다. 보통은 자존감을 뒷받침해 주는 환경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가족들이 나를 사랑해줬고 친구들이 나를 받아들여 줬으며, 학교에서의 생활도 무난하게 해 나가면서 지나치게 비난받거나 거부당하지 않고 칭찬과 격려를 받고 자랐다면 자존감이 낮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과거의 경험에서 거부당하거나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자존감에 손상을 입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존감에 손상을 입게 되면 무난하게 성장을 한 것 같지만 생활의 일부분에 대해 불안감을 가질 수 있으며, 자신이 취약한 분야에 대해 안정감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언급해주신 완벽주의와 관련된 성향도 내가 받는 느낌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내 자존감에 손상을 주는 사건이 이성과 관련된 사건이라면 그 부분에서 더 안정감을 가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특히 질문자님의 나잇대는 이성에 대한 관심, 관계에 대한 느낌 등이 꽤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으니, 이성에 대한 것들이 자존감과 직결되는 것이지요.

 

노력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가능한가 질문을 주셨는데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노력하고 발전하는 과정은 당연히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외모를 가꾸고 몸을 만다는 외형적인 노력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여기서 파악된 장점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존감이 자신에 대한 인식이라면, 그러한 과정을 살피고 왜곡된 부분은 건강하게 바로잡는 것 또한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 단점을 크게 보고, 장점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하고요.

물론 그 과정에서 내가 극복할 수 있는 단점들은 이에 대해 변화시킬 노력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결점들을 바로잡는 성취 과정을 통해서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이는 얼마든지 좋은 시도가 될 수 있습니다. 외모를 가꾸고, 성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포괄적 의미에서 자존감을 향상할 수 있지요.

 

다만 염려가 되는 건, 노력해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 외에 더 높은 기준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완벽주의와 관련된 성향이 두드러질 경우, 내가 성취하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얻기보다는 더 높은 기준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어 스스로에게 만족을 하기는 어렵게 될 수도 있어요. 타인의 반응에 따라 자신의 기대나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에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쓰는 경향이 있어 다른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연을 올려주신 분은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이미 많은 단계를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조금씩 변화해가는 과정을 경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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