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위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장재식]

 

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주변의 친한 친구들이 모두 담배를 피웠지만, 이 학생만은 친구들의 꼬임에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돌아오는 답이 이러했다.

“부모님이 제가 담배 피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세요.”

여기서 당신은 이상한 점을 발견해야 한다.

‘아니 그럼 부모 중에 고등학생 자녀가 담배 피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왜 유독 이 학생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걸까?’ 

 

친구들과 이 학생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물론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냥 담배 냄새가 싫을 수도 있다. 부모님이 너무 엄격해서 감히 거역할 수 없었을 수도 있고, 학생이 너무 소심하고 유약해서 호기심으로라도 담배를 피울 용기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관계’이다. 적어도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라는 것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진짜 이유라면 말이다. 

 

직업상 많은 청소년을 상담하게 된다. 내가 만나는 청소년들은 대개 자해를 하거나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들이다. 그들을 데려온 부모는 나에게 “애가 부모 말은 전혀 듣지 않으니 다시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도록 선생님께서 좀 따끔하게 이야기해 달라”며 요청한다.

그렇게 말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의 접근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그런 접근은 분명 그동안 부모가 수없이 해왔을 것이다. 실패가 이미 입증된 방법을 굳이 정신과까지 와서 반복할 필요가 있는가. 내키지 않지만 부모의 강권에 의해 끌려오다시피 왔고 다음부터는 얼마든지 오기 싫으면 안 올 수 있는 정신과인데 말이다. 

 

정신과 상담의 기본 중의 기본은 ‘관계형성’이다. 전문용어로는 ‘라뽀(rapport)’라고 한다. 이것이 치료에 정말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학생 때는 그저 그러려니 하며 머리로만 알았다. 하지만 실제 임상에 나와 경험해 보니 이것이 치료의 절반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라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반사되듯 튕겨 나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단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듣는다. 객관적인 사실이 어떻든 전혀 상관없다. 철저히 그 사람의 주관적 입장에서 이해하려 노력한다. 나라고 왜 그들이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생각하지 못한다 느껴지지 않을까.

 

사진_픽셀

 

요즘 영악한 청소년들은 거짓말도 기가 막히게 한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참고로 나는 소년원에서 비행 청소년을 많이 대한다). 하지만 나는 진료실에서만큼은 철저히 그들의 변호사라는 생각으로 상담을 한다. 아무리 천하에 나쁜 놈이라도 변호사는 그들의 입장에서 도우려 한다. 그들에게는 잘잘못을 가려 따지는 판사나 검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렇지 않겠는가. 판사나 검사 앞에서는 뻔한 잘못마저도 최대한 자신을 방어하며 변명하려 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그렇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먼저 그들의 편이 되려 노력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기껏 병원에 데려왔더니 의사가 자기편을 들지 않고, 아니 적어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판단해주지 않고 아이의 이야기만 들으니 말이다. 그 아이가 얼마나 교묘하게 자기 유리한 관점에서만 말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 자신도 어느 비행 청소년의 거짓말 때문에 식겁한 적이 있으니 모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관계형성을 위해 최대한 그 아이의 입장에 서려 노력할 뿐이다. 아이의 환심을 사기 위한 위선이 아니다. 그것이 내 진심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 진심이 전달되다 보면 신뢰가 형성되고 그제야 조금씩 내 조언을 꺼내 볼 기회를 탐색한다. 이제껏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들어왔던 수많은 비난들로 굳게 닫힌 마음에 노크를 해볼 기회를 말이다.

오래 상담을 하다 보니 조금은 감이 온다. 지금쯤은 내 생각을 이야기해도 되겠다 싶은 포인트가 언제인지 말이다. 그 시점이 오면 조심스럽게 시도를 한다. 분명히 그전에도 수없이 들어왔던 이야기일 텐데 관계가 형성된 후에 눈에 힘을 빼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흡수를 한다. 그렇게 천방지축이던 아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마워할 때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담배를 피우지 않는 고등학생도 평소 부모와의 관계가 두터웠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니 부모님이 힘들어하실 만한 행동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렇듯 실제 행동의 변화는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관계의 힘에서 온다.

학생과 부모의 예를 들었지만, 직장 및 사회에서도 모두 마찬가지다. 분명 맞는 말인데 왠지 기분 나쁘고 그대로 따르기 싫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명 무리한 부탁인데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러한 차이도 바로 관계의 차이이다. 

관계가 깊어지면 아무리 쓴소리를 해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반대로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섣불리 하는 충고는 관계에 독이 될 뿐이다. ‘자기가 뭘 안다고……. 당신은 나를 이해 못해’라며 반발하기 쉽다.

사실 공감과 소통이 시대의 키워드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잘 듣고 공감하려는 시도를 시작하기는 한다. 하지만 너무 섣불리 자신의 생각을 끼워 넣는 우를 범한다. “~~~는 이해해. 하지만~~~~” 이런 식의 대화는 절대 공감이 아니다. 듣는 사람에게는 공감을 가장한 지적질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신뢰이며, 이해의 시작은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잘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미루고,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더 듣는 연습을 하시라. 그렇게 하라고 신은 인간에게 두 개의 귀와 하나의 입을 주셨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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