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재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진료실에서 약물치료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약으로 마음을 치료한다는 것에 대해 아무래도 선뜻 내키지 않아 하시는 모습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약 먹어봤자 그때뿐이고 안 먹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요?”, “한 번 먹으면 계속 먹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물어보시면서 약에 의존하게 될까 봐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함께 하시기도 하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마음이 치유되는 것도 몸이 치유되는 원리와 똑같다며 몸에 난 상처에 비유해 설명을 드리곤 합니다.

예를 들어 팔에 외상을 입어 상처가 생겼다고 가정해봅시다.

가벼운 스크래치 정도의 상처면 가만히 두기만 해도 저절로 낫습니다. 우리 몸은 스스로 회복하려는 자연치유력이 있으니까요. 초반에 약간 쓰라리긴 해도 견딜만하고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없으니 그냥 며칠 기다리기만 하면 되지요.

그런데 상처가 조금 더 깊어 살점이 약간 뜯겨 나갔다고 생각해봅시다.

가만히 놔둬도 저절로 아물기야 하겠지만 상처가 회복되는 동안 통증을 줄이고 감염 같은 합병증 없이 빨리 낫게 하려면 연고를 바르거나 밴드를 붙여주는 정도의 처치를 하게 되지요. 그 정도만 해줘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큰 문제없이 결국 낫게 됩니다.

하지만 상처가 더 크고 깊어 팔의 피부와 근육이 찢어져 벌어져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가만히 놔둔다고 저절로 아물지도 않을뿐더러 만약 끝까지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다면 여러 합병증이 생겨 생명의 위협까지 이르게 되는 심각한 문제로 악화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럴 때는 봉합용 실을 사용해 근육과 살을 꿰매어 주는 치료를 하게 됩니다. 언뜻 생각하면 의사가 실로 꿰매서 붙여주는 것 같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의사가 붙이는 게 아니라 의사는 그저 살이 저절로 잘 붙을 수 있도록 결을 맞춰서 갖다 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이 최적화되어 상처가 아물게 되는 것이죠. 이렇듯 상처가 크면 자연치유력만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치유가 잘 일어날 수 있도록 보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진_픽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하는 치료도 이와 비슷합니다.

마음의 상처도 가벼운 것은 처음엔 약간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냥 저절로 좋아집니다. 조금 더 심한 상처는 운동, 취미활동, 사색, 주변의 위로나 가벼운 대화, 호흡 훈련, 명상 등을 통해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이 찢어져 벌어진 정도 수준의 큰 상처는 전문적인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외과 의사들이 사용하는 실의 역할을 하는 것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는 약물입니다. 약물치료를 통해 더 큰 합병증을 예방하고 빠른 치유에 이를 수 있는데 굳이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팔이 찢어져 근육이 벌어져있는데도 자연치유력을 믿고 그냥 기다려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선택인 것이죠. 물론 약이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실의 역할처럼 우리 몸의 치유력을 최적화시키는 역할을 해줍니다.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냐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팔의 상처를 꿰매 놨는데 너무 빨리 실밥을 풀면 금방 다시 벌어져 상처가 덧나게 되지요. 정신과에서의 약물치료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어느 정도 충분한 기간이 필요합니다. 너무 빨리 치료를 중단하면 마음의 병도 오히려 자꾸 덧나게 되니까요.

다만 치료의 기간이 정확히 얼마나 걸리는지는 특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의 상처도 그 범위와 깊이가 너무 크면 치유에 많은 시간이 걸리 듯 마음의 상처도 그 심각성에 따라 오랜 기간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상처의 심한 정도뿐 아니라 개개인의 원래 마음의 바탕에 따라서도 치료기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찢어진 상처가 아무는 것도 원래 건강한 사람이야 금방 아물지만 당뇨나 다른 신체질환으로 자연치유력이 약한 사람은 잘 아물지 않듯이, 마음의 병에서 회복되는 것도 본래 자기 마음의 바탕에 많이 좌우되는 편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바탕은 타고난 기질과 부모 자녀관계, 또래관계 등의 성장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격 같은 요인들에 많은 영향을 받지요. 결국 신체건강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본래 건강할수록 상처로부터의 회복이 빠릅니다.

 

저는 약물이 고통당하는 인간에게 허락한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정신건강의학과에서의 약물치료도 잘못된 선입견으로 인해 너무 겁내지 마시고 적절하게 이용하려는 현명한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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