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이론(Attachment theory)과, 불안정한 애착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학생 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다. 가난하고 어린 마음에 하루 경비를 지나치게 낮춰 잡았었다. 두 끼 밥값이 어려운 돈으로 배도 타고 미술관도 보다 보니 당연히 돈이 모자랐다. 여행 시작 3주가량 즈음부터 경비가 떨어져 밥 먹을 돈이 없었다. 2 유로짜리 가방만한 식빵을 사고 배고플 때마다 조금씩 뜯어 누텔라 초코잼을 발라먹으며 로마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버티는 게 가능했던 이유는 다행히도 당시 묵던 한인 민박에서 자율배식 저녁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빵 몇 조각으로 견디며 하루 종일 걷다 숙소로 돌아올 때면 상상을 초월하는 배고픔이 밀려왔다. 안 그래도 여행의 후반기라 한식이 그리운데, 그렇게 배고픈 상태에서 먹는 조선족 아주머니의 갓 지은 압력솥 밥과 김치찌개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였다 (문자 그대로 약간 눈물이 고였던 것 같다).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회상하면 늘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고 사소한 맛에도 감동하듯, 관계도 마찬가지다. 쉽게 외로움을 느끼고 자주 사람이 그립다면, 쉽게 누군가에게 빠져든다면, 실은 마음이 사랑에 고픈 것일지도 모른다.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은 볼비(John Bowlby)에 의해 창시되고 에인즈워드(Mary Ainsworth) 등에 의해 발달되었다. 애착(Attachment)이란 주 양육자와 아이 사이의 감정적 관계를 의미하며, 애착 이론은 주 양육자(어린 시절 주로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 볼비는 엄마로 특정하였다.)와 아이의 애착이 향후 아이의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며 인격의 발달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애착 발달 단계는 약 4단계로 진행이 되며 24개월 이전의 기간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자주 언급되는, ‘아이를 키울 때 첫 2년이 특히 중요하다.’는 개념의 학문적 근거가 애착 이론이다.

 

엄마든, 아빠든, 할머니든, 유모든, 자신을 키워주는 주 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secure attachment)을 형성한 아이들은 자라서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도 안정적인 관계 양상을 보인다. 타인을 대하고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상대를 신뢰하기 때문에 공연히 의심하거나 집착하지도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각별한 사이가 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지만, 그만큼 타인을 존중하고 그와 자신의 독립성을 인정한다. 서로가 여전히 서로이면서도 함께하는 편안한 사이다.

반면 주 양육자로부터의 돌봄이나 감정적 교류의 부재, 방임, 학대 등으로 인해 불안정한 애착(insecure attachment)을 형성한 경우에는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가 어려울 소지가 있다.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 이들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반면,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이들은 스스로나 타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안정적이지 못한 대인관계 양상을 보인다.

 

사진_픽사베이

 

다음은 성인 불안정 애착의 세 가지 유형이다.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타인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를 부정-회피형(Dismissive-avoidant) 애착 유형이라 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불편해하고 도가 지나칠 정도의 독립성을 추구한다. 내면의 사랑하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을 억압하고, 각별한 애정 관계가 되는 데 거부감을 느낀다. 그 거부감의 근원은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기억인데, 그때의 좌절감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그러지 못했던 과거의 상처가 두려운 나머지, 스스로를 과대하게 생각하고 타인을 평가절하하며 애초에 버림받지 않는 형태인 독립적인 삶에 매진한다.

자신과 타인 모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두려움-회피형 (fearful-avoidant) 애착 유형이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은 타인을 멀리하기보다 관계 자체를 두려워한다. 애정을 원하지만 타인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도 사랑하거나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인관계를 지속적으로 회피하게 되며 애정 자체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유 모를 공허함을 느끼기 쉽다.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타인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어떨까. 이를 불안-집착형(Anxious-preoccupied) 애착 유형이라 하며, 마음이 가는 이에게 집착하게 된다. 사랑하는 상대방은 못난 나와 대비되어 지나치게 좋은 사람, 결코 놓치면 안 되는 사람, 곁에 두어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상대에게 쉽게 마음을 허락하기 쉽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 멋진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자존감을 채우려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는 초라해진다. 끊임없이 가까워지는 관계를 추구하고, 그가 떠날까 봐 시시각각 두려워한다.

 

세 가지 성인의 불안정 애착 유형의 공통점은 만성적인 ‘사랑에 대한 고픔’이다. 배고픔이 음식에 대한 갈구를 부르듯, 사랑이 고파 사람을 그리워하게 된다. 특별한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다, 외로움을 해결해 줄 ‘누구라도’ 기다리게 된다.

부정-회피형 애착과 두려움-회피형 애착을 형성한 사람은 애초에 타인을 경계하거나 자신의 독립성을 추구하느라 타인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스스로 멀리 한다(그러나 공허함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주목할 것은 불안-집착형 애착 유형이다. 다른 불안정 애착 유형이 애초에 관계의 형성을 회피하도록 하는데 반해, 불안-집착형 애착의 소유자는 타인에게 쉽게 이끌리고 마음을 준다. 따뜻한 인사말, 눈웃음, 사소한 배려, 그간 외롭고 시린 마음에 다가오는 조그만 따뜻함에도 운명 같은 포근함을 느낀다. 그리하여 한없이 마음을 준 대상과 가까워지기를 원하고, 불안정했던 애착의 형성 과정 때와는 달리 영원히 그가 내 곁을 지켜주고 사랑해 주기를 원한다.

헤어짐을 겁내는 사람에게, 내가 모르는 연인의 마음의 공간은 무섭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 나를 미워하고 심지어 떠나고 싶은 마음이 떠오를까 두려운 것이다. 어린 시절 그토록 사랑하던 주 양육자로부터 버림받던 기억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아픔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마음 전체를 파악하려 하고, 심지어 통제하려 한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하고, 그의 생각과 행동이 내 마음이 허락하는 선을 지키기를 바란다.

시작은 꽤나 아름답고 상쾌했던 관계는 그리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진득하고 피곤한 것으로 변질된다.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만의 마음의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안-집착형 애착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독립성을 용납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상대방이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고, 처음처럼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인하려 한다. 그와 마치 한 몸이 되려는 듯,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마음을 가지기를 바란다. 타인과 온전히 생각과 마음이 같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아래에는 더 이상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 어린 시절 애착 대상으로부터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못해 비롯된 공허함, 이별을 막고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안타깝게도, 불안정 애착으로 인한 공허함과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은 현재의 관계와는 상관없는 나만의 과거로부터 초래된 것이기 때문에, 이는 타인이 채워줄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오히려 이로 인해 상대를 구속하고 상대에게 집착하느라 지금의 관계를 어렵게 한다.

 

사진_픽셀

 

과거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오늘의 행복으로 과거의 아픔을 덮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행복하기만 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삶이 행복과 사랑만을 선사할 확률은 오히려 드물다. 우리는 그저 과거에 아프기도 했지만, 오늘은 행복할 수도 있을 뿐이다.

쉽게 사랑하고 쉽게 상처 받는다면,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상대와 나 스스로를 구속하고, 그렇지 못할 때 두려움이 반복된다면 한 번쯤은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토록 그에게 끌리고 빠져드는 마음이 온전히 그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사랑에 고픈 내 마음 때문인지. 관계는 많은 행복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불안정한 애착으로 인한 공허함에는 일시적인 안도감만을 줄 뿐이다. 결국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은 알아차리는 것이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보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 안타깝게도 그때 사랑받지 못하고 외로워하거나 버림받을까 두려워했던 내면의 두려움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 지금은 어엿하게 성장한 내가, 마음속에 움츠린 채 울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 자신을 쓰다듬는 것이다.

그간 많이 외로웠지. 어느 누구보다 내가 그 마음 잘 알아. 그동안 힘들어도 잘 살아와줘서 고마워. 시간이 흘러서 이젠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어. 이제는 괜찮아, 괜찮아. 때로 공허함에 좌절하고 외로움에 울더라도, 힘들어하는 친구를 기다려주듯 마음을 기다려주고, 쓰다듬어주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하고 곁에 오래 있더라도 결국 혼자잖아요? 그렇게 서로 좋아한다면 왜 “짝!”하고 두 개가 하나로 되지 않을까요?’
....
‘글쎄, 글쎄.’
‘하지만 하나가 된다면,’
‘또다시 하나라서 외로울 거야.’ 

(호연, 웹툰 도자기, 53화 中)

 

사랑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외로운 삶의 여정에서 문득 지쳐 고개를 돌렸을 때 늘 서로의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먼 과거에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외로웠다면, 그리하여 사랑이 고프다면, 아픈 과거와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스스로를 다독여주자. 또다시 쉽게 마음을 허락하고 상처 받지 않도록, 그토록 사랑할 누군가를 구속하지 않도록.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거리에서 언제나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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