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직장
왜 가족 같은 직장은 존재하지 않을까?- 사회생활의 상처를 대하는 법과 사회불안장애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5.04 07:04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회적 위계에 의한 가혹행위, 갑질에 대한 기사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다. 그 정도가 과함을 넘어 엽기적인 수준의 일들도 많다. 뉴스에 나올 정도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사회에서 만나 일상적으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분명 혼자 살 수는 없는데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니 제명에 못 죽을 것 같다.

납득하기 힘든 의사결정을 견디고 인신공격과 경계가 모호한 질책을 참아내다 보면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때도 있다. 자기 가족에게라면 똑같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당연히 가족이 아니니까 함부로 냉정히 대하겠지 하다가도 문득 의문이 든다. 가족이나 직장이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 마찬가지인데 왜 이왕이면 서로를 따뜻이 대할 수는 없는 걸까. 왜 가족 같은 직장은 없는 걸까.

 

사진_픽사베이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는 타인의 시선이 자신에게 주목이 되거나, 낯선 사람을 만나는 등의 사회적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질환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때 공포, 불안이 발생하고, 이러한 상황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타인과 함께하는 상황에서 긴장을 느끼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일반적인 수준보다 다소 내향적인 성향이 있거나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고 해서 병적인 증상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다만 예술가가 긴장으로 인해 공연을 하지 못하거나, 직장인이 출근하기가 힘들고, 대중교통 이용이나 쇼핑 같은 일상적인 일들조차 수행이 어려울 정도의 불안을 느낀다면 이는 문제가 된다.

사회불안(Social anxiety)으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공통된 인식이 관찰된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그것이다. 낯선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진 않을까,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직장 생활을 예로 들면 자신의 성과에 대해 상사와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혹여 실수를 하거나 일을 망쳐 웃음거리가 되진 않을지,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고 비난받진 않을지를 끊임없이 염려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만나는 타인들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진 않을지를 불안해하며 관계 자체를 애초에 피하려 하기도 한다.

 

그러한 사회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타인이 나를 평가하고 있고, 좋지 않게 생각할 것 같다는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족과 달리 ‘사회는 나를 무조건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혹은 인식이다. 이는 가족 같은 직장은 존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냉혹한 사회생활에 적응하여 살아가도록, 인간은 사회로 나아가기 전 긴 연습기간을 거친다. 제일 처음 부모와 관계를 쌓고 학교에서 선생님, 친구, 선후배와 어울리다 아르바이트 등의 수습 생활을 하며 사회의 맛을 미리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사람을 대하는 경험도 쌓일 만큼 쌓아서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처음 시작하는 사회생활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태어나 가장 처음 접하는 관계인 가족 관계의 본질은 무조건성이다. 원해서 재벌가의 자식으로 태어날 수 없고, 전국 1등 아이를 가질 수도 없다. 내가 누군가의 자식이고 형제인 이유는 스펙이 뛰어나서도 업무 능력이 월등해서도 아니라, 단지 그렇게 태어나고 낳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을 아득히 뛰어넘는 본능이 가족을 묶는다. 행복을 나누기도 하고, 크나큰 아픔이 있을수록 더욱 애잔하게 서로를 보듬는다.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다.

친구 사이는 어떨까. ‘친구’라는 단어를 보고 처음으로 떠오르는 그 녀석을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어쨌든 참 편안하다. 벗은 가족과는 다른 형태의 안식이다. 친한 친구들과 만나서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실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돈만 쓰고 인생에 하등 도움될 일은 없다. 이득의 관점에서 보면 만날 이유가 전혀 없는 이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소중하다. 아무런 이유가 필요 없는 사이, 그냥 좋아서 함께 했고 함께 해서 좋은 사이. 그렇기에 냉정한 세상을 살아가는 위로가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할 것도 딱히 해줄 것도 없다. 만나면 지긋지긋하고, 또 애틋하다.

 

그런 가족의 품, 친구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해한 인간관계의 틀을 가지고 사회로 나아가서 처음으로 느끼는 사회의 온도는, 이때까지 느꼈던 사람의 온정보다 차갑기만 하다. 사회의 관계는 조건부이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의 관계를 묶는 단 하나의 끈은 냉엄한 이익의 논리다. 어울려 놀기 위해 직장에 출근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각자가 각각의 역할을 다할 때 조직 구성원 모두의 이익이 극대화되고, 그 성과는 개개인의 생계와 직결된다.

즉, 사회적 관계는 취향보다는 목적으로 함께한다. 함께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돈을 벌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역할을 기대하며, 이로 인해 ‘시선’이 발생한다. 한 개인의 역량은 얼마인지, 그 능력을 공동의 목표에 충분히 투자하고 있는지, 얼마나 성과를 내고 있는지, 좋은 말로 서로를 독려하고, 나쁜 말로 견제하고 감시한다. 하루 중에도 수많은 피드백이 수시로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엄마의 눈에는 모든 아들이 원빈이지만, 세상에 원빈은 한 명뿐이다. 도덕 교과서는 출신, 경력, 능력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 하지만 조건에 따라 어떤 이는 면접에 붙고 다른 이는 탈락한다. 조직은 그 특성상 그 조직의 존재 이유에 가장 부합하는 이를 우대하고 그렇지 못한 이를 배척한다.

그래서 서로를 따뜻이 보듬기보다 시시각각 평가하고 독려하며, 때로 비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생활이다. 각종 직위, 권위, 위계질서, 규율 등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커다란 집단에 비해서 항상 보잘것없는 개인은 끊임없이 타인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한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지 않기 위해, 성과와 평판을 유지하려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서글픈 모습이다.

 

이쯤 되면 어쩌자는 말일까. 사회생활의 본질이 그러니 완벽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사회적인 관계의 고통은 원래 그런 것이니 감내하자는 것일까. 아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 이러한 사회생활의 어려움 역시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가족 간에도 때론 원수처럼 싸우고 다신 보지 않을 때도 있다. 오래된 친구와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등지는 일이 다반사다. 하물며 생각이 비슷해서도, 마음이 결이 닮아서도 아닌 이득을 위해서 모인 사회적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사람의 가치관은 너무나 다양해서, ‘정말 나와 잘 맞는구나.’라고 생각할 만한 사람은 본디 드물다. 운이 좋게 마음 맞는 사람과 합을 맞추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달리 말하면 일상적인 일은 아니다.

 

사진_픽사베이

 

인간이 본디 완벽하게 태어났고, 이견이 있을 때 감정 없이 이성으로만 서로의 의견을 조율할 수 있다면 애초에 갈등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능력적으로, 감정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없다.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삶은 참 편안할 것이나, 아쉽게도 우리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갈등은 사회생활에 언제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가족 같은 직장은 없다. 이득을 위해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인 사회에서 무조건적으로 나를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줄 공간도 없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좌절 역시 필수다. 하지만, 이러한 원리가 어느 누구의 예외도 없이 모두에게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치 자신은 죽을 때까지 완벽할 것인 양 사회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이들을 들여다보면, 남모를 스스로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도 많다. 만약 당신이 오늘 사회에서 갈등을 겪었다면, 유달리 당신이 부족해서 겪은 일이기보다는, 생계를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극히 슬프고도 평범한 일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정도를 넘어서는 인간적인 모독은 절대, 예외다.)

 

한참 격무와 사람 사이의 스트레스로 고생할 때, 하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직장에 출근하는 일이 너무 즐겁고 업무에 행복만이 가득하다면, 마치 영화표 값을 지불하듯 돈을 내고 출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고 기쁜 순간들도 많이 있지만, 누가 수행하더라도 힘들 일을 버텨내고 있기에 소중한 남의 돈이 월급으로 주어지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러니 사회에서 던져지는 슬픔을 끌어안고 있지도 말고, 좋지 못한 평가가 주어질까 지나치게 신경 쓰지도 말자. 갈등이 생겼을 때, 부족한 스스로를 지나치게 비난하거나 그러한 상황, 이를 유발한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피하기보다, 너도 나도 완벽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겠구나 라며 쓴웃음으로 넘기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다만 사회에서 만났음에도 진심으로 나를 대해주는 이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어제 보다는 오늘이 나아지도록 노력하면 어떨까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월급날에는 이득도 손해도 되지 않는 시시껄렁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자. 그렇게 내가 참고 버텨 또 원수 같은 돈을 받았다고, 오늘은 한잔 하자고.

 

 

일상이 메마르게 느껴지고 삶의 의미를 모르겠다면

► 정신의학신문 마음건강센터 무료마음건강검진 바로가기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 뮴뮴이 2019-05-06 09:28:00

    오늘 글 참 좋네요. 하긴, 그렇게 즐거울 회사생활이면 돈을 내고 하는 일이 되겠지요. 일 자체는 즐거운데 사람때문에 치이는 순간이 가끔 오면, 대체 왜 일하면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하고 한탄하곤 했죠. 돌이켜보면, 결국 우리 모두 돈 때문에 꾸역꾸역 모인건데 말이에요. 다른 각도로 보게 되니 조금은 사람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경감되는 느낌입니다. ^^   삭제

    • eunu 2019-05-05 00:56:39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수시로 들어와서 읽어보고, 주변에 추천하고 있습니다^^   삭제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인터넷신문윤리강령이메일무단수집거부CONTACT
      (주)정신건강연구소  |  정신의학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105-87-08929  |  등록번호 : 서울, 아03874  |  등록일자 : 2015년 8월 25일  |  발행·편집인: 박소연
      서울 종로구 옥인동 자하문로 17길 보광빌딩 12-10  |  대표전화 : 070-7557-9104  |  팩스 : 02-320-60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선우
      Copyright © 2019 정신의학신문-의사들이 직접 쓰는 정신 & 건강 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 Back to Bot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