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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지 모르겠다면, 가치가 들려주는 삶의 이유- 수용전념 치료적 관점에서의 목표와 가치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4.21 12:58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치보다 현실이 앞서는 시대다. 소설가 김영하는 현실이 힘겨운 작가 지망생이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냐고 물으면 ‘작가 하지 말라.’는 답변을 한다고 했다. 본인이 대학 다닐 땐 매년 경제 성장률이 두 자릿수 이상, 지금의 4~5배였고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없었으며, 무엇을 해도 나아질 것 같은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도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었으며,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취업을 할 수 있었던 시기였단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학자금 대출이 있었다면, 아버지의 수입이 없었다면, 아파트 담보 대출이 있었다면? 지금은 기대 감소의 시대, 저성장 시대이기에 자기 내면을 지키는 것도, 꿈을 따르는 결정을 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럴까. 꿈을 찾는 사람은 좋게 말하면 로맨티시스트, 나쁘게는 배가 부르거나 철이 덜든 사람이 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반면 모호한 꿈 따위보다는 현실, 달리 말해 스펙, 자격증, 취직, 연봉, 투자계획 같은 목표를 잘 세우고 성취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각광받는다.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진료실에 있으면, 의외로 대단한 성과를 이룬 분들도 많이 만난다. 성공한 사업체의 사장, 중견 기업 임원, 대학 교수, 전문직, 최상위권 성적의 학생... 남부러울 것 없는 이들이 무엇이 아쉬운 걸까. 돈 문제, 가족 문제 같은 다른 스트레스가 겹친 걸까? 그런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도 없고, 명예가 있어서 나쁠 것도 없다. 성과를 위해 몰두하는 것은 멋지기도 하다. 하지만 성공한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목표만을 향해 달리는 것이 지친다고, 잘 사는 법은 알 것 같은데, 왜 사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사진_픽셀

 

수용전념 치료는 맹목적으로 눈앞의 목표를 따라가기보다 가치를 따르는 삶을 제안한다. 가치는 달성하기보다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어느 순간 달성되는 체크 포인트가 아니라, 살아가며 조금씩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것이다. 혼란한 생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이정표, 지침이다.

목표는 수치화, 계량화되기 때문에 눈에도 잘 되고, 뚜렷한 지표로 삼기 좋다. 그에 비해 가치는 모호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직장에 취직하겠다, 돈을 얼마나 모으겠다, 어떤 배우자를 만나겠다.’와 같은 성과를 달성하는 데 매몰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들은 잘 달성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충분한 노력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실적인 목표의 달성 여부로 일희일비하면서는 행복을 담보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가치다.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고자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를 세운 이유인 가치를 망각하고, 목표 그 자체에만 매달린다면 어떨까. 사교육비를 뒷바라지하느라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을 잃고, 아이의 성적 변화에 전전긍긍하게 되고, 자신의 희생을 알아주지 않는 아이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목표를 추구하는 데 몰두할수록 성과만을 기대하게 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 때 좌절하게 된다. 서울 의대만을 바라보던, 드라마 스카이캐슬 속 엄마들의 마음이다.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는, 성과와 별개로 살아갈 힘이 주어진다.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가치를 추구하고자 ‘이번 주 안으로 10만원 기부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형편이 힘들어 도저히 기부할 여력이 없다고 하자. 목표만을 생각한다면 실패가 속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목표를 만들어낸 가치를 떠올린다면 힘든 이들을 찾아 따뜻한 말을 건네거나 봉사를 하는 등, 달성이 어려운 목표 대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비록 주어지는 현실은 우리의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지만, 스스로가 믿는 가치를 향하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으로 나아간다.

 

신을 기만한 시지프스는 거대한 산꼭대기로 바윗덩어리를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무거움보다 사무치는 고통은 공허함이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고된 노동으로 겨우 정상까지 올려놓은 바위는, 이내 속절없이 굴러 떨어져 버린다. 그리고 그는 그 고통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산을 내려가야 한다. 목표만을 따라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은 시지프스를 닮았다.

힘들어서 힘든 일은 의외로 드물다. 오늘이 이렇게 힘든데 그것이 내게 큰 의미가 있는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인지, 소중한 삶의 가치와 닿아 있는 일인지 모호할 때, 마치 다시 굴러 떨어져 내릴 바위를 들어 올리는 심정으로 살아갈 때, 그 무의미함이야말로 견디기 어렵다.

반대로, 아무리 힘들어도 가치 있는 일임을 스스로 안다면 견딜만하다. 가치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자기 자신도 놀랄 정도의 힘이 있다. 오늘만큼의 고단함이 행복, 원하는 삶의 모습, 사랑하는 사람들의 웃음으로 이어질 것을 상상할 수 있다면 어깨의 짐도 조금은 가볍게 느껴질 것이다.

 

가치를 되새기는 일은 우리에게 삶의 고난과 행복을 풀어 설명해준다. 하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던 일, 노력하고 견뎌야 했던 일, 그리고 기뻤던 일이 왜 그런지 알려 준다. 많이 힘들지, 대신 그 덕으로 네가 상상하는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어, 사랑하는 사람이 웃었어,라고.

이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어진 책임을 내던지고 백일몽을 좇자는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어 이토록 노력 중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기에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자는 이야기다. 나만의 가치를 상상하고 추구하는 것은 배부른 고민도, 철이 덜 든 생각도 아니다. 오히려 긴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가치를 되새길 때 우리는 삶을 견디는 것을 넘어 비로소 삶을 산다.

 

사진_픽셀

 

인턴 동기 형이 대학 때 밴드를 했었다. 꿈은 락스타였다. 동아리 수준이 아니라,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드럼을 쳤다. 정규 앨범을 수차례 내고, 유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연도 했다. 학업을 병행했지만 당연히 한계가 왔다. 선택의 기로에서 형은 의사를 택했다. 숭고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밴드로 의사보다 잘 될 자신이 없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고 했다.

잘난 총각 동기들이 훌륭한 조건을 맞춰가며 선을 볼 때 형은 함께 밴드를 하던 형수님과 결혼했다. 유일한 수입이던, 최저시급보다 적은 전공의 월급을 아껴 아이를 키웠다. ‘동기들 중에 내가 제일 가난할 것 같은데, 적게 먹고 적게 싸면 마음은 편해.’라며 웃었다. 취중을 핑계로 음악이 생각나진 않냐고 물으니 아이가 너무 예쁘다고 대답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태워다 주며 열심히 수련받던 형이 이직할 때가 되었다. 더 많은 돈을 주지만 집에서 먼 직장과, 봉급은 많이 적지만 집에서 가까운 직장 사이에서 고민하던 형은 후자를 택했다. 인턴, 전공의 때도 친절하다고 소문났던 형은 월급보다 열심히 일했다. 아이가 유치원을 가면서 직장인 밴드를 다시 시작하더니, 최근엔 홍대에서 정말 오랜만에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현실에 따라 목표는 자주 바뀌어 왔지만 행복이란 가치는 참 꾸준히도 따르던 그 삶의 궤적은, 어떤 보헤미안 락스타의 영화 같은 인생보다도 내게 영감을 준다.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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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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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쿤 2019-04-22 21:09:48

    생각하게 하는 칼럼 잘 읽었습니다.   삭제

    • 김가 2019-04-21 23:25:02

      그렇군요....
      어느 날 문득 지쳐 멈춰 서서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다시
      되새겨 봄으로써
      그동안 힘겹게 견디어 온 자신의 삶을 누리고 만끽하는
      것으로 가게 된다.

      감사합니다.^^   삭제

      • 사과숲 2019-04-21 21:49:27

        급하게 대열을 따라가다, 불현듯 주머니에 넣어둔 소중한 것을 어디선가 흘렸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와서 사람들이 뛰는 방향을 등지고 거꾸로 걸어가기엔 차갑게 꽂힐 눈총이 무섭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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