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복 강박의 늪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누가 했는지 모르겠지만 참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기가 막힌 명언이다. 각자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는 깨닫는다. 항상 비슷한 것을 욕망했었고, 반복되는 같은 이유들로 아파했다는 것을.

새로운 연인에게 우리는 마치 다시 태어난 사람이 된 듯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이전에 만났던 상대와 싸울 때처럼 다투고 이전 이별을 반복하듯 비슷한 모습으로 헤어진다. 선배의 비위를 잘 맞추지 못하던 학생은 취직해서도 상사를 모시는 데 애를 먹고, 후배의 마음을 잘 얻지 못하던 이는 나이를 먹어서도 아랫사람들의 욕을 모은다. 불나방에 홀린 듯 같이 있으면 나쁜 일만 있는 친구와 자꾸 어울린다. 따지지 않으면 피해를 볼 법할 때는 순한 양처럼 참고, 성질을 죽이지 않으면 손해가 될 때 불 같이 화를 낸다. ‘앞으로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은, 다짐 자체가 앞으로 그러지 않을 자신이 적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진_픽사베이

 

살다 보면 누가 봐도, 스스로 봐도 어떤 것을 행하거나 행하지 않는 것이 내게 이로운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 기묘하고 곤란한 것은, 그러한 경우들이 동일한 양상으로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운명, 팔자, 성격 등 여러 단어로도 표현되는,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끊임없이 사서 고통받는 경향의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이트는 이러한 경향성을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 칭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스스로에게 가학적인 행위가 주어질 때 쾌감을 느끼는 피학(masochism)과는 다르다. 

피학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고통을 받을 때 스스로 고통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과, 내적으로 분비되는 아편 유사 호르몬들로 인해 쾌락을 느낀다. 그에 반해 반복 강박은 주체가 이로 인해 쾌감이 아닌 고통이 올 것이라 분명히 인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유발할 것이라 예상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경향이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한, 이 아이러니한 행동양식에 대해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죽음 본능을 비롯한 다양한 개념이 등장하지만, 직관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으로 종합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인간은 스스로의 가치체계를 명확히 정립하기 전부터 삶의 경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어머니가 시달리던 환경에서 자란 아이를 생각해보자. 갓난쟁이 아이는 그 상황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해서 집을 뛰쳐나가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 기나긴 시간을 부모와 함께 살며 아이는 반복하여 험악한 말과 격렬한 신체적 위협을 목도한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폭력적인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타하는 ‘패턴’이 내적으로 각인된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어른이 되고 사랑을 한다. 남편의 구타에 시달리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자신은 절대 그러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녀가 만나왔던 이들이 공통적으로 폭력적임을 깨닫는다(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패턴의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패턴의 함정, 익숙함의 함정이다.

다정한 남성과 함께하는 것이 행복한 가정을 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쯤은 그녀도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내면이 익숙하게 인식하는 남녀의 관계가 서로 안정적이고 편안한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러한 차이는 혼란을 야기하고, 그녀가 그녀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남성에게 빠져드는 데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낯선 행복의 가능성을 그녀는 믿지 못한다. 내면에 내재된 익숙한 패턴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내게 왜 이러는 걸까, 이렇게 나를 대하는 것은 혹시 다른 이유나 바라는 게 있어서는 아닐까.’ 공연한 의심이 발생하고, 관계로의 몰입은 어렵다.

이에 반해, 거친 남성은 그녀에게 두렵지만 편안하다. 폭력적인 성향의 남성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부모의 삶을 보며 그녀의 무의식 속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패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이 별로인 사람은 드물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폭력을 멀리하지만 그녀에게 이는 제한이 되지 않고, 폭력적인 부분과 상관없는 그의 다른 매력에 그녀는 빠져든다. 그것은 폭력이 나쁘다는 것을 그녀가 몰라서도 아니고,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구태여 찾아 나섰기 때문도 아니다. 그녀는 생각한다. ‘그렇게 나를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자고 다짐했는데, 왜 매번 이런 사람에게 나는 빠져드는 것일까.’

 

가치 체계,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마음에 자리 잡는 패턴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앞서 언급한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잘 안 된다.’는 표현의 이유는 이러한 경향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도 결국에는 무의식의 커다란 영향 아래 있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믿을 만한 동반자이다. 삶의 대부분의 문제는 이성적인 판단이 그릇된 데에서 기인하기보다, 상당히 괜찮은 이성적인 결론을 내리고서도 이를 따르지 못한 결과로 생긴다. 무의식 속에 숨어 내가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훼방 놓는 고약한 경향성이 반복 강박이다.

반복 강박의 마수는 폭력, 자기 파괴와 같은 강렬한 심리 외상적 경험에 국한되지 않는다. 필요한 일을 미루는 버릇, 시간이 흐른 뒤의 더 큰 보상보다는 당장의 작은 쾌락을 추구하는 태도, 익숙함에 속아 연인의 소중함을 잊는 어리석음처럼 일상 전반에 걸쳐 행복과 나 사이를 갈라놓는다.

 

사진_픽셀

 

어떻게 하면 반복 강박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해결책은 정신 분석, 인지 치료 등의 면담을 통해 깊은 통찰을 얻는 것이다. 즉, 내게 왜 그러한 반복 강박의 경향성이 생겼는지, 그 근원을 거슬러 오르거나 생각의 구조를 돌아봄으로써 마음을 이해하면 더 이상 거기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며 실제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도 하고, 당장 정신과를 찾기엔 부담되는 선에서 교묘히 나를 괴롭히는 패턴들도 많다.

 

반복되는 슬픔의 굴레를 벗기 위한, 한 가지 추천하고 싶은 관점이 있다. 바로 ‘지금은 달라졌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반복 강박의 경향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하루아침에 공고히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럴 때는 이런 적이 많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는 식의, 삶의 경험이라는 빅데이터를 (주관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해석하여 만들어진 일종의 알고리즘이다. 문제는 우리가 삶의 주관을 세우고, 나름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러한 경향들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성실하기, 더 큰 보상을 위해 기다리기, 화를 잘 참기와 같이, 운이 좋으면 그 경향들이 삶의 행복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예들처럼 나를 파괴하고 행복을 저해함에도 불구하고 반복하는 반복 강박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이러한 경향들의 근원은 과거에 있다. 그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는 사실, 더욱 주체적이고 삶을 위한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새로운 삶의 국면이 찾아온다. 예컨대 매 맞는 어머니를 보며 눈물을 흘렸던 딸이 그 당시에 아버지를 변화시킬 방법은 없었지만, 자라서는 폭력적인 남성을 피하고 어떤 형태로의 폭력에도 단호히 거부할 수 있다.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이용당하는 마음의 근원에 사랑받으려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 맹목적으로 노력했던 어린 시절이 있음을 알면,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이 생긴다.

꼭 명확한 이유를 떠올리기 힘들어도 괜찮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그렇게 된다는 그 이질감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이런 마음들이 생긴 어떤 이유가, 지금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과거에 있을 것이다. 그때의 당신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다른 사람이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자꾸만 나를 괴롭히는 미운 마음, 반복 강박의 경향이 생긴 이유가 과거에 있을 것이나, 그 이유를 알든 모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지금의 당신은 그때보다 성숙했고, 무력했던 과거와는 달리 얼마든지 스스로를 위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지금은 달라졌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익숙한 길은 당장 걷기에 편안하다. 새로운 길은 잘 모르기에 두렵다. 하지만 많이 걸어봤던 경험, 익숙함이 행복을 위한 길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슬픔의 늪으로 하염없이 침잠할 것을 알면서도 익숙하다는 이유로 그 길을 선택하기보단, 이제는 과감히 나를 위한 새로운 길을 걸어 보면 어떨까. 반복 강박의 굴레를 벗어나 한 번뿐인 내 삶을 위한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을 따를 용기를 내 보는 것이다. 가본 적도 없고, 구름에 가리고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길이지만 멀찌감치 보이는 빛을 좇아 향하다 보면, 혹시 모른다. ‘이래서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들 했었구나.’ 비로소 느끼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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