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본 글에는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관련한 스포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말 뜨겁습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무서운 흥행속도를 달리고 있죠. 어벤져스 엔드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개봉 첫 주에만 약 1조 4천억 원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도 어벤져스 엔드 게임은 하루에 거의 백만 명이 볼 정도로 역사적인 흥행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군부대에서는 한 이등병이 어벤져스 엔드 게임을 보고 싶어 탈영까지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일어났다고 하네요.

무서운 흥행 속도만큼 인터넷 상에서는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 대한 스포일러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네티즌들은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 대한 스포일러에 노출되기 전에 영화를 봐야 한다며 예매를 서두르고 있고, 암표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왜? 스포일러들은 남한테 피해를 줘가면서까지 왜 그러는 걸까요? 가학적인 사람들이어서? 일부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많은 스포일러들을 모두 ‘가학’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요? 오늘은 그 비밀을 ‘진화심리학’과 함께 풀어보고자 합니다.

‘진화심리학’이라고 해서 어려운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진화심리학’은 아주 simple한 이론이거든요. ‘과거에 의해 형성된 심리기제가 시간이 지나서 현재에도 여전히 똑같이 작동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계셔도 이해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사진_픽셀

 

그전에 먼저 스포일러들이 스포를 하면서 어떠한 심리상태일지 느껴보는 게 중요할 거 같습니다. 많은 스포일러들은 스포라는 행위를 하면서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합니다. 순환논리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렇기 때문에 스포라는 행위가 만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리적 이득이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행위를 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심리적 이득이 왜 생겼는지를 알게 되면, 스포일러들의 심리에 대한 비밀이 풀릴 거 같네요.

앞에서 스포(?)했었지만, 이 심리의 비밀을 풀려면 진화심리학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진화’라는 이름답게 몇 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 인류 조상들이 소규모의 집단을 이뤄 야생 밀림에 살고 있는 그 때로요.

이 시절 우리 조상들은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모든 것이 미지의 세계였죠.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정보를 선점하는 건 권력이었습니다. SBS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만 봐도, 정글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김병만은 그 집단의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안전하지 않은 미지의 장소에서는 그 장소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권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가 탄생하자마자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태어난 건 절대 아닙니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니까요. 안타깝게도 도태를 통해 배워간 것이지요. 만약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꽤 고약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인류가 그토록 오랜 기간(몇 백만 년을 ㅠ) 고생하지 않게 처음에 만들 때부터 줄만한 건 주셨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으셨으니까요.

여하튼 누군가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걸 알게 되고, 그러면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러면 선점한 정보를 가진 개체는 그 집단 내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집단이 만들어지고 집단 내 서열이 형성이 되었던 거지요. 즉, 어떠한 정보를 선점하고 퍼뜨리는 건 우리 유전자에서는 집단 내에서 서열이 높아질 수 있는 신호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긍정적인 정서 경험으로 느끼는 것이고요.

 

완전히 일치하는 사례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위와 같은 과정을 비슷하게나마 상상해볼 수 있는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페어차일드 전세기 조난 사례인데요. 우리 조상들의 환경과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부분에 있어서는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에 이 기회에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어차일드 F-227 전세기는 우루과이에서 칠레로 비행을 하다가 끝내 칠레에 도착하지 못하고 남미의 눈 덮인 안데스 산맥에 추락하였습니다. 그 추락 사고에서 생존한 승객들은 혹독한 영하의 안데스 산맥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련에 직면하게 되었죠. 먹을 게 없는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냉동된 인육을 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존에 습득된 규범이 그러하였으니까요.

조난 4일째가 되던 날, 젊은 남자 한 명이 식량의 유일한 원천이 냉동된 인육이라는 의견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동조하지 않았지요. 그 젊은 남자는 주변 비슷한 친구들부터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젊은 남자가 중심이 되어, 점점 인육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해졌고, 마침내 인육을 먹는 것이 그 집단 내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되었죠. 그 집단 내에서 그 젊은 남자는 리더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버티던 조난자들은 결국 구조가 되었습니다.

 

스포일러들이 영화에 관한 정보를 먼저 습득하고 퍼뜨리려 하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스포일러들은 스포라는 행위를 할 때 자동적으로 긍정적 정서 경험을 합니다. 그 이면은 앞에서 기술한 진화 역사에 기인해 있는 것이고요.

사회적 위치라는 딱딱한 표현을 썼지만, 좀 더 피부로 와 닿는 표현으로 바꾸면 결국 자존감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평소 자존감이 낮은 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이 스포일러로 활동할 확률이 높습니다. 100%의 사람이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스포일러를 하는 사람 100명과 스포일러를 하지 않는 사람 100명의 자존감 수치를 비교해보면 스포일러를 하는 사람들의 평균 자존감 수치가 낮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스포일러를 할 때 느껴지는 희열은 앞서 언급했던 연유로 과거에 의해 탑재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느껴지다시피 앞에서 언급한 여러 생존과 관련한 상황들은 현재에는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 말은 그 희열을 따라 행동을 했을 때, 과거에는 이득을 주었을지 몰라도, 현재에는 이득이 별로 없다는 뜻이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 이것이거든요.

과거에 발목 잡혀 의미 없는 행동, 게다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스포일러가 순간적인 희열을 조금 안겨줄지는 몰라도 궁극적으로 내 자존감을 올려주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가치가 낮은 것 같다면, 자존감을 높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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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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