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평일에 일하느라 늘 수면 부족입니다. 주말은 꿀잠을 잘 수 있는 기회이죠. 주말이면 늘 마음을 먹고 자명종도 지워놓고 잠에 드는데요. 그런데 이게 웬 걸요? 아침에 잠에서 깨어 보니, 새벽 6시네요. 출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난 이렇게 일찍 눈이 떠졌을까요? 이럴 때는 억울합니다. 마음 놓고 늦잠을 자려고 했는데 말이죠. 직장인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겪어봤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사진_픽사베이

 

인간은 그때그때의 의지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높은 확률로 괜찮은 결과를 내는 프로그램을 미리 탑재하고, 그 프로그램대로 작동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아침에 일어날 때 우리에게는 어떠한 프로그램이 작동이 되는 것일까요?

일단 우리에게는 요일을 구별할 수 있는 탐지 체계는 없습니다. 가끔은 핸드폰을 보지 않으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를 때도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지금이 2019년이니까, 지금의 달력이 만들어진 건 기껏해야 2000년 정도입니다. 진화 역사를 몇 백만 년으로 봤을 때, 2000년은 0.1%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지금의 달력이라는 체계에 적응을 했을 확률은 상당히 떨어지죠. 결국 우리는 요일을 구별해서 적응하는 프로그램이 탑재되기는 어렵습니다. 요일과 상관없이 작동하는 프로그램이 작동할 확률이 훨씬 높지요. 그렇다면 요일과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어떠한 프로그램이 작동할 확률이 높을까요? 결국은 양과 질에 의해서 결정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단, 양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평일은 주 7일 중에 5일입니다. 주말은 2일밖에 되지가 않고요. 양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평일 새벽 시간에 일어나는 프로그램이 요일을 가리지 않고 작동할 확률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일보다 주말이 더 많은, 그런 날이 온다면 새벽에 일어나는 현상이 역전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전에 진화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오류관리이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가볍게 던진 질문으로 시작을 했는데 쓸데없이 고퀄로 가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그런데 사실은 이 오류관리이론을 이야기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이 오류관리이론으로 되어 있으면 아무도 읽지 않을 거잖아요? 이참에 지식을 늘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오류관리이론은 이해하기에 그렇게 어려운 이론은 아닙니다. 우리가 오류를 일으키는 확률이 무작위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론입니다.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오류를 두 가지로 simple하게 이야기를 해본다면, ① 있는데도 없다고 여기는 경우, ② 없는데도 있다고 여기는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 원시 시대에 만약 풀숲에 풀이 사르르 움직이는 것이 관찰되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여기서 전자(①)의 오류는 풀숲에 호랑이가 숨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없다고 여기는 오류가 됩니다. 후자(②)의 오류는 풀숲에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호랑이가 있다고 여기는 오류가 됩니다.

만약 두 오류가 무작위로 일어난다면 50 대 50의 확률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 50 대 50의 확률로 무작위로 오류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후자(②)의 오류가 극단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전자(①)의 오류는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자(①)의 오류를 일으키게 되면 잃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풀숲에 호랑이가 숨어 있었는데도 없다고 오류를 일으키게 되면 그 결과는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손실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후자(②)의 오류, 즉 호랑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있다고 여기는 경우에는 잃을 것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냥 깜짝 놀라고 나면 그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있다고 여기는 오류를 훨씬 더 빈번하게 일으킵니다.

이렇게 오류를 일으키는 빈도의 차이가 있고, 거기에 진화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 ‘오류관리이론’입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귀신의 존재도 위와 같은 이유로 오류관리이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진_픽셀

 

그렇다면 이 ‘오류관리이론’이 우리가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새벽 6시면 눈이 떠지는 현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오류는 두 가지입니다. ① 출근을 해야 하는데, 주말인 줄 알고 늦잠을 자는 경우, ② 주말인데, 출근을 해야 하는 줄 알고 일찍 눈이 떠지는 경우입니다. 어떤 오류가 더 빈번하게 일어날까요?

맞습니다. 전자(①)의 오류를 일으키면 우리가 잃을 것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상사에게 많은 꾸지람을 듣게 될 거고요. 반복되게 되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후자(②)의 오류를 일으키면 상대적으로 잃을 게 많지 않습니다. 그냥 한 번 깜짝 놀라고 다시 잠에 들면 됩니다. 손실의 경중 차이가 명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후자(②)의 오류를 훨씬 더 빈번하게 일으킵니다.

결국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새벽 6시면 눈이 떠지는 현상은 우리가 직장을 잃지 않게 해주는 소중한 경보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의 오류가 빈번하게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결과가 어떤지 생각해보신다면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직장이 내게 큰 의미가 없고, 월급이 중요하지 않는 경우라면 마음껏 전자(①)의 오류를 일으키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후자(②)의 오류를 일으키는 자신을 받아들여주셔야 합니다. 오류 경보 시스템이 거꾸로 되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테니까요.

 

상기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새벽 6시면 눈이 떠지는 경험을 종종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진화적으로 그냥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니까요.

필자가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지요.

‘할 수 없는 것은 바라지 마라.’

이 명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아주 커다란 도움을 줍니다. 할 수 없는 것을 바라게 되면 결국 돌아오는 건 자책이 될 수 있거든요.

‘난 왜 이럴까.’

오늘 내가 왜 그러는지를 알게 되었으니, 새벽 6시에 눈이 떠지는 자신을 더 이상 책망하고 원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그러한 것임을 받아들이고 다시 잠을 청하면 될 듯합니다. 내가 직장을 잃어 생계에 위협을 주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소중한 경보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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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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