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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힙합] 15. 자존감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2.24 10:20

[정신의학신문 :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가 힙합 음악을 듣기 시작한 때는 내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던 시절, 공부로 날고 긴다는 아이들을 모아 놓은 고등학교를 다녔다. 공부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렸다. 시험을 칠 때마다 등수는 10등씩 떨어졌다. 더 이상 떨어질 등수가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내려갔다. 잘하던 유일한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내 존재의 가치를 찾지 못했다. 자존감이 낮으니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단짝 친구와는 사소한 말다툼을 계기로 왕래를 끊었다. 그때 나를 지켜주는 것은 ‘힙합’ 밖에 없었다.

내 가치를 몰라주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였을까? 래퍼들이 거침없이 내뱉는 미국 욕, 에프 워즈(F words)가 좋았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혼자 마구 외쳐보기도 했다. 나를 무시한 누군가를 떠올렸다. 나를 외면한 누군가를 떠올렸다. 내 가치를 몰라주던 세상을 향해 내가 낼 수 있는 최소한의 목소리였다. 그 당시에 나는 적어도 감정을 억압하지는 않았다. 무분별하게 폭발하지도 않았다. 내 안의 ‘화’를 무시하지 않았다. 래퍼들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네 안의 ‘화’를 안다고, 그 감정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나를 대신해서 세상에 외쳐 주었다.
 

I woke up screamin' f**k the world! 
난 일어나서 외쳐. 엿먹어라, 세상아!

- 2Pac <F**k the world> 중에서
 

사진_픽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어 마음이 힘든 분들을 만날 때마다 점점 확신을 갖고 느낀다. 감정, 특히 감당하기 힘든 감정은 적절하게 배출되고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사춘기는 랩이 있었기에 ‘분노’라는 감정을 적절히 배출하고 처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분노’를 감당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요즘 적지 않은 10대 청소년들이 겪고 있듯이 자해 혹은 자살에 대한 생각까지 가졌을지 모르겠다.

자존감에 대해 글을 쓰는 김에 정신건강의학과 선배 의사이신 윤홍균 선생님의 저서 <자존감 수업>을 살펴본다. 자존감의 기본적 정의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다.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자존감에는 세 가지의 축이 있다. 세 가지란 자기 효능감, 자기 조절감, 자기 안전감이다. ‘자기 효능감’은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느끼는 것이다. 개인의 여러 면모 중에서 ‘능력’과 주로 관련된다. 우리 사회는 이 축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부작용이 있기도 하다. ‘자기 조절감’은 감정이나 행동을 스스로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안전감’은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능력이다.

이러한 자존감의 이론을 바탕으로 나의 10대 시절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힙합을 처음 만났을 때의 나는 ‘자기 효능감’은 굉장히 떨어져 있던 아이였다. 나의 능력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열등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힙합을 통해 나는 ‘자기 조절감’과 ‘자기 안전감’을 경험했다. ‘힙합’이라는 틀 안에서 나의 열등감, 분노, 좌절을 풀어내었고 일상에서의 나의 감정을 적정 범위 안에서 조절할 수 있었다. 그리고 ‘힙합’을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힙합을 통해 경험한 자기 조절감과 자기 안전감을 바탕으로 다시금 나의 능력과 역량을 키워갈 수 있었다. 내 씨디 플레이어 속의 ‘힙합’은 어느새 나에게 엠씨스퀘어보다 더 큰 집중력을 안겨주고 있었다.
 

Read, study lessons and build your inner power
읽고, 공부해. 내면의 힘을 키워. 

- Gang Starr <JFK 2 LAX> 중에서

 

자존감(self-esteem)을 중심에 둔 정신분석 이론도 있다. 바로 자기심리학(self-psychology)이다.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프로이트(Freud)의 자아심리학(ego psychology)은 마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무의식과 욕망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반면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이 창시한 자기심리학은 중요한 대상과의 관계가 ‘자존감(self-esteem)의 발달과 유지’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를 강조한다. 코헛에 의하면 주요 대상이 한 개인에 대해 충분한 인정을 해주고, 이상적인 역할 모델로써 작용한다면 평생을 통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전자는 반사전이(mirror transference)이고 후자는 이상화 전이(idealizing transference)이다. 적절한 돌봄 안에서 중요한 타자의 충분한 인정은 건강한 야망으로 바뀌고, 이상화된 대상은 삶에 대한 이상과 가치의 내면화로 바뀐다.

나는 감히 힙합이 나의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전이 대상으로서 기능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투팍은 <Me against the world>에서 “어두운 밤이 지나면 더 밝은 날이 온다는 것 하나만 기억해. 아무리 힘들어도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넌 할 수 있어.”라며 나를 토닥거려 주었다. 나스(Nas)는 <World is yours>에서 “세상은 네 것이야”라고 내 편이 되어 소리쳐 주었다. 카니에 웨스트(Kanye West)는 <Champion>에서 “그들의 눈에 이미 너는 챔피언이야”라고 나를 지지해주었다. 래퍼들의 시원하고 타이트한 랩은 그들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킵 잇 리얼(Keep it real)’은 나로 하여금 진실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했다. 그들의 ‘셀프메이드(self-made)’ 서사는 내게 꾸준한 노력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네거티브 투 포지티브(negative to positive)’ 메시지를 통해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힘을 길렀다.
 

사진_픽셀


힙합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있어 반사 전이와 이상화 전이를 일으키는 훌륭한 타자 역할을 수행한다. 마음을 가진 한 개인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좋은 치료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특히 요즘에는 래퍼 로직(Logic)에게 주목하게 된다. 그는 텅 트위스터(toungue twister)라는 매혹적인 랩 기술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그의 랩에 귀를 기울이게 된 계기는 다른 데에 있다. 그는 주류 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정신건강 이슈를 솔직하게 랩으로 이야기한다. 음악을 통해 자살 생각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또한 자신의 공황장애 발병 경험을 밝히기도 하고, 흑인과 백인 혼혈아로서의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었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심지어 아버지의 마약 중독과 어머니의 자신에 대한 학대의 내용까지도 고백한다. 그의 이런 솔직한 고백은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응원하기 위함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어요. 인종, 종교, 피부색, 신념, 성적 지향에 관계 없이 말이에요.
Everybody was born equal Regardless of race, religion, color, creed, and sexual orientation

- Logic <Take it back> 중에서
 

그의 가사와 행동에 영감을 받는다. 진료실을 찾는 분들께 진실된 위로를 드리기 위해 노력한다. 만나는 분들에게 어떠한 마음의 병이 있든지, 그들의 성 정체성과 지향성이 어떻든지, 장애가 있든지 없든지 차별과 편견 없이 대하려고 한다. 철없던 시절 내가 처음 만났던 힙합도 철이 없었다. 세상에 분노를 여과 없이 표현했다. 때로는 지나쳐서 여성혐오, 마약, 폭력에 대해 거침없이 노래하기도 했다. 조금씩은 철이 들어가는 요즈음 나는 점점 더 성숙해져 가는 힙합을 만난다. 정신건강 이슈에 대해 용기 있게 고백하고, 자신의 내면의 상처조차 드러내기를 겁내지 않는다. 내가 치기 어렸던 때에도 그때의 나에 맞게 내 자존감을 지켜준, 그리고 지금도 나의 자존감을 성장시켜주고 세상과 만나게 해주는 힙합, 이 힙합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만났으면 좋겠다. 이 시대의 청춘을 위한 래퍼 ‘넉살’의 위로로 글을 마친다.
 

함부로 동정하지 않아 누군가를 감히 용서하지 않아 
생각보다 굳건히 지켜온 너 자신은 누군가의 pride 
자리는 작을 수 있지만 널 여기까지 잘 몰고 왔어 눈물을 닦아 
혼자서 울지 않아본 이는 이걸 몰라 그저 아파 
청춘이 아니라도 믿는 신이 없더라도 두 손 모아 바래 본 이들은 역시 나와 같아
잡초처럼 살아가는 내 친구들 나 가족 닿기 쉽지 않겠지 만족
하지만 나아가 계속 나아가 듣지 않던 기도들이 점점 하늘에 닿아가

- 넉살 <작은 것들의 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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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memoryla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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