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힙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2019년 그래미 음악 시상식의 결과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한 여성 래퍼의 활약이 두드려졌다. 그녀의 이름은 카디비(Cardi B)이다. 1996년에 처음으로 그래미에 랩 음악에 대한 시상이 시작된 이후 그녀는 베스트 랩 앨범(best rap album)에서 처음으로 여성 아티스트 단독으로 본 상을 받게 되었다. 그녀의 활약은 이미 빌보드 차트에서 예견된 바 있다. 2017년 10월에는 같은 해에 발표한 그녀의 디지털 싱글 <Bodak Yellow>가 빌보드 핫 100(Billboard Hot 100)에서 3주 동안 1위에 오른 것이다. 빌보드 핫 100은 음반 판매량(오프라인 및 온라인), 라디오 송출량, 온라인 스트리밍 재생 수를 합산하여 순위를 매기는 미국의 공신력 있는 팝 음악 차트다(BTS가 <Fake Love>라는 곡으로 10위까지 올라가서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차트다). 여성 래퍼가 자신만의 곡으로 핫 100에서 1위를 한 건 <Bodak Yellow>가 1998년 로린 힐(Lauryn Hill)의 <Doo Wop(That Thing)>이후 역대 두 번째이다.
 

Said, "Lil bitch, you can't f**k with me if you wanted to" (ooh)
"작은 암캐야, 네가 원한다고 해서 나랑 한 판 붙을 수는 없어”

- Cardi B <Bodak Yellow> 중에서 -


노래를 들어보면 살벌한 트랩 비트 속에서 호기롭게 시작하는 카디비의 랩에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갱스터랩에서 들었던 남성 래퍼들의 거친 가사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카디비는 라틴계열 혈통에 뉴욕 브롱크스 출신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태어난 여성이다. 16세의 나이에 갱단에 속하기도 했고, 학대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10대 후반부터 수년 동안 스트립댄서 일을 하기도 했다. 스트립댄서 시절 솔직 담백한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통해 그녀는 SNS 스타로 거듭났고, 미국의 케이블 채널 VH1의 <힙합 앤 러브(Hip Hop and Love)>라는 힙합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미 전역에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카디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랩에 대한 재능을 갈고닦아 2016년과 2017년에 연이어 두 개의 믹스테이프를 발매했고, 넘버원 히트 싱글 <Bodak Yellow>를 내기에 이른다.
 

사진_게티이미지


대중은 그녀의 성공 스토리에 주목했다. 그녀의 성공이 그녀와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이 이루기 힘든 성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에게는 후드 페미니스트(hood feminist, ‘뒷동네 페미니스트’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별명이 붙었다. 카디비의 페미니즘은 경제적 독립성과 섹슈얼리티(sexuality)에 기반을 둔다. 카디비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스트리퍼로서의 과거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스트립댄스를 성 노동으로 폄하하지만 그녀는 “나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내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내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가는지에 대해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 당신들이 나에게 뭐라고 할 자격은 없어.”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카디비의 페미니즘은 단순 명료하다.
 

“그들은 오직 미셸 오바마 같은 사람들만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여자들도 남자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작품을 만들어내고, 허슬할 수 있다. 우리는 똑같은 자유를 가진다. 여성으로서 나도 차트의 탑을 경험했다. 나는 남자와 동등하다고 느낀다.”

- Cardi B <i-D UK> 매거진과의 인터뷰 중에서 -
 

힙합 안에서 당당한 여성의 목소리는 힙합의 탄생 이래로 계속 존재해왔다. 그들은 래퍼로, 비걸(B-Girl, 브레이크댄스 걸의 줄임말로 비보이에 상응하는 표현)로,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디제이로 활약했다. 자신만의 개성 있는 목소리로 주목을 받은 최초의 여성 래퍼는 록샌 샨테(Roxanne Shanté)이다. 때는 1984년, UTFO라는 3인조 남성 힙합 그룹이 <Roxanne, Roxanne>을 발표한다. 남성 래퍼 세 명이 자신의 랩 기술을 자랑하면서 ‘록샌’이라는 여성을 유혹하고 결국 데이트 약속을 받아내는 내용의 곡이다. 미 전역에서 인기를 끈 이 노래에 대항해서 당시 14살의 소녀였던 록샌 샨테는 <Roxanne’s revenge>라는 힙합 역사상 최초의 디스 트랙을 발표한다.
 

Every time that he sees me, he says a rhyme
But, see, compared to me it's weak compared to mine
그는 날 볼 때마다 랩을 내뱉어 하지만 내 랩에 비하면 형편없지

- Roxanne Shanté의 <Roxanne's Revenge> 중에서 -
 

록샌 샨테의 복수, <Roxanne’s revenge>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이 곡의 싱글앨범은 뉴욕에서만 25만장이 넘게 팔렸다. <Roxanne’s revenge>를 시작으로 록샌 전쟁(Roxanne wars)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록샌’과 관련된 곡을 100여곡도 넘게 발표했다; ’록샌을 범하라’, ‘록샌의 부모’, ‘록샌의 오빠’, ‘록샌은 알고 보니 남자였다’, ‘더 이상 록샌은 없다’ 등(농담 같지만 사실이다). 록샌 샨테의 공은 단지 최초의 디스 랩 트랙을 발표했다는 데 있지만은 않다. 록샌 샨테가 있었기에 퀸 라티파(Queen Latifah), 로린 힐(Lauryn Hill), 미시 엘리엇(Missy Elliot), 카디비(Cardi B)와 같은 여성 래퍼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성 래퍼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들이 경험한 성폭력, 가정폭력에 대해 외칠 수 있었다.
 

A man don’t really love you if he hits ya
너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자는 너를 정말 사랑하는 게 아니야

- Queen Latifah의 <U.N.I.T.Y.> 중에서 -
 

여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신사회적 위험 요인 중의 하나가 성별과 관련된 폭력(gender-based violence)이다. 이는 남성에 비해 높은 여성의 기분장애, 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유병률과도 관련된다. 가정폭력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힘의 불평등이 나타나는 단적인 예이다. 퀸 라티파의 노랫말을 진료실에서 만나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 분들께 종종 건네게 된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라는 표현을 말이다. 성평등에 대한 논쟁에서 흔히 나오게 되는 반론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만난 ‘가정폭력’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가해가 압도적으로 많다. 전 세계 여성의 35%는 남성으로부터의 폭력을 경험한다. 남성으로서 ‘역차별’의 반론을 제기하기 전에 남성의 잘못을 먼저 돌아보자고 말하는 건 지나친 것일까? 베테랑 래퍼인 스눕 독(Snoop Dogg)과 제이지(Jay-Z)도 최근 자신이 과거에 랩을 통해 표현했던 여성혐오적, 남성중심적 발언에 대해 사과 발언을 했다. ‘난 상관 안 해’라는 힙합의 덕목인 IDGAF(I don’t give a f**k)도 맹목적인 폭력성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란 걸 지금 이 시대의 힙합은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나는 힙합을 통해 페미니즘을 배운다.
 

Since we all came from a woman
got our name from a woman and our game from a woman
I wonder why we take from our women
Why we rape our women, do we hate our women?
I think it's time to kill for our women
Time to heal our women, be real to our women

우리는 모두 여성으로부터 태어났고
우리의 이름과 삶 또한 여성으로부터 온 것인데
왜 우리 남성들은 여성들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아가는지
왜 여성들을 폭행하고 미워하는지 모르겠어
이제는 여성을 위해 헌신해야 할 때야
여성들을 치유하고, 그들에게 진실해야 할 때야

-2Pac <Keep Ya Head Up> 중에서-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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