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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힙합] 12. 스티그마정신과 전문의 x 힙합 저널리스트 연재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1.26 02:36

[정신의학신문 :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다음은 미국 뉴스 채널 CNN의 정치사회적 내용을 다루는 토크쇼인 <밴 존스 쇼(The Van Jones Show)> 첫 방송 내용의 일부이다.

 

사회자: 정신건강, 트라우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우리 공동체에 만연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흑인들은 경찰을 두려워하듯이 심리치료를 두려워해요. 어쩌면 더 그렇죠. 우리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려 하지 않아요. 

게스트: 네, 그건 ‘스티그마’예요. 

사회자: 그래요. ‘스티그마’지요. 정신과 진료받기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자살로 죽어가고 있어요. 당신은 직접 심리치료를 받으러 갔지요? 그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군요. 당신은 어떻게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한 수치심을 극복했나요? 어떻게 스티그마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을 했나요? 스티그마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게스트: 네,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가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 스티그마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깨닫게 돼요. 심리치료라는 건 아시다시피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저는 이런 작업들이 학교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야 말로 가장 많은 일들을 겪고 있지요.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요. 10대들이 그렇다는 거 아시잖아요? 10대 때에 술을 마시면 그만큼 뇌에 손상이 가는 겁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들이 청소년들에게 일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지요. 그들은 사회공포증을 비롯한 마음의 고통을 경험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지요. 이를 잘 다룰만한 언어를 갖지 않고 있어요. 그들을 어떻게 돕는 게 좋을까요? 어떤 녀석이 누군가를 따돌리고 괴롭힐 때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괴롭힘 당하는 이에게 “이봐, 괜찮아?”라고 물어보면 되는 거예요. 이러한 말 한마디가 모든 걸 바꿀 수 있어요. 

사회자: 이러한 도구와 기술들이야 말로 심리치료를 통해 얻을 수 있어요. 우리 공동체에서는 안타깝게도 이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지요.

 

이 토크쇼의 게스트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흑인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캠페인을 벌이는 사회운동가였을까? 아니다. 래퍼 제이지(Jay-Z)이다. 제이지는 또 다른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심리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이 나아졌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정신치료를 통해 자신의 어려운 감정이 어디에서 오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또한 타인의 공격성은 그들 자신의 감정을 다루기 어려운 데서 나온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제이지는 중요한 단어를 언급한다. 바로 ‘스티그마’다.

‘스티그마’란 ‘사회적 낙인’으로 번역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일종의 족쇄처럼 노예나 범죄자에게 그의 존재에 오점이나 흠이 있음을 밝히기 위해 몸에 새긴 특정 기호에서 유래한 말이다. 캐나다 출신 사회학자인 어빙 고프만의 저서 ‘스티그마’를 통해 그 개념이 널리 알려졌다. ‘스티그마’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장애는 그 자체로써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하여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중적 고통을 겪게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정신질환이 수치스럽고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이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불완전하고 힘없는 존재라고 인식한다. 이것이 정신건강 영역의 스티그마다.
 

사진_픽사베이


제이지는 위의 인터뷰에서 흑인 커뮤니티의 정신과 치료에 대한 스티그마를 정면으로 다룬다. 미국정신질환자연맹(NAMI, National Alliance on Mental Illness)에 따르면 미국의 흑인들은 일반 인구에 비해 심각한 정신 건강의 문제를 경험할 확률이 20%나 높지만 그들 중 불과 4분의 1만이 정신과 치료를 찾는다. 백인의 40%가 정신과 치료를 찾는 것에 비하면 현저하게 낮은 수치이다. 흑인 공동체 안에서는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찾는 대신에 홀로 고통을 짊어지거나 자가 치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자가치료란 술, 모르핀 계열 진통제, 수면유도제, 마약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이지는 정신질환에 대한, 그리고 정신과적 치료에 대한 스티그마가 치료적 장벽을 높이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 스티그마는 미국 흑인 공동체 안에서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와 삼성서울병원이 공동으로 수행한 “2016년도 정신질환실태조사”에 의하면 정신질환의 평생유병률은 25.4%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8세 이상 우리나라 국민의 4명 중의 한 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평생 동안 정신건강 문제로 전문가와 상의한 적이 있는 경우는 일반 성인 인구의 9.6%, 정신질환을 경험한 대상자 중 22.2%에 불과했다. 2015년 한 해 동안 정신건강서비스를 이용한 일반인이 14.2%, 정신질환자의 43.1%로 보고된 미국에 비하면 현저하게 낮다.

 

래퍼 스윙스는 영국 뉴스 채널 BBC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사들은 제가 다양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어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양극성 장애(조울병), 강박장애. 저한텐 그 용어들이 상당히 익숙해요. 일종의 강박이지요.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이 병들을 저 혼자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총에 맞아 다쳤을 때 혼자 치료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한국에서는 정신질환을 의지가 약한 걸로 봐요. 그리고 그걸 결함으로 인식하지요. 그리고 만약 그런 결함이 알려지면 그 사람의 가치는 평가절하 되지요. 정신질환을 앓는 걸 수치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정신질환을 보는 시선에 대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바로 ‘스티그마’다.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국민 4명 중의 한 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에 노출된다. 2018년 겨울에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여러 건강 전문가와 함께 <정신장애, 내가 몰랐던 우리의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한 번은 강연자로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강연을 듣는 20여 분들께 질문을 드렸다. “혹시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중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없는 분, 손 한 번 들어보세요!” 손을 든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없었다. ‘마음의 병’은 일부 나약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우리는 그 아픔이 없는 것처럼 살아왔었다.

이제는 마음의 아픔을 겪은 모든 분들이 치유의 영역으로 나오길 바란다. 래퍼 로직(Logic)처럼. 그는 자신이 경험한 마음의 고통과 치유의 경험을 랩으로 표현했다. 그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였다. 흑인들 사이에서는 ‘백인 쓰레기’ 취급을 받았고, 백인들 사이에서는 ‘깜둥이’ 취급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저주했다. 하지만 그는 랩을 통해 구원을 얻었고 힘든 시절을 견뎌냈다. 래퍼로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2015년 12월 어느 날 갑자기 공황발작을 경험한다. 죽을 것만 같은 극심한 불안을 겪는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도 받게 된다. 이에 대한 곡이 <Anziety>이다. 곡의 말미에 나오는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 로직의 내레이션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당신은 결코 나약한 게 아니다. 당신이야말로 바로 가장 강력한 치유자다.

 

이 '불안'은 아무것도 아냐.
나도 불안장애가 있어.
이걸 듣고 있는 바로 너처럼 말이야.
우린 함께 이 감정을 극복할 거야.
비록 공황발작 같이 우리의 몸과 마음이 낭떠러지에 있는 것처럼 느낄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살아있음을 기억할 거야.
언젠가 우리는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삶이라는 선물을 누리며 살게 될 거야.
우린 주어진 오늘을 누리며 살 거야.
우린 불안을 받아들이고, 회복을 위해 애쓸 거야.
정신건강의 영역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거야.
그리고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고 행복해할 거야.
우리는 자신을 인정하고, 불안과 함께 살아갈 거야.

- L:ogic의 앨범 <EVERYBODY>의 수록곡 <Anziety> 중에서

 

링크 1: 제이지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2a9GPZLGh2k
링크 2: 스윙스 인터뷰 https://www.bbc.com/korean/features-41424688
링크 3: logic <Anziety> https://www.youtube.com/watch?v=SyERzwy-4v4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memoryla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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