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일전에 공동체에 대한 글에서 미국 힙합에 있고 한국 힙합에 없는 두 가지, N-word와 ghetto에 대해 이야기했다. 음악적 주제에 있어서 미국 힙합에는 있고 한국 힙합에는 없는 또 다른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중독(addiction)’이다.

중독은 ‘약물 중독(drug addiction)’으로 풀어쓸 수 있다. 이것이 한국에서 주로 다루어지지 않는 건 우리 사회에 있어 어쩌면 다행이다. 중독으로 인한 문제가 미국만큼은 심각하지 않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들의 진단 기준으로 쓰이는 DSM-5에 따르면 ‘약물 중독’은 ‘물질 사용 장애(substance use disorder)’라고 한다. 여기서 물질(substance)이란 과량을 복용했을 때에 뇌의 보상 체계를 활성화하고, 고양감(high)이라고 불리는 쾌락을 만들어 내어 사용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모든 약물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알코올, 코카인, 마리화나 등이 있다.

이 글에서는 힙합 안에서의 ‘중독’에 대해 살펴보고 마음과의 연결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UCLA 대학 소속 공공의료 전문가 데니스 허드(Denise Herd)는 힙합 안에서의 약물 이슈에 대해 의미 있는 분석을 하였다. 1979년부터 1997년에 걸쳐 341개의 랩 곡을 선택하여 약물과 관련된 표현을 분석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약류에 대한 표현은 증가했으며, 약물을 미화하는 표현도 늘었다. 시대에 따라 주로 묘사되는 약물의 종류도 바뀌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힙합차트 상위 곡들 중에서 약물에 대한 언급은 1979~1984년에는 11%, 1985~1989년에는 19%, 1990~1993년에는 45%, 1994~1997년에는 69%로 증가했다. 놀라울 만한 비율이다.

70년대 말과 80년대에는 코카인이, 90년에 이후에는 마리화나가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80년대에 흑인 사회를 강타한, 코카인 합성마약의 유행인 크랙 에피데믹(Crack epidemic)의 여파로 9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치명도가 덜한 마리화나가 유행했기 때문이다. 그 증거 중 하나는 1992년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닥터드레(Dr. Dre)의 크로닉(Chronic) 앨범이다.

 

다른 음악 장르에 비해 힙합이 마약을 많이 다루긴 한다. 그렇지만 힙합 음악의 주 향유층인 흑인이 백인에 비해 마약 사용이 많은 것은 아니다. 인권 관련 NGO 단체 휴먼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의 보고에 의하면 흑인의 약물 사용 행태와 백인의 약물 사용 행태 자체는 비슷하다.

하지만 약물과 관련된 체포와 구금은 인종적 차별이 존재한다. 흑인은 전체 약물 사용 인구의 13%에 불과하지만 약물 소유로 인한 체포는 전체 약물 관련 체포의 35%이다. 유죄 선고는 전체의 55%이고, 감옥으로 가는 사람은 74%이다.

흑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저렴한 마약인 크랙(Crack)의 경우 처벌이 훨씬 가혹했다. 이로 인해 흑인 가정이 깨어지고, 고아원에 입소하는 아이들은 늘어나고, 흑인 사회 안에서의 폭력이 증가했다.

흑인 사회의 폭력과 마약에 대해 거침없이 랩을 했던 래퍼 아이스큐브(Ice Cube)는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세상이 외면하는 빈민가 흑인들의 처참한 삶을 고발하는 저널리스트다.”
 

사진_픽사베이


2000년대에 들어서는 ‘린(lean)’이라는 약물류에 대한 표현이 증가한다. 이것은 기침 억제 역할을 하는 코데인(codein)이라는 성분이 포함된 감기약 시럽을 탄산음료에 섞어서 마시는 물질이다. 릴 웨인(Lil’ Wayne)은 <I feel like dying>에서 ‘린’을 복용하고 나서의 환각 증상에 대해 노래하였다.

약물 남용을 통해 좋은 느낌만 누릴 수는 없다. 릴 웨인도 약물 사용 이후 나타난 경련 발작으로 수차례 응급실을 통해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2017년 이후로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알려졌다.

2010년 전후로는 ‘엑스타시’라고 불리는 MDMA가 언급되기 시작한다. MDMA는 유쾌감, 정서적 푸근함, 활력을 느끼게 해 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MDMA라는 물질 자체가 길거리에서 제조되는 약물이다 보니 암페타민, 카페인, 에페드린, 코카인 같은 다른 약물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과량 복용하게 될 때 고혈압, 경련 발작, 심장 마비를 초래할 수 있다.

제이지(Jay-Z)는 MDMA를 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래퍼들이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 마약을 탐닉한다는 비유를 쓰곤 했다. 하지만 제이지는 마약보다 더 값나가는 명품 패션을 누린다고 자랑한다.
 

I don't pop molly, I rock Tom Ford
나는 MDMA를 하지 않아. 나는 대신 탐 포드 명품을 착용하지.

-Jay-Z <Tom Ford> 중에서-

 

제이지처럼 마약류를 멀리하는 래퍼들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약물은 재능 있는 래퍼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간다. 슬픈 일이다.

2017년에는 릴 핍(Lil Peep)이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fentanyl)과 항불안제 자낙스(xanax) 등의 복합 약물 과용(overdose)으로 21세의 나이에 사망했고, 2018년에는 맥 밀러(Mac Miller)가 코카인과 펜타닐, 알코올 등의 과용으로 26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릴 핍 사망 후에 래퍼 스모크펄프(Smoke Purpp)와 릴 펌(Lil Pump) 등은 이제 자낙스를 남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은 이런 움직임에 환호했다.

래퍼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펜타닐, 자낙스 같은 의사가 처방하는 약물들을 처방된 용법대로 복용하지 않고 고용량으로 남용하는 것을 ‘처방약물남용(prescription drug misuse)’이라고 한다.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마리화나, 알코올 다음으로 남용되는 물질이 처방약물(prescription drug)이다.

처방약물은 유통 자체가 불법으로 간주되는 마약류에 비해 접근이 쉽다. 또한 남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법 마약류보다 몸에 덜 해로울 것이라는 오해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릴 핍, 맥 밀러의 예에서도 보듯이 죽음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존재한다는 건 다른 마약류나 다를 바 없다.

맥 밀러의 유작 앨범 <<스위밍(Swimming)>>의 수록곡 Self Care의 가사에서는 약물 중독에 대한 그 자신의 양가감정을 엿볼 수 있다. 처연함이 느껴진다.
 

Self care, I'm treatin' me right, yeah
자기 돌봄, 내가 알아서 스스로를 잘 돌보고 있어

Hell yeah, we're gonna be alright
그래, 우린 괜찮을 거야

[중략]

That Mercedes drove me crazy, I was speedin'
벤츠로 과속해서 미친 듯이 다니는 기분

Somebody save me from myself, yeah
누가 나 좀 말려줬으면 해

-Mac Miller <Self Care> 중에서-

 

‘처방약물남용’으로 잃을 뻔했던 또 다른 래퍼가 여기에 있다. 에미넴은 백인 쓰레기(white trash)의 캐릭터성과 치밀한 라임 배치, 유려한 랩 실력으로 흑인의 문화였던 힙합 씬에 큰 획을 그었다. 초기 전성기에 이르기까지의 성공 과정은 그의 자전적 영화인 <8마일(8 Mile)>에 압축적으로 나와있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 영화를 찍을 때 과로에 시달리면서 수면유도제 졸피뎀을 남용하기 시작한다. 이후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에미넴은 약물중독에 빠졌다. 처방받은 약품을 자기 임의로 칵테일처럼 이것저것 섞어서 남용했다. 그가 사용했던 약물은 수면유도제 졸피뎀(zolpidem), 항불안제 디아제팜(diazepam), 마약성 진통제 하이드로코돈(hydrocodone) 등이었다.

그는 2005년에 처음으로 재활치료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6년 에미넴이 속한 그룹 D12의 동료 프루프(Proof)가 총에 맞아 사망한다. 프루프는 에미넴의 음악적 동료일 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무명시절 힘이 되어주었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다시 그의 약물 중독은 재발했다. 2007년에는 마약성 진통제 메타돈 과용으로 다발성 장기 부전에 빠져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했다.

이후 그는 약물에서부터 벗어나기로 굳게 마음먹는다. 치료 과정 중에는 재발이라는 뜻의 <<Relapse>> 앨범을, 약물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난 후에는 <<Recovery>> 앨범을 발매한다. 슬럼프에 마침표를 찍은 <<Recovery>> 앨범의 타이틀곡이 <Not Afraid>다.
 

Yeah, it's been a ride
그래, 힘든 시간이었지

I guess I had to, go to that place, to get to this one
아무래도 여기에 서있기 위해 그곳(중독에 빠졌던 시기를 의미)에 다녀올 수밖에 없었던 거 같아

Now some of you, might still be in that place
당신들 중 몇몇은 아직 그곳에 있을지 몰라

If you're tryin to get out, just follow me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날 따라와

I'll get you there
내가 데려다줄게


I'm not afraid to take a stand
난 두렵지 않아 일어설 수 있어

Everybody come take my hand
나와 같은 고난을 겪은 모두 다 이리 와서 내 손을 잡아 

We'll walk this road together, through the storm
함께 이 길을 걷는 거야, 폭풍을 뚫고

Whatever weather, cold or warm
날씨가 춥던지 따뜻하던지

Just lettin’ you know that, you're not alone
단지 알려주고 싶을 뿐이야 너희들이 혼자가 아니란 걸

Holla if you feel like you've been down the same road 
같은 길을 걷는 것 같이 느껴진다면 우리 함께하자

[중략]

And I just can't keep living this way
계속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어

So starting today, I'm breaking out of this cage
그러니 오늘부터 시작해 이 감옥을 부수어 버릴 거야

I'm standing up, I'ma face my demons
일어서서 악마들과 맞서겠어

I'm manning up, I'ma hold my ground
절대로 겁내지 않아 내가 있고자 하는 곳에 단단히 서 있을 수 있어

-Eminem <Not afraid> 중에서-
 

사진_픽사베이


사실 2010년에 이 노래를 처음 들을 때는 진부했다. 호기 넘치던 에미넴이 변했다고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중독 환자 분들을 진료실에서 만난 후에 이제 이 곡을 다시 만난다. 내가 만났던 수많은 환자 분들이 그랬듯이 에미넴 또한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고 지켜나가야 할 자신의 온전한 정신이 있다. 래퍼이기 전에 한 사람인 것이다.

비록 음악적으로는 그의 진지한 변신이 아쉬울 수 있지만 그는 수많은 오르내림을 거치며 진실된 메시지를 얻었다.

글을 쓰면서 수십 번 곡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처음 이 곡을 접했을 때의 진부함이 생각나지 않았다. 가슴이 뛰었다.

그는 래퍼를 넘어서서 상처 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때 나의 우상이었던 훌륭한 래퍼는 내 치유 여정의 동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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