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축구의 신, 레전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리오넬 메시의 커리어엔 두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월드컵 우승이 없다는 것. 두 번째는 페널티킥 성공률입니다.

총 35번의 우승 트로피를 갖고 있고, 발롱도르 5회, UEFA 최우수선수 3회 등 화려한 기록을 가진 메시의 통산 페널티킥 성공률은 71% 정도로 의외로 낮습니다. 전체 선수들의 페널티킥 성공률이 73% 정도인걸 감안하면 누구보다 훌륭한 선수인 메시가 페널티킥에서 실수를 꽤 많이 한다는 점은 조금 의아함이 들지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활약 중인 메시는 지난 시즌 바르셀로나에서 6번의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 3번이나 골을 넣지 못했는데 이는 프리메라리가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페널티킥 실축 횟수입니다. 특히 중요한 큰 경기에서 실수를 많이 했는데 2016년 코파아메리카 칠레와 결승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이슬란드전에서도 승부차기를 실패해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요.
 

사진_위키피디아


페널티킥을 찰 때 선수들은 뇌의 깊숙한 부분, 그중에서도 편도체가 자극되는 경험을 하는데 이 부위는 불안과 두려움, 공포의 감정을 다루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편도체는 우리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저장소 역할을 하는 해마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편도체가 자극될 경우, 우리는 과거 기억에서 무섭고 두려운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불안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의 수치가 점점 높아지게 되는데 그러면서 편도체가 더 자극되는 악순환이 생기게 됩니다. 즉, 수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바로 그 순간, 선수들은 자신의 가장 두렵고 나쁜 기억을 반복해서 재경험한다는 뜻이며 그 긴장과 압박감을 견뎌내야 합니다.

 

페널티킥이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인플레이 상황의 필드골과는 다르게 인터벌이 있다는 점입니다.

페널티킥이 선언되면 우선 경기가 멈춰지고 3분 정도의 준비시간이 주어지는데 이 시간차는 육체적, 본능적인 감각이나 평소에 훈련으로 정착된 피지컬적인 루틴 이외에, 정신적인 부분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분은 나의 불안, 지난 경기의 트라우마, 실패하면 어쩌지? 얼마나 욕을 많이 먹을까? 등을 생각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입니다. 월드컵, 올림픽 같은 큰 경기라면 말할 것도 없지요. 모든 선수와 관중, 어쩔 땐 자국민 모두의 시선이 오직 자신에게 쏠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필드골 성공률에 비해서 페널티킥 성공률이 비교도 안되게 높은 점이 오히려 키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골키퍼 입장으로서는 페널티킥을 막을 확률이 평균 27% 인걸 감안할 때 못 막아도 본전, 막으면 대성공이라는 생각으로 부담 없이 수비할 수 있습니다. 공격하는 입장에선 잘해야 본전, 실패하면 역적이 되는 상황에서 공을 차야하는 것이죠.

이러한 부담과 긴장감은 도파민 수치를 저하시키고 소뇌와 중뇌변연계에서 우리 몸의 운동능력을 일시적으로 저하시키게 됩니다.
 

사진_픽셀


최근에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 손흥민 선수는 인터뷰에서 페널티킥에 대한 부담감으로 가급적 키커를 다른 선수에게 양보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황희찬 선수가 페널티킥을 찰 때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 큰 화제가 됐었지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축구는 점수가 많이 나지 않기 때문에 한골의 가치는 무척 크고 그야말로 승부를 결정짓기도 합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페널티킥의 성공률이 너무 높아서 심판이 페널티킥을 주느냐 마느냐가 승부에 너무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흥미를 떨어뜨린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페널티킥을 지금보다 좀 더 멀리서 차거나 아이스하키처럼 일정 거리를 드리블한 뒤에 슈팅하게 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지요.

 

평소엔 이렇게 성공률이 높은 페널티킥이 결정적인 순간이나 승부차기, 특히 가장 유명한 선수가 찰 때 오히려 실수가 자주 나온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신기합니다.

실제로 로베르토 바지오처럼 월드컵 4강이나 결승전에서 페널티킥을 실패한 뒤 기나긴 슬럼프나 기량 저하를 경험한 선수들도 많았지요.

참으로 간단해 보이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어려운, 어쩌면 페널티킥을 준비하는 그들의 눈에 비친 건 골키퍼가 아닌 인생의 단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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