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정신 공포·두려움
[마음과 스포츠] 투수와 공황장애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2.11 02:08

[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YIPS라는 증상이 있습니다. 골프에서, 퍼트를 할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몹시 불안해하고 호흡이 빨라지며 손에 가벼운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주로 골프 선수들이 입스를 겪지만 야구나 농구 등의 구기 종목 선수나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 등 특정 근육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직군의 사람들에게도 발생합니다.
 

사진_픽셀


야구에서는 흔히 투수들에게 많이 생기는 증상으로 스티브블레스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과거 메이저리그 피츠버그에서 활약한 투수 스티브 블레스가 부상이나 특별한 신체적인 이유도 없이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게 되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연습 때는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다가 실제 경기에만 들어서면 도저히 공을 원하는 곳으로 던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96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팀을 대표하는 투수였던 스티브 블레스. 5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뒀을 뿐만 아니라 통산 100승(103승)을 넘긴 투수였지만 1973년 이 증상이 생긴 후 3승 9패 방어율 9.85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팀 닥터와 최고 수준 의료기관의 정밀 검사, 여러 코치들과 재활트레이너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고 은퇴를 하고 맙니다. 이후에도 비운의 천재 투수 릭 엔키엘이나, 타자였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송구를 할 수 없게 되어 실책을 반복했던 척 노블락 같은 선수가 유명한 예입니다.

국내에서도 정규시즌에서는 문제가 없는데 포스트시즌만 되면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게 된 A 투수라거나, 최고의 활약을 펼치다 상대 타자의 머리에 공을 맞힌 충격으로 이후 불펜투수로 전환한 B 투수의 경우가 있습니다.

 

입스는 마음이 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멘탈이 스포츠의 경기력과 수행능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불안은 일종의 사회공포증세, performance anxiety로 해석할 수 있으며 특정 상황과 특정 환경의 조건하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공황 증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훈련이나 연습경기를 할 때 아무 문제가 없다가도 실전이나 중요한 경기, 많은 관중들의 관심이 쏠리는 경우 심계 항진과 과호흡, 근육경련, 교감신경의 과다항진 등을 경험하면서 원래의 루틴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를 경험해 본 투수들은 흔히 ‘아무 소리도 안 들리더라, 아무것도 안 보이고, 정신이 멍하더라.’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선발투수를 예로 들어보면 한 경기에 나왔을 때 평균 100개 남짓의 공을 던지는데 1-2 개의 실투로 패전투수가 되거나 경기를 망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야말로 100번 잘하다가도 1번 실수로 모든 걸 잃는 경우이지요.

이들은 항상 자신의 공 하나하나에 승부가 결정되고, 칼날 위를 걷고 있다는 느낌을 두려워하곤 했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야기될 팀의 패배, 팬들의 과도한 비난, 악성 댓글 같은 무게를 짊어지기 버거워하고 회피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실수하면 안 된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성향과 완벽주의는 그러한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지요.
 

사진_픽셀


이들에게 흔히 '평정심을 가져라,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라고 하는데, 이는 효율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조급한 사람에게 조급해하지 말라거나, 불안한 사람에게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과 똑같은 이야기니까요. 마음의 항상성이 무너진 상태에서 균형을 다시 잡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이완과 정신적인 이완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실제로 쓰이는 방법으로 투수에게 타자를 시켜보거나, 혹은 포수나 심판이 되어 공을 받거나 보는 입장이 되어보게 합니다. 이러한 역할 변경은 생각과 주의력, 집중력의 전환과 환기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일시적이지만 과도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부터 격리와 분리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에서 한발 물러나 제삼자가 되어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왜 그렇게 긴장했을까, 어깨 힘 빼고 공을 가운데로 던지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웠을까."

"한두 번 실수한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리 겁에 질려 있었을까."


'더 잘해야지, 완벽해져야지'라는 암시와 향상심은 동기부여와 경기력에 큰 에너지가 되지만 지나칠 경우 선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짐이 됩니다.

야구는 공 하나에 혼신의 힘을 불어넣는 찰나의 승부지만 1회부터 9회까지의 긴 시간 동안 많은 실수와 해프닝, 스토리가 있는 경기이기도 합니다. 역전과 재역전, 감동과 눈물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선수들에게 공감하고 응원하며 때로는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루 위기를 앞에 두고 바짝 긴장한 투수의 간절한 표정에서 우리는 직장과 학교, 사회에서 힘들게 버티는, 위기를 마주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내가 왜 그렇게 걱정했을까, 한두 번 실패한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투수에게도 우리에게도 언제나 다음 경기가, 다음번 기회가 있다는 것을."

"내 실수를 비난하고 무시할 사람들보다 힘이 되어줄 동료와 든든한 가족이 있다는 것을."

 

혹시 나도 공황장애?
공황발작과 불안 증상에 대해 마음건강검진 받아보세요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인터넷신문윤리강령이메일무단수집거부CONTACT
(주)정신건강연구소  |  정신의학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105-87-08929  |  등록번호 : 서울, 아03874  |  등록일자 : 2015년 8월 25일  |  발행·편집인: 박소연
서울 종로구 옥인동 자하문로 17길 보광빌딩 12-10  |  대표전화 : 070-7557-9104  |  팩스 : 02-320-60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선우
Copyright © 2019 정신의학신문-의사들이 직접 쓰는 정신 & 건강 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 Back to Bot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