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
30. SKY 캐슬, 강준상 교수는 왜 의사가 되었을까?

 

사진_JTBC


SKY 캐슬 드라마를 보면서 인상 깊은 인물 중에 하나가 강준상 교수(정준호 분)였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많은 캐릭터들이 욕망을 대놓고 표출하는데 비해 강준상 교수는 혼자 아닌 척하고 있었기에 더 인상이 깊었습니다. ‘강준상 교수의 모습이 오히려 우리네 모습과 더 닮아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인상이 깊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네 사는 곳에는 욕망을 대놓고 표현하는 것은 꽤 금기시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네 안에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죠. 그렇기에 ‘남들에게 표가 덜 나면서도 욕망을 추구하는 애매한 외줄 타기가 우리네 사는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강준상 교수를 보면서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때문에 우리가 더 불행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남을 속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조차도 속이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그로 인해 나와 남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밀게 된다는 점입니다.

강준상 교수(정준호 분)는 이러한 점을 아주 잘 나타내 주는 캐릭터인 거 같습니다. 스카이 캐슬 6회에 나온 장면인데요. 강준상 교수가 레지던트에게 물어보는 짤막한 장면입니다.
 

강준상: 너는 왜 의사가 됐냐?

레지던트: 엄마가 하라고 해서요.

강준상: 어휴~ 불쌍한 놈.


사실 강준상 교수도 엄마가 의대를 가라고 해서 의사가 된 인물입니다. 그런데 철저히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쌍한 놈’이라는 말이 자신한테 해당되는 줄도 모르고 하고 있습니다. 또 그러다 보니, 남(레지던트)은 교정할 게 많은 불쌍한 놈이 되어있고, 자신은 독야청청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그걸 모를까요? 다 보이고 다 압니다. 자신만 눈을 감고 안 보고 있을 뿐이지요. 게다가 본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더 철저히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속과 겉이 괴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삶은 절대로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다들 ‘마피아 게임’ 해보셨지요? (스카이 캐슬 드라마에서도 마피아 게임하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나와 남을 속이는 우리네 이러한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해준 장치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시민이 걸리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는데, 마피아에 걸리면 그때부터 불안이 확 몰려옵니다.

왜냐? 시민은 그냥 시민이라고 하면 됩니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들킬 염려가 없지요. 그런데 마피아는 자신이 마피아라는 게 들키면 안 됩니다. 시민인 척 연기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한 게임이 그러할 진데 우리 삶은 어떨까요?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지 않으면 우리 삶은 늘 불안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30연재 동안 일관되게 전달드리고 싶었던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6번째 연재에서 그토록 ‘행위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6번째 연재에서 컵을 사는 단순한 행위조차도 사람들은 ‘가짜 이유’를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과 남을 속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삶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우리는 남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면 깊은 마음을 속이고 살면 우리의 삶은 절대 편해질 수 없습니다. 마피아 게임의 마피아처럼요. 강준상 교수도 결국은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게 되지요? 김혜나(김보라 분)가 자신의 딸이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난 후 자신의 어머니와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강준상: 그럼 해법 좀 알려주세요. 저 이제 어떻게 할까요? 어머니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서 학력고사 전국 1등까지 했고, 어머님이 의대 가라고 해서 의사 됐고, 어머니가 병원장 되라고 해서 그거 해보려고 기를 쓰다가 내 새낀 줄도 모르고 애를 죽였잖아요. 저 이제 어떻게 하냐고요. 지 새끼인지도 모르고 죽인 주제에 어떻게 의사로서 사냐고요. 어떻게.

강준상 모: 네가 의사를 못하면 누가 하니? 해마다 주남대 최고 실적을 내는데다 척추 센터장에 기조실장에 병원장이 코앞인데 네가 뭐가 부족해서, 자책할 필요가 없다고 몇 번을 말하니. 가자. 나가. 손님들 계신데 이게 무슨 애티튜드야?

강준상: 이 판국에도 체면이 중요하세요? 날 이렇게 만든 건 어머니라고요. 지 새끼도 몰라보고 출세에 눈이 멀어, 그까짓 병원장이 뭐라고. 낼모레 쉰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는 놈을 만들어놨잖아요. 어머니가.
 

사진_JTBC


강준상 교수는 독야청청한 것처럼 자신을 속였지만, 스카이 캐슬의 다른 캐릭터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사실 어머니와 아내가 자신의 욕망을 대신 채워주고 있었기 때문에 손 안 대고 코 풀고 있었던 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50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다 내 안에 있는 감정과 욕망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강준상 교수의 말(어머니가 하라고 해서)에도 드러나 있듯이, 강준상 교수는 내 욕망을 욕망하면서 사는 방법에 대해 잊었습니다. 스카이 캐슬 연재에서 일관된 메시지인 타자(어머니)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25번째 연재 참조)하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 삶이 어떻게 결말을 맺는지를 강준상 교수가 잘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강준상 교수뿐만이 아니죠.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이 그러합니다. 드라마 초반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 영재 어머니의 자살이었죠. 한서진(염정아 분)이 김주영 선생(김서형 분)에게 ‘명주 언니(영재 엄마)를 죽인 건 바로 너야.’라고 따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김주영 선생이 했던 말 한마디는 너무나 커다란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만에요. 이명주 씨를 죽인 건 이명주 씨 욕심입니다.”
 

사진_JTBC


맞습니다. 왜 남 탓을 하는 거죠? 내 안에 있는 감정과 욕망은 내 것입니다. 설사 김주영 선생이 그걸 건드려서 자살로 이어졌다고 해서 그것을 남 탓으로 돌리면 안 됩니다. 법적 책임이나 도덕적 책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에 대한 태도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과 감정을 잘 알아줘야 할 가장 첫째 책임은 본인 스스로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해주지 않으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과 감정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보다 더 잘 아는 누군가(ex. 김주영 선생)에게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 탓을 하는 태도는 그 순간은 편할지 몰라도, 그리고 그 순간을 넘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비슷한 또 다른 상황에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까지 당하는 인생을 살겠습니까? 당하기 전에 자신 안에 있는 감정과 욕망이라면, 스스로 알아주는 노력을 해주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게 됩니다. 필자의 연재 제목인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강준상 교수도 어머니 탓을 할 때가 아닙니다. 미성년자라면 그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나이 50이 다 된 어른입니다. 스스로 알아주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감정과 욕망이 어떠한 모습인지를요. 그것이 좋은 모습이든, 나쁜 모습이든. 아니 나쁜 모습일수록 더 자세하게 바라봐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쁜 모습은 쉽게 피하려 드는 성향이 있거든요. 순간은 그게 편할지 몰라도, 길게 봤을 때는 우리의 인생에 재앙을 가져다줍니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파악하고 내 마음을 조종하기 전에, 내가 내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주고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주체적인 삶이 아닐까 합니다. 남 탓하지 마세요. 모든 원인은 내 안에 있는 마음이니까요. 김주영 선생의 멘트를 다시 한번 언급하며 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천만에요. 이명주 씨를 죽인 건 이명주 씨 욕심입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