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어릴 때부터 친구가 없어요' 글을 보고 질문드립니다. 무심결에 제목의 글을 보다가 상담드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상담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반대로 친구가 정말 많아서 소위 말하는 '인싸'를 넘어 '핵인싸'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제가 상담을 드려야겠다고 느끼는 이유는, 저는 저를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면 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저는 개인적인 성취나 결과 혹은 경쟁에서 이긴 결과 등을 드러내지를 못하고, 혹시 시상을 받거나 드러나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기쁜 마음이 들기에 앞서서,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들어서 그 결과를 원하고 노력했던 스스로에게도 미안해집니다. 무슨 말이냐면, 시샘, 질투로 인한 '은따'가 두려워서 개인적인 성취가 드러나는 것이 무섭습니다. 그 이유는 실제로 그랬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학창 시절에 전교 회장을 하면서 동시에 성적이 좋을 때가 있었죠. 저는 이러한 제 장점, 강점들로 인해 당연히 친구들이 저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앞에서는 제가 눈치채지 못하게끔 하고 뒤에서 제가 의도하지 않은 말과 행동들에 여러 말들을 붙이고 저를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고 난 후 그때의 두려움이 아직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나의 행동이 공공의 이익이 되거나 관계 전체에 좋을 때만 드러내고 이를 활용하여 관계를 형성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던 개인적인 성취를 이루어서 너무 기뻐도 기쁨을 감추게 되고, 이보다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그러한 성취로 기쁨을 느끼게 되면 감정이라는 것이 무의식 중의 말과 행동에 묻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어낸 개인적인 성취 자체를 기쁘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는 제가 더 성장하기 위해 작은 성공이든 큰 성공이든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데 스스로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다 보니 동기부여적인 차원에서도 마이너스적인 영향이 큽니다.

또한 '내 장점을 상대방이 싫어하고 무시할 거야' 이러한 마음은 저 역시 크게 느끼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친구가 많다, 친구가 없다. 겉으로 보이는 결과는 정반대지만 그 원인은, 내가 남과 나를 속이는 연기를 한다는 부분은 동일한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은 제가 오래전부터 고민한 부분이었고, 정답을 찾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발전적인 나를 위해서,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앞서 말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나의 장점과 강점들을 드러내도 괜찮은 것인지 여쭙고 싶네요. 또 제가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하고, 마음가짐을 갖는 게 좋은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구합니다.
 

사진_픽셀

 

답변) 

우리는 살아오면서 많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가볍게 긁힌 것부터, 뼈가 부러지는 정도까지 상처의 심하기는 모두 다르죠. 그중 대부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흉터가 남는 것도 있고, 종종 흉터는 없어도 마냥 욱신거리는 상처도 있죠.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끊임없이 상처를 받습니다. 하지만 몸에 난 상처와는 가장 큰 차이가 있죠.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뭐가 그리 큰 차이일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요즘엔 블루투스니 와이파이니 안 보이는 게 천지니까요. 하지만 지구가 나를 당기는 것을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눈치챌 수 없었고, 그것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재판도 받았었다는 역사를 생각해 보면, 마냥 작은 차이는 아니지요.

자기 자신의 장점을 숨기고, 성취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지 못하는 원인은 질문자 분이 이미 잘 알고 계세요. 나를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고 믿었던 친구들이,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험담을 하고 다녔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큰 상처가 될 만한 일이죠. 그 상처 때문에 사람을 믿기 힘들게 된 것일 테고요. 그런데 제가 지금 말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질문자 분 본인, 모두를 말하는 겁니다. 내 앞에서는 나를 좋아하는 척하고 뒤로는 내 욕을 하는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없는 동시에, 욕을 듣는다는 사실과 그것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감당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지 못하는 것이죠.

먼저 다른 사람 얘기를 해 볼게요. 내가 완전하지 않은 만큼, 다른 사람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아시겠죠. 그러니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달라지려고 하셨겠죠. 근데 그 방법이 참 흥미롭네요. 다른 사람에게 주는 정보를 제한해서, 질문자 분이 원하는 반응만 보이게 한 것이니까요.

사람의 불완전성을 조금 다르게 해석하신 것 같아요. "사람이란 불완전하니, 내가 좀 더 신경 써야 해!" 이렇게요. 사실 질문자 분이 조금 더 편해질 수 있는 해석은 "사람이란 불완전하니,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인데요.

예를 들어 볼게요. 어떤 성공을 해서, 그 기쁨을 표현할까 말까 고민이 되는 순간이에요. 이걸 표현을 하면 다른 사람들 중에 자신을 몰래 욕하는 사람이 있을까 두렵죠. 그런데 사람은 원래 불완전해서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니 내 앞에서 내 욕을 안 하면 됐지, 뒤에서 뭘 하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아마 내가 젖먹이였을 때, 나 몰래 우리 부모님도 내 욕을 했을 거에요. "대체 하루에 몇 번 젖을 먹는 거야..." 하면서요. 

사실 자녀를 사랑해 마지않는 부모님도, 몰래 자녀 욕을 해요. 부모님을 사랑하는 자녀도, 몰래 부모님 욕을 하죠. 우리는 사랑하면서 싫어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서로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경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싫어하고, 화해하고, 다시 사랑하는 거죠. 관계란 정적인 것이 아니라, 가까워짐과 멀어짐을 반복하는 역동적인 거에요. 같은 또래의 형제가 있으면, 이런 부분을 더 쉽게 알게 돼요.

하지만, 타인의 불완전성을 이렇게 해석하려면 반드시 견뎌야 하는 것이 있죠. '나는 욕을 먹는다.'를 가정하고 있으니, 당연히 어느 정도의 욕을 각오해야 해요. 그러면 결국 문제는, '나는 욕을, 다른 사람의 비난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가?'로 정리할 수 있어요. 조금 더 나아가, 상대방이 나를 욕하고 싫어해서, 그 사람이 나를 떠나는 것이 질문자 분에게는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한 사람과의 멀어짐이 그저 '나랑은 안 맞는 사람이 갔네.'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갈등은 내가 모든 친구를 잃고 혼자가 된다는 신호야.'이기도 하거든요. 또 어떤 사람은 '나는 완벽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갈등이 있어서는 안 돼.'라고 말하기도 하죠.

 

본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물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을 하는 것이겠지만, 본인이 직접 뭔가를 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으시네요. 일단 어떤 사건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사람도 한두 명 정도 있어야 하죠. 내가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해요. 사건은 별 게 아니어도 돼요. 누군가가 본인을 단순히 칭찬을 한 상황 정도면 되니까요. 그리고 그 상황이 일어나고, 본인이 자신의 감정을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표현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미리 적어놓으세요. 그 사람의 말, 행동 거기에 기쁨/분노/불안/질투 네 가지 감정이 각각 몇 점 정도로 나타날 것 같은지 적으시면 돼요. 또, 그 사람의 반응을 보고 질문자 분 본인은 기쁨/분노/불안/질투 가 각각 몇 점 정도로 나타날 것 같은지도 적으시고요.

그 다음은 실행이죠. 그 상황이 일어났을 때, 실제로 그 사람에게 표현해 보고, 자신이 예측한 상대방과 자기 자신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결과를 스스로 분석하시면 돼요. 상대방의 점수가 예상보다 높은지 낮은지, 상대방의 점수에 비해 내 점수가 높지는 않은지, 이런 실험을 반복할수록 내 예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굉장히 흥미로우실 거예요.

처음에 말한 것처럼, 마음은 보이질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내 마음에 대해 평가를 하고, 바꾸고 싶다면 어느 정도 계량화 하는 것이 유리할 때가 있어요.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마음을 계량화하고 분석하다 보면, 본인이 본인을 더 좋은 길로 이끌어 가실 수 있을 거에요. 혼자서 작업이 잘 되지 않으신다면, 전문의에게 도움을 요청하셔도 되고요. 용기와 행운이 함께하시기를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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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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