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스물아홉 여성입니다.

저는 매우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주변에서는 쾌활하고 스스럼없이 사람들을 대하는 적극적인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 뒷면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거부당하는 것이 두려워, 타인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남들의 기분을 매우 의식하는 양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긴장을 하거나 초조할 때 손톱을 물어뜯는 행동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는데, 저는 어린아이 때부터 특이하게도 손톱 옆쪽의 살을 뜯는 버릇이 있습니다. 다른 손가락 혹은 치아로 살을 물어뜯곤 하는데, 현 상태를 직접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한번 뜯기 시작하면 열 손가락의 손톱 주변부위 전체에 피가 흐를 정도로 피부 껍질(?)을 뜯습니다.

처음에는 긴장했을 때, 멍하니 있을 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을 때, 이 행동을 많이 해왔는데, 요즘에는 특정하지 않은 순간에도 손을 뜯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매일매일 피가 나올 정도로 매 순간 삶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뜯지는 않습니다만, 남들이 보기에 자주 손을 뜯고, 모두 걱정할 정도의 손가락 상태를 보입니다.

정신을 놓고 병적으로 손을 뜯고 나면 당연히 물이 닿거나, 손가락을 움직일 때 등 매우 통증이 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버릇을 거의 20년이 넘게 완벽히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을 가지신 분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애정결핍이 원인이다라는 말씀들을 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저도 이에 해당되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현재 가족과 남자 친구, 지인들이 주변에 있음에도 애정의 결핍 등이 올 수 있는 부분인가요?

그냥 단순한 "버릇"이자 "습관"인지.. 아니면 정신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행동인지.. 전문가 선생님들의 소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A) 안녕하세요. 손톱 주변 살을 자꾸 물어뜯으시는군요. 손톱 주변의 거스름이 조금 뜯어져 나와있으면 그걸 자꾸 잘라내고 싶은 생각이 들고, 또 그것을 앞니로 뜯고 잘라내는 느낌에 뭔가 자꾸 매이게 되는 것은 정말 흔한 경험입니다. 그리고 그게 살짝이라도 깊게 찢어지면 얼마나 따갑고 신경 쓰이는지 역시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보았을 것입니다. 제가 손톱 거스름을 한번 잘못 뜯었을 때의 경험을 떠올려보니 질문자님께서 갖고 계신 이 습관이 얼마나 신경 쓰이고 거슬리실지 공감이 됩니다.

먼저 정신의학의 진단 체계인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에서는 <피부벗기기장애(Excoriation-skin picking disorder)>라는 진단명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A. 반복적으로 피부를 뜯어 피부 병변에 이르게 한다.
B. 피부 뜯는 행동을 줄이거나 멈추려고 반복적으로 시도한다.
C. 피부 뜯기는 임상적으로 유의한 고통이나 사회적, 직업적, 또는 중요한 기능영역에서의 장해를 초래한다.
D. 피부 뜯기가 물질, 약물의 생리적 효과나 다른 의학적 상태에 의한 것이 아니다.
E. 피부 뜯기가 다른 정신질환의 증상으로 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와 같은 항목들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질문자님 같은 경우에는 C. 항목을 만족시킬만한 일상생활에서의 장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니, 지금 질문자님께 어떤 정신과적 질환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피부벗기기장애를 바라보는 시각과 같이 지금 질문자님의 어려움을 이해해볼 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기본적으로 피부벗기기장애는 <강박관련장애>에 속해 있는 질환입니다. 그 말인 즉, 자꾸 이로 피부를 뜯는 행동이 일종의 강박적 행동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강박증은 원래에는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속해있었으나 최근 정신의학에서는 불안장애와는 독립된 다른 질환군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강박을 일으키는 심리적인 원인에 불안이 있긴 하지만, 강박증은 일반적인 불안장애에서는 볼 수 없는 '반복적인 행동의 억제 실패'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특징은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행동을 조절하고 억제하는 뇌의 기능과 우선순위, 중요성을 평가하는 뇌의 기능을 연결하는 회로에 이상이 생겨서 발생한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즉 중요성이나 우선순위를 평가하는 뇌의 이상으로 불안감이 가속화되고, 그런 불안감으로 인한 손톱을 뜯는 것과 같은 강박행동을 억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실패하면서 계속해서 손톱을 뜯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회로의 잘못된 활성화나 뇌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조절하는 SSRI 계열의 항우울제가 강박증상의 조절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꾸 피부를 벗기게 되는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 중에 질문자님의 불안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그 행동 자체를 계속 지속시키는 뇌의 기질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 또한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만약 질문자님의 지금 같은 손톱을 자꾸 뜯는 행위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약물치료의 필요성이 있진 않을까 진지하게 검토해보시는 것이 어떨까 권유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뭐 이런 걸 가지고 정신과 약까지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실 수 있고, 정신과 약물에 대한 편견, 걱정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항우울제의 경우 의존성이 없고, 부작용도 심하지 않으며 부작용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약물 조절이나 중단으로 금방 사라지는 것들에 그치기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와 상세히 상담을 해보시고 치료를 해보시는 것이 어떨지 고민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항우울제 치료는 말씀드린 행동억제실패의 회로를 교정하는 것 이외에도 기저의 불안 수준 자체를 낮춰주는 데에도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에 약물치료의 효과를 어느 정도 보고 난 뒤에는 자꾸 질문자님이 피가 나도록 손톱을 뜯게 만드는 마음속 깊은 곳의 불안은 어디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것인지를 상담을 통해 돌아보시는 것 또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서두에 말씀드렸다시피, 지금의 행동이 일상생활에 지장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정신과적 질환이라고 결코 이야기할 수 없고, 또 너무 과도하게 문제를 키우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만약 오늘 말씀드린 이 불안, 강박의 주제가 질문자님의 마음속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주저 없이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려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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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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