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저는 서른 살의 남자 간호사입니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위해서는 종합병원 이상의 특수파트 간호사 경력이 필요합니다.

제 첫 직장은 한 종합병원의 응급실이었는데, 아직 적응도 안 되는 1달 좀 지난 시점에서 명절 휴일 때 엄청난 수의 환자들이 몰려옴과 그에 대한 스트레스로 "출근하기 전 극심한 불안" 증상이 생겨서 너무 힘들었었습니다. 심장이 조여 오는 느낌,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 두려움이 엄습해와 출근 전에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직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면 이런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출근하기 전에 느끼는 불안" 증상이 너무 심해져서 정신과 진료도 받고 약도 먹었지만 그 증상이 완화되지 않고 더 심해지는 바람에 3달도 못 채우고 그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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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임상 간호사로서가 아닌 행정직에 가까운 간호사 업무나, 연구간호사 일을 하면서 지내오다가 그래도 제 꿈을 다시 떠올리면서 특수파트 임상경력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죽든 살든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첫 직장보다는 낮은 급의 종합병원의 중환자실로 이직을 했습니다.

이제 일한 지 며칠 안 되었는데, 첫 직장에서 일했던 그 불안감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증세는 덜하지만 두렵습니다. 알 수 없는 불안감, 심장이 조여 오는 느낌, 두려움이 듭니다. 마치 대중 앞에 발표하러 나가기 전에 느껴지는 불안감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병원 환경은 괜찮습니다. 직장 동료들도 다 좋은 분들인 거 같고요. 근데 이런 불안해하는 제가 싫습니다. 한편으로는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전처럼 굉장히 불안한 마음이 들 거 같아 무섭습니다. 첫 직장을 그만둘 때 부모님과 엄청 싸워서 여기서 그만두게 되면 부모님 뵐 면목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나도 무섭고 불안합니다.

제가 성격도 급한 편인 데다가 어느 정도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마음도 있어서 한 번 마음에서 결정을 내리면 그냥 그대로 해버리는 성격입니다. 전에 일했던 연구파트에서 경력을 쌓을 수 없는지, 아니면 다른 경력을 쌓을 일은 없는지, 아니면 여기서 못 버티면 아예 꿈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어떻게 이 불안을 극복하고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A) 안녕하세요.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과, 불안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네요. 참 안타깝습니다.

첫 직장에서의 상황을 보면,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생기는 불안이 주된 증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직장이 바뀌어도 같은 증상이 계속되는 것은, 환경 탓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상황과 환경을 자신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하겠네요.

아마 질문자님께는 첫 직장에서 경험한 명절 휴일의 과도한 업무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트라우마는 또 같은 상황이 나타났을 때,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즉, 왜곡된 생각들을 만들어내는 거죠. 이를테면 ‘또 같은 업무량이 몰아닥치면 나는 해내지 못할 것’이고, 혹은 ‘그 일을 해내지 못하면 무언가 큰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염려하고, 그 일이 일어난다면 자신에게 닥칠 끔찍한 상황을 상상하게 하여 큰 불안을 자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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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불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질문자님께서 최근 계셨던 직장에서는 별 무리가 없었던 걸 보면 꼭 상황과 불안이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걸 알 수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해석이 불안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다만, 그 해석을 애써 찾으려 하지 않으면 인식할 수 없기에, 상황이 불안을 만드는 것처럼 느낄 뿐이지요. 그래서 그러한 해석을 ‘자동적 사고’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니 질문자님께서 스스로 던져봐야 할 질문은 ‘내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혹시 물에 빠져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물이 얕든 깊든, 물의 바닥에 발이 닿지 않으면 공포감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내 키보다 깊은 수심이라도 정확한 깊이만 알고 있다면 그리 두렵지는 않아요. 출근 직전의 불안감에서 시선을 약간 돌려, 출근 이후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지,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지 찾아보세요. 적은 글을 보면 비논리적이고 왜곡이 가득할 겁니다. 불안은 이런 왜곡된 해석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자동적 사고를 명료하게 정리해보면 자신이 정말 두려워하는 상황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왜곡된 해석으로 인한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이 느껴지면 현 상황에 대해 내가 어떤 해석을 내리고 있는지, 그 말들에 왜곡된 부분은 없는지를 찾아보는 것이지요. 현실성에 기반을 둔 건강한 생각들을 옆에 적어보고, 이를 고민해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롤 모델이 있다면, 과연 그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까를 상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자신에게 던져야 할 두 번째 질문은 ‘과연 내가 상황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첫 직장에서 막상 출근해서 일을 하면 그 불안이 가라앉는다고 하셨지요. 맞아요. 상황에 맞지 않는 과도한 불안은 시간이 흐르면 결국 사라집니다. 그리고, 막상 걱정하는 상황에 부딪히면 생각보다 견딜만한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불안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은 자신도 모르게 실체를 모르는 불안이 더 무서울 것이라는 추측만 키울 뿐이지요. 불안이 있어도 해볼 만하다, 견딜만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생기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직장을 옮기거나,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 결코 답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상황에 부딪혀 나가고, 생각보다 내가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끊임없이 확신시키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내용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인지행동치료’의 일부 내용입니다. 혼자 힘으로 해내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불안이 심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전문적인 평가와 그에 맞는 도움을 받아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짧은 약물 치료도 위기를 넘기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급한 성격,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셨는데, 이런 성격 특성은 자신만의 틀에 갇히기 쉬워요. 한 번 생긴 관점이 잘 변하지 않는 특징을 가집니다. 그러니 혼자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생각을 경계하고 주위에 손을 내밀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멀리서 질문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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