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정말 너무 힘든데 털어놓을 곳이 없어 여기에 글 남깁니다.

1년 전, 이맘때쯤부터 눈 깜빡이는 걸 의식합니다. 눈 깜빡이는 걸 의식할 뿐만 아니라 마치 '눈 깜빡임'이라는 단어가 제 머릿속에 떠다니는 것처럼 계속 생각이 납니다. 떨쳐 버리려고 해도 제 마음대로 되지 않고, 정말 몇 초에, 몇 분에 한 번씩,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이 납니다. 또,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땀이 나고 심장이 빨리 뛰면서 불안해집니다.

제일 처음 이러기 시작했던 건 2년 전이었습니다. 그때도 비슷한 생각들로 불안하고 힘들어했는데, 점차 생각이 나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도 좀 있으면 잊어버리겠지 하고 넘기는 게 가능해져 다시 전처럼, 완전하게 괜찮아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여름부터 다시 이러기 시작하더니 또 괜찮아지나 싶더니 더 심해집니다.

의식을 하기 시작하면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정말 바닥까지 내려앉고, 심지어는 그냥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짧게는 십 분 정도에서 심하면 1, 2시간까지 이어지는데 이런 걸 한 번 겪고 나면 그 상태가 되었던 공간이나 행동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서 목욕을 하다 그런 패닉에 심하게 빠지게 되면 한동안은 목욕을 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 생깁니다.

이런 제가 저조차도 싫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친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상담을 받고 될 수 있으면 치료를 하고 싶지만 제가 아직 학생이라 혼자 할 수도 없고,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하지만 그것도 너무 꺼려져 아직까지 이러고 있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막막합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제대로 병원에 가봐야 할까요? 치료하면 나을 수는 있는 건가요...

 

사진_픽셀

 

A) 안녕하세요. 눈을 깜박이는 것을 자꾸 의식하게 되어서 고민을 많이 하고 계시군요. 고민이 너무 심해서 불안증이나 우울감까지 겹쳐오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질문자님께 정말 큰 고통이 아닐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누구나 눈을 깜박입니다. 눈을 깜박이지 않는 사람은 없지요. 대략 1분에 10번 정도는 눈을 깜박인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눈 깜박이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지냅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눈을 깜박이고 눈을 깜박인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살아갑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말이지요.

그렇지만 또 누구나 눈을 의식적으로 깜박일 수도 있습니다. 눈을 뜨지 않을 수도 있고, 눈싸움을 하듯 눈을 일부러 감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주 빠르게 깜박일 수도 있고 아주 느리게 깜박일 수도 있지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하고 있던 눈 깜박임을 의식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다음부터는 눈꺼풀을 내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꺼풀을 들어 눈을 뜬다라는 동작을 의식적으로 하게 되지요. 자동적으로 되던 것이 하나하나 직접 해야 하는 운동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숨 쉬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 모두 숨을 쉬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의식하지 못한 채로 숨을 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질문자님에게 "지금 숨을 어떻게 쉬고 있지요?"라고 묻는 직후부터, 질문자님이 문장을 읽으시는 직후부터 질문자님은 숨을 의식적으로 쉬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지 의식하면서 숨을 쉬게 되겠지요. 자연스럽게 하던 것을 의식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은 불편합니다. 귀찮고 번거롭습니다. 자꾸 의식하다 보면 호흡 수도 조금씩 평소와 달라지는 것 같고, 제대로 쉬는 게 맞나 확인을 하다 보면 숨이 막 가빠오기도 합니다. 짜증 나죠. 하지만 대부분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귀찮게 자꾸 숨을 의식하며 쉬게 되었지만 오래지 않아 다른 것을 하다 보면 숨 쉬는 것을 금방 잊게 됩니다. 그리고는 또 자연스럽게 숨을 쉴 수 있게 되지요.

 

그런데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오시는 어떤 환자분들은 "숨을 자꾸 의식적으로 쉬게 되어서 너무 불편해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숨을 쉴 수 있도록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지요. 자꾸만 의식해서 숨을 쉬게 되고 그러다 보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답답하고 불안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코가 자꾸만 보여서 신경 쓰여요."라고 이야기하시기도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코를 의식하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순간에는 신경 쓰지 않지요. 그렇지만 어떤 분들은 그 코가 보이는 것을 무시하기가 어려워서 힘들어하게 됩니다.

어쩌면 질문자님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자님 또한 365일 24시간 단 1초도 쉬지 않고 1분에 10-20회씩 계속 눈 깜박임을 의식하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 눈을 깜박이는 것을 의식하게 되고, 그러면 그 뒤로부터는 눈을 깜박이는 것에 사로잡혀 버리는 것입니다. '눈 깜박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다니는 것 같다고 표현해주신 것처럼 완전히 그 생각과 그 느낌에 묶여버리는 것이지요.

이런 증상은 '강박증'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강박증'이라고 한다면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생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면서 사라지질 않는 것이지요. 강박적인 생각은 머릿속에서 어떤 특정 회로가 갑자기 강력히 활성화되어서 발생합니다. 우선순위와 집중할 것을 선택하는 뇌의 특정 부위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생각을 마치 중요한 일인 것처럼 자꾸 잘못 분류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꾸만 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꾸만 그 생각에 매이게 되지요. 그게 엄청나게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그 생각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됩니다. 그 생각에 매여 일상과 생활을 놓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강박적인 생각을 더욱더 끈적끈적하게 만드는 것은 "~~ 해야만 해"라는 의무적인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청결해야 해"라는 의무감은 "손을 씻어야 해"라는 강박적인 사고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하루에 수십 번씩 손을 씻는 강박증 환자분들도 있지요.

마찬가지로 질문자님이 눈 깜박임을 의식하게 되면서 힘들어하게 되는 그 순간, 그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눈 깜박임을 의식하지 않아야 해"라는 강박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빙글빙글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걸 자연스럽게 넘겨야 해!"라는 생각에 매이다 보니 점점 더 눈 깜박임이 의식되고 그러면서 더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불안이 강력해지면서 악순환을 되먹이는 것이지요. 사실 강박증을 먹여 살리는 가장 큰 동력은 '불안'이기 때문입니다. 강박사고를 떨쳐낼 수 없다는 생각에 점점 더 불안해지고, 그러면서 더욱 강박사고에 얽매이는 것이지요.

 

사진_픽셀

 

강박사고를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실 약물치료입니다. SSRI 계열의 항우울제를 사용하면 강박증에 무척 큰 효과를 보임은 익히 증명된 바가 있습니다. 항우울제를 사용하는 것이지만 우울감의 유무와는 별개로 말이지요. 근처의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3-4주 정도만 꾸준히 약물 복용을 해보시면 확연히 좋아지는 것을 느끼실 수가 있습니다. 완전히 좋아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심한 불안감은 많이 좋아지실 수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그리고 약물의 도움으로 내가 이겨내기 힘든 불안을 조금 잠재웠다면 도전해야 할 것은 "눈 깜박이는 것을 의식하지 않아야 해."라는 생각을 깨는 것입니다. 사실 눈을 의식해서 깜박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눈을 좀 의식해서 깜박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감았다 떴다 하면서 일상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불편하긴 하겠지만요. 귀찮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불편과 귀찮음을 죽고 싶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이끌어내리는 것은 "눈 깜박임을 의식하지 말아야 해!"라는 생각입니다. 지금 당장 눈을 의식적으로 깜박이고 있다는 현실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나의 두려움과 생각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방법은 <지금 의식적으로 눈을 깜박이고 있는 현실>과 <평생 눈을 의식적으로 깜박이면서 아무 일도 못하게 될 것 같은 나의 불안>을 분리하자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방법은 <1분 세기>가 있습니다. 핸드폰의 초시계를 켜고 액정을 뒤집은 다음에 1분을 마음속으로 세는 것입니다. 말로 내뱉지는 않고 마음속으로만 1분을 세는 것이지요. 숫자를 세는 동안 몸을 함께 움직이는 것이 좋기 때문에 1초를 셀 때마다 잼잼하듯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60초를 세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1분이 지나면 액정을 뒤집어서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맞춰보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이렇게 1분 동안 숫자를 세면서 눈을 의식적으로 깜박이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숫자를 세고 있기만 하다면 눈을 깜박여도 좋습니다. 의식적으로 자꾸 눈을 깜박여도 좋습니다. 의식적으로 눈을 깜박이는 것이 너무 신경 쓰여서 숫자가 안 세어진다면 그것대로 좋습니다. 그러면 1분 동안에 눈을 몇 번이나 깜박이는지도 함께 세어봐도 좋겠지요.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당장의 1초 1초, 눈 깜박임, 주먹 쥠에 집중하면서 "눈을 깜박임을 잊어야 해."라는 강박에서 지금 이 순간을 분리하자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1분 세기>의 장점은 10번을 연속해서 훈련을 한다고 하더라도 10분 내외에 마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몇 번을 계속 반복해보십시오. 몇 번을 반복해도 눈 깜박임이 계속 의식된다면 그래도 좋습니다. "뭐 좀 불편하게 눈 깜박임을 의식하면서 하지. 괜찮아."라고 생각하면서 1분 세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대략 10분간 10번을 반복해서 이 훈련을 하다 보면 조금씩 다른 생각, 다른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눈 깜박임 말고 다른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지금 나의 현실과 생각을 따라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그 끈적끈적한 강박사고의 늪에서 몸이 둥실 떠오르기 시작하는 감각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점점 더 깊이 빠지기만 했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일단 몸에 힘을 빼고 늪에서 움직이는 내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기 위해 집중해야 하는 것과 똑같으니까요.

 

이런 질문 답변글 하나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강박에서 벗어나는 길이 쉬운 길은 분명 아닙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듯 가장 빠르고 근본적인 방법은 뇌 속의 그 회로를 끊어낼 약물이 가장 시급한 것도 사실이고요. 그리고 그 과정 중에는 아마 지금까지 처럼의 고통과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질문자님께서 그 강박사고에서 일상과 안정을 찾아가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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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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