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사원입니다. 제 고민은 밝고 사람들과 잘 지내왔던 제가 사람을 무서워하고 피하는 지경에 처했다는 겁니다. 

직업의 특성상 사람과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데 최대한 전화통화는 피하고 메일이나 문자로만 이야기하려 합니다. 급한 상황에서도 문자로만 이야기하니 상대방이 답답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적인 관계에서도 이성은 아예 피하고 원래 친한 친구도 웬만하면 만나지 않으려고 피합니다. 동성인 사람과도 이야기하기 전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걱정이 됩니다. 룸메와 함께 살고 있는데 룸메가 말을 걸까 봐 자는 척하고, 룸메가 없을 시간에만 집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점심시간도 혼자 보내고 저녁도 혼자 먹고 취미 생활도 혼자 드라마를 봅니다. 원래 드라마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는데, 사람이 무서운 증상이 심해지면서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다 보니 영화관에 가는 것도 불편해서 혼자 드라마 보는 걸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한 원인은 이전 남자 친구와의 나쁜 연애(1. 바람피운 걸 용서해주고 계속 만남 2. 남자 친구에게 경제적,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로 오래 연애 3. 취업 준비생이라 가장 힘든 시기에 남자 친구가 직장 동료와 바람을 피워서 이별 4. 나는 계속 가슴 아파하고 있는데 그 남자는 1년도 안돼서 바람피운 상대와 결혼)와 이전 회사 퇴사 과정에서 받은 상처(1. 퇴직금 분쟁 2. 상사의 인격 모독적 언행)가 너무 짧은 시기(1년 이내)에 있었고 이직 준비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제대로 스트레스 해소를 못 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증상이 시작된 이후 일상적인 변화라면, 자도자도 끊임없이 몰려오는 피곤, 10년 동안 변동 없던 몸무게의 갑작스러운 증가(+4kg), 난생처음 생긴 변비, 나 자신을 꾸미고 가꾸고자 하는 의욕의 급격한 저하가 있습니다. 이직 직후에는 적응하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적응된 이후에도 계속 그렇고 이직 후에 업무 강도는 오히려 낮아졌습니다.

이전에 우울증 상담을 장기간 받아본 적이 있어서 무너지지 않고 침착하게 생활을 유지하고 있고, 원인도 파악했지만 문제는 도통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회사 분들도 너무 좋은데 같이 있으면 불안함이 심해서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전혀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직업적인 애로사항도 많고요.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이제야 모든 게 정상이 되고 행복해졌는데 아직도 불행한 제 자신이 너무 답답합니다. 저 나아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요? 

 

사진_픽셀

 

A) 지난 1년간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요. 너무 많은 일들이 짧은 기간 동안 질문자에게 상처를 남기고 간 듯해서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사람을 피하는 것이 주된 증상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겉으로 보면 사람들과 대인관계가 두렵고 단절된 듯해서 사회불안증에서 흔히 보이는 사회불안과 회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실은 말씀하신 것들이 우울증의 증상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만성적인 피로감, 외부 활동에 대한 의욕 저하, 활동의 감소, 갑작스러운 체중의 변동, 잦은 불안감 등은 우울증을 시사하는 소견입니다. 과거 우울증 상담을 상당 기간 받으셨다 하시니 잘 아시겠지만 우울증은 아차 하는 사이에 금세 재발하는 병이기도 하니까요. 의학적으로 드리고 싶은 조언은,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거기 맞는 적절한 치료를 받기 위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정확한 평가를 먼저 받으시라는 겁니다. 원인과 시작 시점이 명확하더라도, 어떻게 치료하고 대처하는가에 따라 우울증의 경과는 천차만별입니다. 또, 우울증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깊어진다면 원인이 제거된다 하더라도 우울증은 계속되어 고통을 만들어냅니다. 만약 굳이 약물치료 등이 필요하지 않은 우울증이더라도, 그 정도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또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상황,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상황을 자신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혹은 부정적으로 볼 거라 지레짐작했던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예전 남자 친구가 자신을 떠났던 것처럼, 이전 회사에서 오해를 받았던 것처럼 결국 혼자 남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 타인, 그리고 상황에 대해 해석을 합니다. 이는 부지불식간에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요. 이를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라 합니다. 질문자님께서는 최근 직장에서, 그리고 전 남자 친구에게서 받은 상처로 타인을 받아들이는 시선이 왜곡되어 있을 수도 있어요. 일종의 부정적인 틀(frame)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지요. 타인의 시선이나 말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낮게 평가할 것이라는 생각에 외부와 교류를 끊은 채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가시를 세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상황이 좋게 변해도 세상은 어두컴컴해 보입니다. 그러니 우울증이 재발할 때 자신이 나, 타인, 그리고 세상을 어떤 틀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하지 않은, 왜곡된 생각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면 좀 더 건강한 생각들로 대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롤 모델을 활용해보세요. 건강하고 현명한 친구나 지인이 주변에 있다면, 과연 그 사람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떠올려보는 겁니다. 직접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아요. 이렇게 왜곡된 시선들을 건강한 시선들로 대체해 나가는 연습을 해나가야 합니다.

 

또, 활동을 계획하여 조금씩 늘려가야 해요. 모든 활동을 다 하려고 들 필요는 없어요. 또, 한 번에 너무 많은 것들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가능하지도 않고요. 한 번에 하나씩, 신중하게 활동을 늘려가 보세요. 가까운 곳에 매일 30분 정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시작하는 것도 좋겠네요. 활동을 선택하는 기준은 활동 후의 1)성취감과 2)즐거움으로 잡으시고, 이 기준에 맞게 적절한 수준의 활동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겨보세요. 

우울증이 심해질수록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불편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주변에 손을 내밀어 보세요. 분명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혼자 할 수 있는 노력들을 열거했지만, 우울증이 사회생활, 일상생활,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 상태에서는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개인적인 노력도 함께할 필요가 있음을 물론입니다. 

상처가 지나간 마음의 자리에, 건강한 새 살이 돋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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