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일 터지는 여러 종류의 사건, 사고의 기사를 보면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앞뒤 생각하지 않고 그만"과 같이 '충동조절장애(혹은 분노조절장애)'를 언급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순간의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의 원인이 정말 충동조절장애에 해당하며, 또 그것으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_픽사베이

 

♦ 대체 충동조절장애는 무엇인가? 

우선 알아야 할 중요한 개념은, DSM-5 진단기준에서 충동조절장애(분노조절장애)라는 이름의 단일 질환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진단명이 아니라 충동조절에 관련된 질환의 상위 개념, 또는 범주라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공통적으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그리고/또는 사회적 규준, 권위자나 성인과 현저한 갈등을 유발하는 행동을 보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세부적으로 명시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 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현저한 고통이나 손상을 일으키는 파괴적, 충동조절 및 품행 장애의 특징적인 증상들이 두드러지는 것. 

즉, 단순히 충동을 참느냐 못 참느냐 보다는 이로 인해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고, 얼마나 그것이 크고 영향력이 있는지가 더 중요하겠습니다.

 

♦ 충동성(Impulsivity)이란? 그리고 반드시 생각해야 할 강박성(Compulsion) 

충동성은 어떤 행동의 결과에 대한 예측 없이 행동하는 것이며, 충동을 조절했을 때 생기는 더 큰 지연된 보상보다는, 작더라도 즉각적인 보상을 연기하지 못하는(쉽게 말해 참지 못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렇듯 충동성은 보상과 학습이라는 부분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위험하고 자극적 행동을 추구하는 성향도 지니고 있습니다. 

 

충동성이 한 가지 행동을 시작하려는 것을 못 참는 것이라면, 강박성은 반복되는 행동을 멈추는 것을 못 참고 계속하게 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 두 가지는 드러나는 행동만 가지고는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닮아있으며, 실제로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강박성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발생함에도 현재 하고 있는 행동(대개는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을 멈추는 것이 어려운 것을 뜻합니다.

습관(habit)은 강박성의 일종으로 행동으로 인해 좋았던 경험이나 좋지 않은 결과를 피할 수 있었던 경험과 같이 습관을 강화하는 요소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어디까지를 진단으로 보아야 하나

파괴적 행동이나 충동조절 문제는 발달상에서 어느 정도 나탈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진단에는 연령, 성별, 교육, 증상의 빈도, 지속성, 문화적 상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충동성과 관련된 경우에 정서를 조절하는 것이 어려운데 이것이 성격이나 기질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정서 자체의 문제(우울장애, 불안장애 등)인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래 표는 충동조절 어려움이 주된 문제가 될 수 있는 질환이나 영역입니다. 

 

위의 표를 충동성과 강박성의 문제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충동성의 문제 - 붉은색 표
강박성의 문제 - 푸른색 표
두 가지 모두의 문제 - 보라색 표

 

약물이나 도박중독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충동성 문제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강박성 문제로 지속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 번 재미 삼아,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도박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충동 조절의 어려움으로 도박을 통해 생길 수 있는 부정적 결과는 예측하지 못하고, 도박을 한 것이지요.

큰돈을 따게 되었다면, 이것은 쾌락의 경험을 강하게 남기며 반복적인 도박행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도박을 반복할수록 금전손실, 사회, 직업기능의 저하가 생기지만 이제는 도박을 멈출 수 없게 됩니다. 도박충동도 크지만 도박을 하지 않을 때 불쾌감, 짜증, 불안함 등이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충동성보다는 강박성이 조금 더 큰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 왜 이렇게 복잡할까? 

충동조절 어려움의 문제가 이렇게 복잡한 것은 실제 관여하는 뇌의 해부학적 구조가 복잡하고 여러 부분이기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충동성은 배쪽 선조체(ventral striatum)에서, 강박성은 등쪽 선조체(dorsal striatum)에서 보통 시작하며, 보상과 동기와 관련된 여러 구조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평소 여기에서 시작하는 각종 충동과 강박은 전전두엽에서 잘 억제하고 있습니다. 충동조절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바로 이 충동이 커지는 경우이거나, 조절하는 억제 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두 가지 경우를 모두 생각해야 합니다.

보상과 동기과 관련된 여러 구조물 역시 전전두엽을 포함한 많은 기저뇌핵들이 관여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많은 수의 신경전달물질이 작용하고 있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충동성과 강박성의 비슷하지만 다른 회로. Stahl's Essential Psychopharmacology

 

♦ 진단만큼이나 치료도 간단하지 않다.

생각해야 할 진단의 범위가 넓습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생각할 때 고통을 초래하는 것이 될 수도 있으며, 타인이나 집단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공격적이고 파탄적 행동문제가 생긴 경우라면 행동의 책임과 관련되어 법 문제가 동반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이를 질병으로 볼 것인가, 범죄로 볼 것인가와 같이 복잡한 가치판단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의사와 환자가, 즉 병원에서 다룰 개념은 아니며 그럴 수도 없을 만큼 복잡합니다. 조급함보다는 충분한 평가를 통해 하나씩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충동조절의 어려움으로 진료가 필요하다면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주변에서 가보라 해서", "나는 잘 모르겠는데 배우자가 못살겠다고 해서"와 같이 주변에서 떠밀어 병원에 방문한 경우,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치료를 받는 것이 나에게 잘못이 있다는 책임의 문제로 오해를 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변화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것입니다.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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