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50대 초반 박OO 씨의 이야기>

저는 어릴 때부터 체력, 건강 이런 것 하면 뭐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매년 받는 직장 건강검진에서 별 문제가 없는 것은 물론이며, 40대 중반까지는 마라톤 대회도 나갈 정도로 관리를 하고 있었죠.

 

50대로 넘어선 후 어느 날부터인가 뭐만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되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스를 자주 받아 그런가 보다 했지요. 이것저것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해보아도 좋아지질 않더라고요.

속이 불편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여서 좋아하는 음식도 멀리하게 되었고, 허기가 져도 굶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동네 내과를 몇 군데 다녀보아도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경을 쓰다 보니 실제로 급성 위궤양이 생겨 한밤중에 응급실에 가기도 했습니다.

나이도 나이이다 보니 조금만 속이 좋지 않으면 혹시 동네병원에서 찾지 못한 나쁜 병이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금 큰 병원에 찾아가서 위, 대장 내시경, CT, MRI 검사를 했는데 역시 별다른 것이 없다고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위장질환을 가장 잘 보신다는 한 대학병원 교수님 진료를 보기 위해 한 달의 예약 대기를 걸고 진료를 보았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다른 대학병원을 몇 군데 다니면서 검사를 해도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그래도 증상은 없어지지 않고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말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도 못 자고, 매사 짜증이 많아져서 다니는 회사에서도 정상적으로 일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지긋지긋한 소화불량, 복통은 계속되고 있고요.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나을 수 있을까요?

사진_픽사베이

 

건강염려증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위 사례가 바로 전형적인 건강염려증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주변에 드물지 않게 위와 같은 걱정을 가진 분을 볼 수 있습니다.

꼭 병원에 가서 반복적 검사와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지나친 건강 관련 행동을 하는 경우에도 이런 건강 염려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예: 건강식품을 지나치게 챙겨 드시는 분이나, 운동을 지나치게 하시는 분, 각종 건강 관련 정보를 전문가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건강에 대한 걱정과 건강 관련 행동은 스트레스 요인이 많고 규칙적 식사와 운동을 하기 어려운 현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정도가 되어야 질병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전 세대 진단체계에서는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이라 불리던 것이 현재 진단체계(DSM-5)에서는 질병불안장애(illness anxiety disorder)와 신체증상장애(somatic symptom disorder)로 나뉘어 진단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비슷하고 겹치는 것이 많은 진단입니다.

중요한 차이는 일상에 중대한 지장을 일으키는 신체 증상이 실제로 있는가(신체증상장애), 아니면 증상이 없거나 약하게 있는가(질병불안장애)로 볼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신체 증상이나 생각이 있으면 질병에 대한 걱정이 과도하게 나타나고, 이것을 확인하거나 염려하는데 지나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이것이 적당한 수준인지, 아니면 질병 수준인지를 판단할 때는 다음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됩니다.

1) 객관적/합리적 검사 결과는 믿지 못하면서, 자신에게 심각한 질병이 있을 것이라는 불합리한 공포와 반복적인 생각

2)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부적응적 질병 행동 (지나치고 반복적인 검사, 의학적 위안받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나타나는 것.

3) 이로 인해 일상생활 기능과 직업기능, 대인관계 기능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

사진_픽셀

<좋아질 수 있을까요?>

먼저 자신이 지나치게 건강을 걱정하고 있고, 이로 인한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입니다.

건강 염려가 지나친 경우는 보통 아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전문가와 함께 이를 찾아내어 교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가벼운 신체 증상이나 정상적 신체 증상을 오인할 경향이 많아지고, 이것이 건강에 대한 지나친 염려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1) 나는 건강 문제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2) 나에게 건강문제가 생기면 끔찍하다.

3) 나에게 건강문제가 생기면 나는 대처할 능력이 없다.

4) 나에게 건강문제가 생기면 나는 적절한 의학적 도움을 받을 수 없다.

+ 여기에 내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건강 염려가 활성화되게 됩니다.

신체와 건강과 관련된 불안의 경우에는 생각을 교정하고 합리적 대안을 찾는 일반적 인지치료 접근도 분명 필요합니다.

특히 아래에서 다룰 핵심인 믿음을 교정하는 것이 다루어져야 합니다.

생각의 교정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주치의와 안정적 관계 속에서 사고(생각, 믿음)의 유연성을 기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약물치료는 도움이 되나요?>

약물은 항우울제와 불안을 일시적으로 줄이기 위한 항불안제를 사용하게 됩니다.

항우울제를 쓰는 이유는 증상 자체, 즉, 신체와 건강에 관련된 침투적 생각을 줄이기도 하지만, 건강염려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 불안, 우울 증상이 함께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것을 줄이는 목적도 있습니다.

우울하거나 불안이 동반되면 생각 오류의 교정이 어렵고, 더욱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사진_픽셀

<나도 이런 것이 생기지는 않을까?>

이 건강 염려는 생리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신체 감각이나 가벼운 신체 증상을 심각한 것으로 오인한 것(misinterpretation)에서 시작합니다.

누구나 이러한 것이 생기는 것은 아니며, 몇 가지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조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1. 유전: 불안이라는 감정 자체가 주는 모호함이나, 불안에 동반된 여러 증상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성향을 가진 경우(불안민감성이 높은 성향)

 

2. 학습: 부모가 지나친 건강 염려가 있다면, 자녀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자녀의 증상에 대한 집착과 걱정으로 지나치게 병원을 찾아다니거나 유명한 의사를 찾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해당됩니다.

특히 실제 부모가 만성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사고는 굳어지게 되는데, 자녀는 이러한 건강 행동을 배우게 됩니다.

 

3. 일반 심리 특징: 감정을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반추하는 경향성

자신의 느낌,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 구별하거나 묘사하지 못하는 경우(alexithymia), 감정 조절 능력이 결핍되어 있을 때 신체 증상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부정적 감정과 생각이 생겼을 때 이를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행동을 반추라고 하는데, 이러한 반추 경향이 높은 경우에도 건강 염려가 잘 생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내 몸에 생기는 증상과 질병은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정도의 객관적 검사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적절한 불안과 긴장은 건강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여러 행동의 동력원으로 작용하며, 효율적이고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입니다.

건강 염려에 대한 지나친 부정 또한 건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하나의 대처기능을 없애는 것이기에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혹시 주변에서도 이러한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무시하거나 검사를 더 받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수준으로 맞추도록 조언하는 중요합니다.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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