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부장님의 이야기

 

저는 이제 막 50대를 넘어선 김OO부장입니다. 얼마 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후배들이 저를 '꼰대'라 부르는 것을 전해 들은 것이죠. 솔직히 많이 억울합니다. 저와는 상관 없으리라 생각했던 단어라 충격은 더 컸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꼰대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항상 신경을 써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들어보니 후배들은 꼼꼼한 일처리와 성과위주의 평가, 근태관리, 뭐 이런 것들을 가지고 꼰대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직장은 월급 받고 일하는 곳이니 받은 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업무성과가 아니면 평가할 것도 마땅하지 않은데다, 문제가 있는 것을 개선해서 열심히 하라고 일러준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성인이 출퇴근 시간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기본 됨됨이가 어떤 지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요? 선배 입장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게 잡아주는 것이 도리라 생각해서 한 것이 전부입니다. – 후략 –

 

사진_픽셀

 

왜 '꼰대'라 부르는 것인가?

 

보통 세대차이에서 비롯한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람 등, 김부장님과 같은 '꼰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이 전부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꼰대의 특징을 한 가지로 설명한다면 어떤 것을 쓸 수 있을까요?

잔소리, 문제점 지적과 반복되는 간섭, 주먹구구식 업무스타일, 경력과 연륜의 강조, 조직과 단체문화의 강요.

 

꼰대라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불쾌하고, 억울할 만한 뜻을 지닌 표현 같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꼰대라 부르는 사람들은 더 큰 불편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꼰대의 여러 특징은 자기중심적 모습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쉬워 불편해지기 때문입니다. 직장과 후배를 신경을 쓴다고 한 행동이 자기중심적이라는 평가를 들으니 더 억울할 수도 있겠네요. 말이나 행동과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본다면 그렇게 여길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행동과 판단의 바탕이 되는 생각의 틀입니다.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내 의도와 달리 상대의 반응, 기분, 생각과 같은 것에 신경을 덜 쓸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경험과 연륜이 상대적으로 많은 상사의 입장에서 보면, 후배 직원들의 행동이 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스스로도 알지 못한 사이에 그런 자기중심적 사고의 틀이 작동하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그런 행동이 나타날지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알아야 하는 것

 

사람은 누구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군가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분노를 느끼게 할 만한 위협을 가한다면, 우리 뇌는 의식하지 못할 만큼 순간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작동합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도 그러한 보호를 위한 자동적 반응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꼰대 행동을 한다면 바로 그 순간이 내가 잘 눈치채지 못하는 부정적 감정이 내 안에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부장님은 언제, 어떤 경험을 했길래 그런 작동기제가 생겼을까요?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거나, 불합리한 지시를 따라야 했을 때인지도 모릅니다. 학창시절 선생님, 부모님에게 성적이나 생활 문제로 혼나거나 창피를 당했을 때였을 수도 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훨씬 더 이전의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특정 사건과 기억을 원인으로 지목해서 떠올리기보다는, 나의 이런 표현과 행동이 지금 눈 앞의 상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잘 해결하지 못한 나의 불안, 두려움, 분노와 같은 감정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는 시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중심적 사고의 틀에서는 말과 행동이 상대를 향하는 쪽으로, 그것도 부정적 감정을 실은 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시각이 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내 주변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동적인 행동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과거 경험을 토대로 지금 내가 생각하고 것들이 반복되게 됩니다.

 

 

또 다른 한가지, “중년은 현실이다”

 

우리는 누구나 늙으며,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중년기는 노년기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경험에서 비롯된 부정적 감정과 함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감정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분명 우리 몸과 뇌기능은 중년이 되면 변화가 생깁니다. 하지만 단순히 노화로 치부해 체념하거나, 현실을 부정하고 지나치게 젊은 시절의 행동과 생각을 고수한다면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게 됩니다.

존 스튜어트 밀, 에릭 에릭슨, 칼 융과 같은 철학자, 심리학자들은 중년의 만족스러운 삶과 행복은 젊은이들과는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지혜'라 부르는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년의 뇌 기능 변화에 대한 대규모 연구 결과를 보면 바로 이 지혜는 자기 자신의 행복보다는 주변의 사람에게 마음을 쏟고, 여러 패턴을 인식해서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꼰대의 자기중심적 모습과는 정반대의 성격이기에 이런 모습이 중년에서 나타난다면 주변 사람들은 더욱 거리를 두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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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꼰대라고 부르는 이들을 위한 한마디

 

내가 누군가를 꼰대라 부르고 대하는 경우가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꼰대라는 단어는 분명 듣기 거북한 표현으로, 사실 그 단어를 사용하는 자체만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이런 공격, 괴롭힘, 무시를 당했으니 당신에게는 꼰대라는 이름표를 붙여주겠어."

당연히 내 감정이나 생각을 무시당하면 불쾌하고, 두렵기도 하며, 화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을 적절히 해결하지 못하고 참거나 숨기려 하면 같은 상황이 반복될 뿐이지 내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꼰대'가 행동과 말을 조절해야 하는 것과 같이 나도 그런 감정을 적절한 선에서 표현하고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내 감정과 남의 감정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변화의 기본이다

 

자, 이제 모두 변화의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아마 “이것” 필요할 것 같고, 지금은 이것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표현하기 편하고, 상대의 부정적 감정도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과연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와 부모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새로운 대인관계를 맺는데 핵심 역할을 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나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만드는 왕도는 없으며,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와 나는 동등한 인격체라는 이해가 바탕에 필요합니다. 거기에 합리적 판단과, 일관되고 꾸준한 반응이 추가된다면 더욱 좋습니다. 원래 이것이 부족하다 해도 언제든 새로 만들 수 있으며 또 사라지기도 하니, 시간을 가지고 항상 의식하고 있다면 분명 이것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신뢰입니다.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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