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새 룸메이트와 너무 긴 밤을 보내서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헌내기 대학생입니다.

제가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1학년 때는 기숙사에서 살았어요. 운이 좋아서 룸메이트들도 모두 좋은 사람이었고, 정말 즐거웠습니다.

올해는 기숙사에서 떨어져서, 자취를 구하게 됐어요.

방값이 너무 비싸서 고민하던 중에, 동기가 자기 친구 중에 자취 구하는 애가 있다고, 둘이 같이 방을 쓰면 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듣고 보니 어차피 기숙사에서 다인실에서 생활했었으니깐, 둘이 한 방 쓰는 것은 문제도 아니겠다 싶었죠.

그래서 동기와 함께 그 친구를 만났고, 특별히 이상해 보이지 않아서 같이 방을 계약했습니다.

 

사실 이사한 첫날 눈치챘어야 했는데... 새 룸메이트가 밤에 코를 그렇게 골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는 피곤하니깐 그런가 보다 했고, 저도 피곤해서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일주일 내내 코를 골더라고요.

다행히 그 친구가 새벽에 잠을 자는 타입이고, 저는 자정 전에 잠을 자는 타입이라 잠이 들 수는 있어요.

문제는 중간에 제가 무조건 깨버린다는 거죠.

그렇게 한 학기를 겨우 버티고, 시험 기간에는 아예 다른 친구 집에서 잤습니다.

이제 개강을 하면 다시 그 친구와 함께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얘기를 해서 룸메이트와 관계가 안 좋아지면 남은 반년이 너무 힘들 것 같고, 그렇다고 지금 이렇게 지내자니 분통이 터지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진_픽셀

 

A) 진료 대기실에 피곤해 보이는 사람이 화를 내고 있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억울해하고 있다면 코골이 문제로 다투고 계실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코골이 문제가 참 묘한 게, 정작 코를 고는 사람은 자기가 코를 고는지도 모르고 불편하지도 않지만, 같이 자는 사람은 너무 힘이 든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노력해야 한다는 점도 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죠.

내가 불편한 게 하나도 없는데, 같이 자는 사람을 위해서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까요.

코골이를 치료하면 본인의 건강도 좋아지지만, 본인 건강이 좋아지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깐 자신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또 하나가 있는데요, 그건 바로 같이 자는 사람이 이 상황을 꾹꾹 참다가 폭파시키기 때문입니다.

코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한데, 이미 인내심이 없는 상태에서 치료를 받으러 오면 그 시간을 기다려주기가 어렵죠.

그러니 질문자 분께서는, 개강하기 전에 친구를 만나셔서 얘기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 듣는 얘기라면 그 친구가 당황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본인의 문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나, 이전에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던 사람에게 불평을 들었을 테니까요.

새벽에 잠을 자는 것도 사실 그분의 특성이 아니라, 질문자 분을 배려해서 그랬을 가능성도 있죠. 일단 잠을 잘 수는 있게요.

 

“남은 기간 동안 너와 잘 지내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우리 코골이에 대해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대화를 시작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비난할 의도가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미리 말해놓으면, 상대방도 더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을 거예요.

상대방의 반응이 다소 공격적일 수는 있어요.

당혹감, 또는 이전에 같은 문제로 룸메이트와 싸웠던 적이 있다면 더 그럴 수도 있죠.

나름의 노력을 해봤었는데, 모두 실패했었다면 더 예민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어요.

 

사진_픽셀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알려드릴게요.

먼저, 룸메이트와 일정을 공유하는 게 필요해요.

누가 언제 방에서 자는지 일정을 공유하면,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언제 받을지 예측할 수 있죠.

룸메이트는 질문자 분이 방에서 자지 않을 때, 자신이 자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고, 질문자 분은 룸메이트가 방에서 잠을 잘 때 저녁 일정을 잡을 수도 있겠죠.

또 시험이나 면접 같은 중요한 일정도 공유하고, 서로 합의하에 방에서 자는 사람을 정하는 방법도 있어요.

 

지금까지는 질문자 분이 모든 일정을 희생하셨죠.

희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이 내가 희생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문제예요.

질문자 분 입장에서는 억울함이 더 커지고, 상대방은 미안함이 더 커지게 되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관계는 불편해져요.

 

학생이 할 수 있는, 코골이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이어트와 금주예요.

돈이 많이 들지 않죠.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알려줄 수도 있어요.

 

분명히 상황이 좀 억울하실 거예요.

‘내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상대방에게 다이어트나 금주를 하라고 강요도 못하나요?’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친구도 코를 의도적으로 고는 것은 아니에요.

심지어 금주를 하거나 살을 빼더라도 코를 골수도 있어요.

 

이렇게 인생에서,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이 있거나, 책임이 전혀 없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일어나죠.

그렇기 때문에 갈등을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필요해요.

2학기는 ‘갈등 해결’이라는 과목을 하나 더 수강한다고 생각하시고, 부딪혀 보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중요한 일이 없다면요.

이 과목을 이수하시는 것이, 앞으로 창창한 헌내기 질문자 분의 인생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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