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송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중학교 2학년 수인이는 요즘 모든 일이 다 지루합니다. 학교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친해지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너는 존재감이 없어!’라는 말을 같은 반 아이에게 듣고 나서는 화도 났지만, 같이 안 놀면 그만이겠거니 하고 더 이상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만 예쁘게 바라봐주시는 것 같아서 수업을 듣기가 더 싫어집니다. 수행평가는 어찌나 많이 있는지, 왜 이렇게 평가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수행 평가 준비를 안 하기로 결정을 하게 됩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 아빠와 저녁을 먹을 때에는 성적, 진로 문제가 나올까 봐 웬만하면 길게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수인이 어머님은 아이가 어렸을 때와 달리 말수도 적어지고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되어 ‘집에 오면 잘 해줘야지!’라고 결심을 하십니다. 하지만 수인이가 집에 와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게임에 쓸 현금이 필요하다고 하자 어머니는 슬금슬금 화가 나기 시작하십니다. ‘내가 부족하게 해 준 것 없고 이만큼 기다려준 것도 어딘데, 제가 일부러 나에게 반항하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잘 해 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십니다.

수인이 아버님은 아이가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약한 것 같아 답답해지시고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참으십니다.
 

사진_픽셀


그러던 어느 날, 수인이가 부모님께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학교에 가는 의미가 없고 시간 낭비인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부모님은 수인의 말을 듣고 날벼락을 맞은 듯 당황하십니다.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하며 수인이를 달래보기도 하고 ‘원하는 것이 뭐니.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라고 따져보기도 하셨습니다. 결국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결론 하에 부모님과 수인이는 저를 찾아왔습니다.

 

처음 만난 수인이는 주변 상황을 받아들이고 수용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어려운 아이였습니다. 내가 속한 환경에서 부정적인 부분을 더 크게 보고 쉽게 결론을 내리며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편이 아닌 것 같고 좋은 의도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오해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껏 주변에서 하라는 대로 했는데 잘 된 것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우리나라 교육은 너무 주입식이에요. 저는 제가 알고 싶은 것을 배우고 싶어요.”
“공부 잘해도 나중에 힘들게 사는 사람들 보면 공부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저는 돈을 어느 정도 벌고 나중에 편하게 살고 싶어요.”
“이미 공부 잘하는 아이는 정해져 있으니 저는 이번 생은 글렀어요.”

 

수인이의 나이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자주적 정체성‘을 획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인이는 자신이 느끼는 것이 상황에 걸맞은 감정인지 혼란스럽고, 주변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확신감이 없어 자꾸 눈치를 보게 되고 무기력해져 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니고 미래를 걱정하다 보면 불안해지는 데 주변에 발을 맞추기도 힘들고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괜찮은 건지 주변으로부터 이해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앞으로 잘 조절하면서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확신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수인이가 넌지시 부모님께 이러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이야기하면 ‘왜 그렇게 안 좋게만 생각하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며 이때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하나 막막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노력을 조금 했다가 안 되면 쉽게 포기하고, 화나는 감정을 참다가 괜히 심술을 부리기도 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이로 인해 부모님과 수인이의 사이가 점차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진_픽셀


수인이, 부모님과 저는 수인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수인이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함께 하였습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과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환경 사이에서 불안하고 막막하게 느끼는 감정이 당연하다는 것을 수인이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적이지 않는 상황에서 수인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다룰 줄 아는 방법에 대해서 부모님과 같이 고민하였습니다. 아이의 미래를 만들어 줄 수 없어 불안한 부모님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느끼고 표현하시도록 하였습니다. 수인이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해보며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 매우 위안이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잡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새삼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부모님이 아이가 당장 무엇을 하는 게 맞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청소년기 아이에게는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현재 자신의 상황을 인정해주고 이를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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