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사랑한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정신의학신문 : 송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 그대를 생각함은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제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깨달은 내 사랑을 한없이 잇닿는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중략)

- 황동규 시인 ‘즐거운 편지’ 중

 

사랑을 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 시인의 말처럼 상대를 오랫동안 묵묵히 그저 바라보는 시선과 기다림이 아닐까 합니다.

남녀의 사랑은 물론, 부모와 자녀의 사랑 또한 이는 예외일 수 없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아이들 양육과 관련하여 상담을 진행하면서 부모님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내 아이의 반응, 말, 행동이 정상적인지’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은 아이가 생활 속에서 어려움을 표현하면 부모가 바로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십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며 감정을 느끼고 이를 자연스럽게 표현합니다.

어린 아이일수록 모든 것이 처음이고 그에 대한 감정, 느낌도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아이는 자신이 경험한 것이 안전한 것인지, 자연스러운 것인지를 부모로부터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또 부모의 반응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을 증가시키기도 하고 그만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로부터 안정감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데 부모님이 아이 반응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가 공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한글을 쓰는 것을 힘들어해요.

힘들어 하면 시키지 말아야할까요?

뭐라고 이야기를 해 줄까요?

유치원을 바꿔야 할까요?

 

6세까지 어린이이집을 다니던 A군은 7세가 되면서 병설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기를 싫어하고 집에서도 짜증이 늘게 되었다고 합니다.

A군의 어머님은 아이가 이전과 다른 감정, 반응을 보이자 당황하셨고 어찌할 바를 모르셨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엄마, 나 숙제하기 싫어. 이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 갈래.’라고 이야기할 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매우 난감하셨다고 합니다.

 

A군은 학습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며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이러한 감정에 대해 엄마에게 확인받고 공감받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아이가 부정적인 정서를 느끼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시게 되고 자신의 양육방법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셨다고 합니다.

또 바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하십니다.

 

어머님은 일단 해결책으로 유치원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여 ‘아이에게 너무 스트레스 주지 않으셨으면 해요’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왠지 내 아이가 다른 대우를 받거나 또래 아이보다 뒤처질까봐 다시 불안해졌고, 결국 집에서 아이를 붙잡고 한글학습을 시키다가 ‘너는 왜 엄마 말을 안 들어!’하고 소리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후 아이는 유치원 수업시간에 책상 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짜증부리는 횟수가 더 늘어났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언어, 인지발달이 정상적인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라면 연령에 맞는 과제 수행에 익숙해지기 위해 어느 정도의 어려움을 거치는 것이 당연합니다.

7세가 되면 유치원에서 착석해서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늘어나게 되고 아이들은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8세부터의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이러한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됩니다.

아이의 기질 및 성향에 따라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정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지만 부모가 적절히 감정을 읽어주고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필요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표현하는 감정의 메시지를 읽고 세심하게 반응해주어야 하며 부정적인 정서를 편안하게 해소시키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앉아서 글을 쓰는 것 보다 친구들과 놀고 싶구나. 

아직은 한글쓰기가 어렵구나. 

처음이라 그럴 수 있어.

한글시간이 끝나고 난 뒤 자유놀이시간에 친구들과 무엇을 하고 놀면 더 재미있을까?

엄마가 조금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

 

A군의 어머님은 아이의 반응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상담을 통해 확인받고 스스로 불안해하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A군 또한 자신의 감정을 엄마에게 확인받고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힘들면 엄마한테 이야기하고 나서 기분이 나아지고 다시 유치원 생활을 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A군에게는 한글학습에 적응하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힘들고 싫은 마음을 보이는 기간도 어느 정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엄마가 아이의 적응을 기다려주고 인내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아이마다 적응에 필요한 기간이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마이클 아이건은 아이가 ‘일차적 정상성’을 느끼기 위해 부모의 수용과 사랑을 받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살아있는 존재임을 느끼기 위해, 자신의 신체 혹은 정서가 정상적이라는 느낌을 부모로부터 받아야합니다.

아이가 겪는 적응의 어려움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부모의 불안, 냉담, 몰이해로 인해 아이의 ‘일차적 정상성’이 상처받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끊임없이 감정적 자극을 받으며 내적 불편감을 경험하는 과정입니다.

그 안에서 부모 역할에 의구심과 불안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살아있는 건강한 존재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양육과 동반된 감정을 편안히 처리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그 순간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황동규 시인의 시에서 말하는 기다림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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