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걱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걱정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라도, 한 발짝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두 그 나름의 걱정이 있게 마련입니다. 오죽하면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마야문명의 발상지인 과테말라 고산지대의 인디언들은 예로부터 걱정 인형이라는 것을 만들어왔다고 합니다. 걱정이나 두려움으로 아이들이 잠을 못 이루거나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대비해 인형을 주면서 인형에게 걱정거리를 이야기하고 베개 머리맡에 두고 자도록 한 것이죠. 그러면 아이가 자는 동안 인형이 대신 걱정을 하고 아이는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으리라고 안심시키면서요. 그 후로 걱정 인형은 세계 곳곳에서 불안과 걱정을 덜어주는 존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한 보험사 광고에 걱정 인형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가 대신 걱정을 해줬으면, 혹은 걱정거리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마음 한구석에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소망과는 별개로 걱정은 시시때때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걱정과 불안은 뇌의 대상회(cyngulate gyrus)라는 영역과 관련 있습니다. 대상회는 전두엽 중간에 위치하며 뇌 변연계의 변연피질을 구성하고, 우울증, 불안, 조현병, 불안장애, 중독,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다양한 정신질환과 상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역은 뇌가 어떤 일에서 다른 일로 주의를 전환하고 가능한 여러 선택지를 고려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또, 안정감이나 안도감을 느끼고, 인지적 융통성을 갖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대상회가 잘 기능할 때 우리는 상황에 맞는 생각과 판단을 내리고, 유연하게 사고하며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상회가 손상되거나 비정상적으로 과잉 활동할 때는 과도한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게 됩니다. 인지적 융통성이 줄어들면서 어느 한 대상으로부터 다른 것으로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 대인관계에서도 협동적인 방식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계속 같은 걱정에 몰두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또, 예전에 겪었던 부정적인 일들이나 상황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안 좋은 상상을 하거나 강박적인 걱정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걱정과 관련된 뇌 영역과 함께 그동안 학계에서는 걱정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에 관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걱정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관리할지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걱정이 갖는 이점 또는 걱정과 뇌의 관계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 의료센터 정신의학과 제레미 코플란 교수는 연구를 통해 지속적인 불안과 긴장을 경험하는 불안장애를 가진 이들이 지능지수(IQ)가 높고 커뮤니케이션을 관장하는 뇌 영역 활동 지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습니다. 물론 이 연구는 불안장애를 가진 남녀 26명과 건강한 일반인 18명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연구이기 때문에 후속 연구를 통한 지속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걱정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만 집중했던 기존 연구와 달리 걱정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는 필요하며, 위험을 대비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안겨주었습니다. 코플란 교수는 연구 결과와 함께 2008년 미국 부동산 붕괴 사태에서처럼 걱정하지 않는 무조건적 낙관적 태도가 사회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유사하게 프랑스 건강의학연구소의 마르와 엘 자인 박사 연구팀 역시 걱정이 갖는 이점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해당 연구에서는 실험 대상자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제시한 후 뇌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그 결과 평소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사진을 경고신호로 받아들이고 이를 감각회로로부터 동력회로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반면 평소 걱정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경고신호가 감각회로에 머무는 데 그쳤습니다. 이는 걱정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 위험 상황을 인지한 후 도망갈지 또는 싸울지의 반응을 결정하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위험 상황이 닥쳤을 때 그것을 해석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며,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실행에 옮기는 속도 역시 빠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연구팀은 걱정이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육감(sixth sense)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지나친 걱정은 우리의 몸과 생각, 마음을 경직되게 하고 현재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합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고 무사안일 천하태평하면 다가오는 위협이나 미래의 일들을 대비하지 못한 채 맹목적인 긍정성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걱정과 관련된 다양한 뇌과학 분야의 연구들은 이런 걱정의 장단점을 실증적인 데이터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외면한 채 장밋빛 미래만을 꿈꾸는 비현실적 인식을 갖지 않으면서도, 너무 지나친 걱정과 불안으로 현재가 주는 기쁨을 놓치지 않도록 균형감 있는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걱정이 삶을 잠식하지 않고 적당한 긴장감과 활력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현명하고 건강하게 걱정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전형진 원장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