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 

 

사연) 안녕하세요. 23살 대학생입니다. 가족관계와 관련해 고민이 있어 사연 남깁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고등학생이 된 후 5년간 암 투병을 하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와는 부모님 이혼 후 계속 떨어져 살았지만, 학교 방학이나 휴일이 생겼을 때 항상 시간을 같이 보내며 좋은 기억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와의 시간을 떠올려 보면 ‘고아원에 보내버린다, 아빠한테 생활비 달라고 요구해라, 칼로 찔러 버린다’ 등 힘든 기억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렸던 저는 부모님을, 어머니를 참 많이 미워했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된 후, 지금의 저는 어린 시절 동안 부모님이 저와 동생을 위해 최선의 사랑을 쏟아 주셨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부모님을 이해도 해 보고 혼자 용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20살이 되었을 때부터 어머니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각종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현재도 3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 입학 후부터 타지 생활을 시작했고, 경제적 독립과 함께 경제적 부담으로 여유 없는 일상을 보내며 21살 여름에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약 1년간의 약물치료와 주위 사람들의 사랑으로 저는 공황장애를 극복했고, 마음이 튼튼해졌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저에게 주어지는 상황과 부담이 너무 무겁습니다.

공황장애 진단받았을 당시 학교 수업을 듣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던 저는 휴학을 결심했지만, 어머니께서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는 것을 원하셔서 휴학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지금 아르바이트 하는 것도,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것도 모두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냥 이번 1년이 무사히 지나가고, 취업하게 되면 온전히 제 삶에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하며 기대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저로 온전히 살아가고 싶은데 계속 어머니 때문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느낌이 들어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어머니께는 정말 미안하지만 저는 가끔씩 어머니를 감당하는 것이 부담되고 힘든 것 같아요. 그냥 제가 저에게 주어진 상황을 계속 어머니 탓으로 돌리는 느낌도 들고요. 

어머니가 종종 술을 마신 후 전화해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듣기 싫고 짜증이 나요. 그리고 감정적으로 힘들 때마다 저에게 조언을 구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똑같이 부정적인 감정이 들고요. 아직 제가 어머니를 제대로 용서하지 않은 걸까요? 

부모님과 사이좋은 주변 사람들을 보거나 아르바이트 하지 않고 부모님 지원으로 대학 생활을 여유 있게 보내는 친구들을 볼 때면 부럽기도 하고, 제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어요. 저는 저를 충분히 사랑하고 싶고, 어머니에게도 충분한 기댐을 드리고 싶은데... 마음이 제멋대로 되지 않아 이럴 때면 조금 힘든 것 같습니다. 제가 저로 살아가려면, 저를 온전히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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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을 읽으며 그동안 사연자님께서 참 열심히, 성실하게 삶을 살아오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이 어린 사연자님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변화였을 테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으신 상황에서 많은 부담을 느끼셨을 텐데 모든 순간에 현실에 충실하고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고자 최선을 다해 오신 노력이 엿보입니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부담감과 원망, 짜증과 같은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끼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러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적인 예로 들어 주셨지만 고아원에 버리겠다거나 칼로 찔러버린다는 말은 어린 사연자님께 버려짐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인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말입니다.

아버지께 생활비를 달라고 요구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역시 사연자님이 어떤 심정이셨을지 참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서적, 언어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말들입니다. 그랬기에 유년 시절 부모님과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컸던 것이겠지요.

성인이 된 후부터 사연자님은 이런 원망과 미움을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바꾸기 위해 부단히 애써 오신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용서하려고 한 것이지요. ‘부모’로서만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사연자님의 노력이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어머니께 도움이 되고자 아르바이트도 하고, 여러모로 참 많이 애써 왔습니다. 

 

어떤 부모든 완벽할 수 없고, 부족한 부모였을지언정 본인들의 기준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자세는 부모와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연자님의 경우 그런 노력이 조금 지나친 측면이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 특히 어머니로부터 충분히 받지 못했던 사랑과 인정을 성인이 된 후 어머니께 경제적, 정서적인 부분에서 힘이 되어 드림으로써 받고자 하는 것은 아닐지요. 

어린 시절에는 기대는 존재기만 했던 부모님이 자녀가 성인이 되고, 반대로 부모님은 연세가 들고 노쇠해짐에 따라 어느 순간 자녀가 부모님의 보호자 역할을 하거나 울타리가 되어 드리는 때가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일정 부분에서는 부모님은 삶의 조언자, 멘토 같은 역할을 해 주실 수 있습니다. 정신적, 정서적으로 힘들고 지칠 때 돌아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나무 그늘 같은 역할 말이지요. 

그런데 사연자님의 경우 어머니와 부모 자녀 역할이 역전된 듯한 양상이 보입니다. 사연자님이 경제적인 부분에서 노력하면서 동시에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힘들 때 조언해 드리는 역할까지 병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경제적인 부분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사연자님께 의존적인 부분이 있으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연자님은 이런 어머니의 물질적, 정신적 측면을 채워 드리면서 본인의 존재 가치를 어머니께 끊임없이 입증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나는 성인이 되었고,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으니 내가 힘이 되어 드리고 원하시는 것은 다 해 드려야 한다.’라는 압박감 속에 자신을 옭아매고 있지는 않은지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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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말미에서 어머니를 제대로 용서하지 않은 것인지 질문해 주셨는데, 이 질문 속에는 '어머니를 용서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사연자님께 상처 주었던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해 보려고 애써 오셨던 그간의 노력과 함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미움의 갈등 속에서 혼란함을 느끼고 계신 것이지요.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꼭 어머니를 용서해야 하는 것일까요? 또, 어머니를 용서한다는 것이 어머니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고 어머니를 책임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까요? 

사연자님은 어머니를 용서해야 하며, 용서한다는 것은 곧 앞으로도 어머니가 원하는 것을 다 해드리고 책임져야 함을 뜻한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연 제목에는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 싶다고 하셨지만, 마지막에는 본인을 사랑하면서 어머니께도 충분한 기댐을 드리고 싶다고 남겨 주신 것입니다. 

부모님, 어머니를 한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그분들이 지나온 세월과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성숙한 자세입니다. 어머니가 그때 그렇게 했던 이유를 다양한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해 보려는 노력은 사연자님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와 공감이 용서로 이어지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해와 공감이 곧바로 용서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며, 용서한 것 같지만 때때로 분노나 미움, 원망이 느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용서는 한 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적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더라도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질 수 있고, 그럴 때 후퇴했다거나 용서하지 못했다고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또,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는 부담도 내려놓으시면 좋겠습니다. 용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마음에서 아직 용서되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용서가 곧 어머니의 모든 요구나 필요를 충족해 주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용서하기 전에도, 또 용서한 뒤에도 적당히 건강한 거리와 경계를 두며 각자의 삶을 책임지며,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사연자님과 어머니 모두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께 경제적, 정신적으로 채워드리느라 사연자님의 그릇이 모두 바닥나면 사연자님도 지치고, 본인의 삶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허무함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어머니 역시 사연자님께 더 의존적이 되실 수 있고요. 

 

어머니의 요구에 휴학하지 못하고 무리해서 복학하며 일하고 있으시다는 부분에서 삶의 주도권을 어머니께 내어드린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성인으로서 경제적, 정신적, 물리적 독립을 이뤄 가시는 중요한 시기에 있는 만큼, 앞으로 어머니의 의지보다는 사연자님의 내면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시면서,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꾸려 가셨으면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와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럴 때 본인의 감정과 생각, 판단, 의지에 조금 더 확신을 갖고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하시고, 공황장애 치료도 열심히 받으셨고, 학업도 열심히 하시는 모습 등을 볼 때 사연자님께는 충분히 그만한 능력과 자질이 있습니다. 본인의 자원과 강점을 늘 기억하시면서 제목처럼 앞으로는 사연자님을 위해 온전히 살아가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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