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둡고 길었던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햇볕과 코끝을 간지럽히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바로 봄입니다. 낮의 길이가 짧아져 해를 보기도 힘들고 추워서 야외활동이 어려웠던 겨울과 달리 봄에는 해도 길어지고 기온도 적당해 나들이하기에 참 좋습니다.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제각기 꽃망울을 터트리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덩달아 같이 기분이 좋아집니다. 특별히 좋은 일이 없어도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계절이죠.
그래서인지, 봄이 되면 겨울에 느꼈던 우울감이 완화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듯합니다. 피어나는 꽃들, 짝짓기를 준비하는 새들을 보며 나도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듭니다. 살짝 기분이 들뜨는 듯한 느낌과 함께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꿈꾸기도 하죠.
그런데 이렇게 단순히 기분이 상쾌해지고 기운이 솟는 것을 넘어서 양극성 장애와 같은 임상적 증상이 더 심해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양극성 장애는 ‘조울증’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우울 삽화와 조증 또는 조증보다 증상이 조금 더 가벼운 경조증 삽화가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개인에 따라 우울 삽화 없이 조증 삽화만 경험하기도 합니다.
물론 봄이 직접적으로 양극성 장애를 유발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봄철 늘어난 일조량이 조증 또는 경조증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데 영향을 줄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가정은 실증적인 연구와 데이터를 통한 검증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일조량이 줄어들면 세로토닌이 줄어들고 그로 인해 우울증이 유발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 때, 반대로 일조량이 증가하는 봄철에 세로토닌 분비가 증가하고 그것이 조증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임상 장면에서 환자들을 마주하다 보면 유독 봄철에 조증 환자분들을 많이 만나곤 합니다.
조증 삽화 동안에는 자존감이 과도하게 올라가고 거대한 자아상으로 인해 무슨 일이든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듭니다. 그래서 무리한 투자, 사업 계획, 무분별한 소비, 문란한 성적 활동처럼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활동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말과 행동, 생각이 비약적인 경향을 나타내며, 목표 지향적인 활동이 지나치게 많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모습들은 언뜻 보면 활력 넘치고 긍정적, 생산적, 창의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며칠씩 잠자지 않고도 철인처럼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니, 멋지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활동들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본인에게나 주변 사람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무리한 사업 투자나 과소비로 경제적 손해를 입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조증 또는 경조증을 동반하는 양극성 장애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치료 방법에는 리튬을 비롯한 기분 안정제, 항불안제, 항발작제, 항우울제, 항정신병제 등을 활용한 약물치료, 양극성 장애의 원인이 된 심리사회적 요인을 탐색하고 그에 대한 접근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집단 심리치료, 환각이나 환청을 비롯한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나거나 자신과 타인에게 위협이 될 때 주로 이루어지는 입원 치료, 우울이나 조증 삽화의 재발을 방지하고 전반적인 삶의 질과 기능 회복을 목표로 하는 유지치료, 약물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을 때 이루어지는 전기경련요법(ECT), 신경자극술(VNS), 경두개자기자극(TMS) 등이 있습니다.
양극성 장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처럼 다양한 요인이 있으며, 이들 사이의 복잡한 상호 작용으로 발병되기 때문에 단순히 일조량이나 계절의 변화만으로 증상 악화에 전적인 영향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봄철에 느끼는 기분 좋은 설렘이나 좋은 상상이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서 기존에 있던 양극성 장애가 더 심화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경조증이나 조증 삽화를 의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어진다면 반드시 전문가를 통한 개입이 필요합니다.
또, 양극성 장애의 특성상 재발이 많이 되고 장기간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환자 본인과 주변에서 모두 분명하게 인지해야 합니다. 간혹 약을 복용하다가 증상이 좋아진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거나 복용량을 줄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증상을 악화시키거나 치료 기간을 더욱 길어지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으며, 약 복용이나 갑작스러운 복용량 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약의 복용량과 복용 시기 및 기간에 관해서는 전문가와 상의하고 전문가 소견에 따른 복용법 준수가 필수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봄꽃과 함께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이 기지개를 펴고 활짝 피어날 때, 우리는 행복감과 기대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런 설렘이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들뜸으로 나타나거나 반대로 한순간 땅속으로 꺼져 버리는 듯한 우울감으로 이어진다면 꼭 전문가를 통해 필요한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모두 따뜻하고 희망찬 봄날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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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조언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