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직장생활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2년간 첫 직장 생활을 하며 몸은 바쁜데 나는 죽어 있는 껍데기 같고, 사람들 눈치 보고… 그런 것들이 저를 많이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매일이 물에 흠뻑 젖은 사람처럼 힘겨워 우울증약도 복용했습니다.
유난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처음 입사하자마자 회사 구내식당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밥 먹으러 오며 수다 떠는 모습이 마치 로봇같이 느껴져 소름이 돋았습니다. 왠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확실한 건 전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주변 사람들은 ‘사회생활이 원래 힘든 거지.’, ‘그냥 돈 벌러 가는 거지.’, ‘내 인생은 남는 시간에 즐기면 돼.’, ‘회사 다니기 싫다, 사업이나 할래.’ 하면서 주말엔 핫플만 찾아다닙니다. 그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평범하게 열심히 잘 사는 것 같아 한땐 부럽기도 했습니다.
다만, 저는 그 평범함과 동떨어져 있었거든요. 저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 싶었고, 내가 하고 싶은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루하루 버티다 퇴사를 했습니다. 대책은 없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무언가를 생각하기엔 제 자신이 너무 벅찼습니다.
‘내가 사회 부적응자일까? 뭐가 문제일까? 난….’ 이런 생각들로 매일을 지내다 몇 달 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습니다. 전공과 아예 다른 분야에 빠져들어 개인사업을 시작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이제 막 시작 단계지만, ‘이 길이 내 길이다.’라는 생각이 살면서 처음으로 강하게 들었고, 가족들에게 진지하게 제 진로 계획을 전달했습니다. 잘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처음엔 걱정과 달리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습니다. 현재 매일 사업 구상을 하며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인데,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눈치입니다. 반신반의하는 느낌으로 “취미로 해 보는 건 어떻겠냐?”, “그래도 직장이 있는 게 낫지 않겠냐?” 이런 말씀들을 흘리시며 입사 지원이라도 해 보라십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너무 큰 스트레스입니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가지만, 제 뜻을 분명히 밝혔고 직장생활이 힘들었다는 것도 털어놓고, 정신과까지 다닌 것을 아시는데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는데 말이죠.
물론 제가 사업 성과를 내고 생활을 잘 유지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전까지 멘탈을 잘 잡으려면 주변 얘기에 휘둘리지도 않고 줏대 있게 나아가야 하는데, 가끔 저마저도 ‘나 혹시 문제 있나?’, ‘히키코모리가 체질인가?’, ‘정말 사회 부적응자인가’? 하는 질문들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지금 저는 사업 준비를 하며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합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기쁩니다.
그냥 답답한데 주변에는 저 같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아 두서없이 글을 적어 봅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저도 남들과 같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제 자신이 왠지 위축되고 당당하지 못합니다. 그냥 남들처럼 억지로라도 회사를 다녀야 했던 게 맞는 걸까요? 아니, 아무리 좋은 곳을 들어가더라도 저는 또다시 우울에 빠질 것 같습니다. 요즘 조금 혼란스러워 갈피를 잡기가 힘드네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 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첫 사회생활이었던 2년간의 직장 생활에서 나름의 성취감이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마치 영혼은 비어 있고 몸만 바삐 움직이는 사람처럼 지내 오셨던 시간이 많이 버거우셨던 것 같습니다. 직장 생활의 어려움으로 인해 우울증약까지 복용하셨다고 하니 그 심적인 고통이 얼마나 크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사연자님께서 어떤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하시면서 어떤 부분 때문에 유독 마음이 힘들고 우울했는지 사연상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추측건대, 직장에서 하는 일에서 보람이나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직장 생활의 특성상 인간관계에서도 잘 처신하고, 눈치껏, 요령 있게 행동해야 하는 등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상당한 피로감을 경험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재미도, 의미도 찾을 수 없고, 맞지도 않는 조직 생활을 하루하루 버티듯 이어 나갈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신 것 같고요. 사연자님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사실 직장인을 비롯한 많은 직업인들이 일에서 보람이나 성취감을 느끼기보다 일이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피로감을 호소하며 일터로 나갑니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일, 의미 있는 일, 성취감을 느끼는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해 나간다는 분들도 계실 테고요.
어찌 됐든 일은, 우리의 삶에서 자립과 생존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중요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먹고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부분인 만큼, 생업을 유지하는 그 이상의 가치와 재미를 일에서 찾는 것 역시 의미가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도 직장 생활에서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일의 의미나 재미, 기쁨과 성취감을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일을 통해 찾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 하고 싶은 일을 찾으셨고, 현재 사업 준비를 하면서 하루하루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니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와중에 새로운 길에 막 도전하려는 자녀에 대해 걱정스러워하는 부모님의 말들이 사연자님께는 큰 스트레스와 압박감으로 다가오시는 듯합니다. 아마도 지금의 상황에서 사연자님께서 부모님께 듣고 싶은 말은 걱정 어린 말보다는 격려와 지지의 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사연자님의 부모님께서 자녀를 사랑하는 방식은, 혹시나 닥쳐올지 모를 인생의 풍파와 시련을 우리 자녀만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즉 자녀에 대한 사랑을 걱정으로 표현하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부모님께서 하시는 걱정의 말들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여기신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마음먹은 대로 흘려듣게 되지 않는다면, 지금 사연자님의 솔직한 심정을 부모님께 담담히 전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지금 부모님께 듣고 싶은 이야기는 우려 섞인 시선이나 걱정의 말보다는 지지와 격려라고 말이죠.”
사연을 통해서, 사연자님께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신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한탄만 하면서 허송세월하는 분이 아니라,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용기를 가지고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분이라는 것도 말이지요. 그러니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신뢰를 가지고 지금처럼 뚝심 있게 가고자 하는 길을 향해 나아가신다면 그날이 언제가 됐든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르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처음 시도해 보는 일에 처음부터 너무 큰 성공을 기대하거나 잘될 거라고 확신하기보다, 행여 기대했던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실패를 경험한다 해도 하나하나 배워 나간다는 마음으로 성공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또 끝까지 원하는 목표에 다가가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실패자’, ‘낙오자’라고 스스로를 자책하기보다 용기 있게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배움을 얻고 성장할 수 있었던 데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 그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혹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회복탄력성이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 실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합니다. 실패와 고난으로 인해 주눅이 들거나 포기하기보다 그러한 경험을 발판 삼아서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이를 통해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이들은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입니다.
사연자님께서 현재 준비하시는 사업을 현실에서 실행하면서 그 꿈을 펼쳐 나갈 때 안타깝게도 크고 작은 시련이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사업을 준비하시면서 사연자님의 회복탄력성을 키워 나가는 데도 신경을 쓰신다면, 차후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회복탄력성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회복탄력성을 구성하는 항목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① 스스로의 감정과 충동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자기 조절력, ② 주변 사람과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인관계력, ③ 긍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습관인 긍정성입니다.
사연자님의 내면에서 이 세 가지 영역을 어떻게 강화시켜 나감으로써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연자님의 부모님과의 관계를 통해 대인관계력에 대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부모님께서 사연자님이 하고자 하는 일에 반신반의하며 걱정하는 말들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하셨죠. 그런데 비단 이런 상황은 부모님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나와 다른 타인이 언제나 내가 듣고 싶은 말, 내가 바라는 행동대로만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이죠.
그럴 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보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더 이상 거기에 나의 마음과 에너지를 쏟지 않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부모님께 듣고 싶은 말, 원하는 바를 이야기해 보고 그래도 부모님의 태도에 변화가 없다면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이죠.
이렇게 다양한 관계에서 원치 않는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자신의 스트레스를 관리해 나갈지 생각해 보고 실천함으로써 대인관계력을 향상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조절력’이나 ‘긍정성’ 부분에 대해서도 숙고해 보실 수 있을 테고요.
또 사업을 하시다 보면 직장 생활처럼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함께 고민을 나누거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준비하시는 일과 관련된 카페나 모임 등을 찾아 활동하시면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도 얻고, 서로 지지하고 힘이 되어 주는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찾는 파랑새를 꼭 만나실 수 있기를, 저희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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