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20대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많이 싸우셔서(엄청 격하게) 초등학생 때 이혼하셨습니다 계속 아버지랑 지냈고, 어머니랑은 따로 지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랑 계속해서 연락은 하며 지냈습니다. 아버지랑 지낼 때 폭행을 많이 당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다 알아서 선생님들이 집으로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한테 연락해 얘기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네가 잘못했겠지.”, “네가 하는 짓을 보면 맞을 만하네.”였습니다 그래도 어릴 땐 어머니랑만 붙어 살았고 의지도 많이 했기에 수시로 연락하곤 했습니다. 

최근에 동생 학업 문제로 어머니랑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근데 이때까지 계속 저를 위해 희생한 것마냥, “네 성격이 너무 더러워서 진짜 힘들었다. 죽고 싶을 정도였다.”라고 동생과 저한테 계속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솔직히 해 준 것도 없으면서 왜 계속 말을 그런 식으로 하느냐.”면서 말대꾸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너 때문에 죽고 싶다. 너 때문에 살 수가 없다. 너랑 있는 게 나한텐 너무 불행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제가 언행이 거칠었던 건 맞지만, 집안이 가난해서 정말 지원을 하나도 못 받았습니다. 학원에도 다닌 적 없고요. 문제집도 돈이 없어서 못 샀습니다. 식비도 학교 급식 덕분에 배를 채울 수 있었고요. 전 어머니한테 계속 앙금이 있습니다. 뭔가 아무리 잘해 줘도 너무 싫고, 조금 더 저한테 한 일들을 자책했으면 좋겠고, 근데 빚 때문에 고생하는 건 또 싫고, 호강시켜 드리고 싶고, 돈 벌면 부모님한테 제일 먼저 다 해 주고 싶은데… 이런 마음은 뭘까요? 제가 패륜아인 걸까요? 

부모님께서 정말 죄책감을 느끼고, 저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근데 진짜 자살할까 봐 또 너무 걱정돼요. 그냥 제가 먼저 자살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제가 자살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엔 삶에 대한 애착이 너무 많아서 자살은 못하겠지만요. 어떻게 해야 나아질까요? 부모님이 아무리 말을 심하게 해도 저는 욱해서 말이 안 튀어 나가게 하고 싶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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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 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잦은 싸움과 부모님의 이혼. 그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와는 떨어져서 지내야 했고, 사연자님의 양육을 책임졌던 아버지로부터는 폭행까지 당하셨다고 하니 얼마나 두렵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 오셨을지 마음이 아픕니다. 

더욱이 아버지의 신체적 폭력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작은 위로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께 연락할 때마다 되돌아온 말은 따뜻한 위로나 부모로서 지켜 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 아닌, 작고 약한 어린아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사연자님에 대한 질책의 말, 가해자인 아버지를 옹호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듯한 언어폭력으로 사연자님의 상처를 후벼 파는 말들을 하셨다고 하니, 얼마나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셨을까요. 

어리고 연약한 그때의 사연자님께서 지금 제 곁에 계시다면, 두려움에 떨며 상처받은 작고 작은 그 아이를 꼭 안아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말도 꼭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 사연자님께 신체적인 폭행을 가하고, 어머니께서 이차적으로 언어폭력을 가한 것은 사연자님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부모님의 잘못이라고 말입니다. 세상에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맞을 만한 짓을 해서 맞았다.”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단언에는 애초에 그 명제가 성립되지 않는 명백한 오류가 존재합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보호해 주어야 할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는 것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되거나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폭력 행위입니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부모님의 폭력이 아직 끝나지 않고 현재에도 진행 중이라는 점입니다. 

현재 사연자님께서는 동생의 학업 문제로 인해 어릴 때 떨어져 살았던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된 상황이고, 어머니의 폭언은 멈추지 않고 여전히 사연자님을 향해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사연상으로는 사연자님과 어머니 사이에 날선 말들이 오가고, 그것이 주로 어머니께서 사연자님을 향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간혹 무척이나 예민하고 까다롭다거나 폭력적이고 반항적인 성향이 두드러지거나 부모를 통제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한 아이들의 경우에, 부모가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하고 대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할 때 서로 간의 소통이나 상호작용이 악순환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올려 주신 사연상으로 유추했을 때는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오히려 한창 어머니의 손길과 심리적 지지, 따뜻한 보살핌 등이 필요했을 시기에 어머니와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도 분리되어 있다시피 했고, 그런 부분에서 결핍감과 원망감, 속상함을 느낀 사연자님께서 이것을 표현했던 말들, “솔직히 해 준 것도 없으면서 왜 계속 말을 그런 식으로 하느냐.”라고 어머니께 이야기한 것은, 사연자님을 공격하는 어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방어, 솔직한 자기표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어머니께서 사연자님을 향해 성격이 안 좋다거나, “너랑 있는 게 나한텐 너무 불행이다.”, “너 때문에 죽고 싶다.”라며 폭언을 퍼붓는 것은, 사연자님께서 그런 말들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통스럽고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길 수 있어 우려스럽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사연자님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머니께서 사연자님을 향해 던지는 파괴적인 말들을 최대한 흡수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남도 아닌, 자녀와 함께 있는 게 불행하다고 말하는 부모님의 말을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불행을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어 누구든지 탓할 사람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고, 자신을 필요로 하지만 쉽게 등 돌릴 수 없는 혈육에게로 그 비난의 화살이 향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사연자님의 어머니를 불행에 빠뜨린 것은 결코 사연자님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어머니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어머니의 몫이고, 또 그 책임도 당연히 어머니 자신에게 있는 것이니까요. 자신의 인생이 불행한 것을 자녀인 사연자님의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근거도 없고, 성인으로서 또 부모로서 무척이나 무책임한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을 듯합니다.

 

사연자님께서도 이러한 어머니의 태도나 말들이 이치에 맞지 않고, 억울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자신의 잘못과 그로 인해 상처받은 사연자님의 마음을 알고 적어도 사연자님께 미안한 마음이라도 들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습니다. 최소한 부모님께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어야, 부모님을 덜 원망하고 미워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리 나를 힘들고 아프게 하는 부모님이라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사실, 스스로에게도 크나큰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데도 많은 심리적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마음 자체가 내 마음에 담기에는 심적인 고통감을 유발하는 감정이기 때문이죠.

더욱 안타까운 것은, 폭언을 쏟아 내는 어머니의 말들이 진심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 적어 주신 사연상에는 “뭔가 아무리 잘해 줘도 너무 싫고”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아마도 어머니께서는 사연자님과 같이 산 이후로 과거에 따로 살면서 챙겨 주지 못한 부분에 대한 죄책감이나 미안함으로 사연자님을 좀 더 잘 챙겨 주려고 하셨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도 떨어져 산 세월도 꽤 있다 보니 서로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고요. 어쨌든 행동으로나마 사연자님을 챙겨 주려고 하셨던 모습 속에서 사연자님을 향했던 모진 말들이 어머니의 진심은 아니었을 거라는 짐작도 가능케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자녀를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또 내 배로 나은 자식이라도 해도 되는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러한 무분별함으로 인해 내뱉은 독한 말들이 자녀인 사연자님께 큰 마음의 상처를 남기고, 이후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누차 말씀드리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가 하는 모든 행위나 말들이 정당화되거나 용인될 수는 없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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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자님께서는 어머니에 대해 양가감정을 느끼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양가감정이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같이 상충되고 공존할 수 없는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때로는 나에게 폭력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 내지만, 또 때로는 나를 걱정하거나 챙겨 주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사연자님의 마음은, 어머니에 대해 좋은 감정만 느끼기도, 또 나쁘게만 생각하기도 힘들셨을 것입니다. 

또한 어머니 자신의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자녀를 일관성 없이 대하는 모습에서 사연자님 역시 어머니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대해야 할지 무척이나 혼란스러우셨을 테지요.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이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사연자님이 패륜아여서도, 이상해서도,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연자님의 감정임을 인식하고 인정해 주세요. ‘이런 마음이 들 수도 있지.’ 하고 말이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인데.’ 혹은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면, 그때는 어머니도 나를 인정해 주겠지.’라는 어머니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엿보입니다. 또 그렇게 했을 때 ‘너 때문에 불행하다.’가 아닌, ‘너 때문에 행복하다.’라는 말을 듣고 싶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부모가 자녀에게 ‘네가 이러이러해서, 혹은 내게 뭔가를 해 줘서 너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조건적인 애정을 내보이거나 그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너는 그냥 너니까, 혹은 네가 나에게 뭔가를 해 주지 않아도 너를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사랑하고 인정한다.’는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여 주고,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이 바로 부모가 자녀에게 주어야 할 사랑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너무 부모님께 잘해 드려야 한다거나, 부모님이 아무리 심한 말을 해도 참아야 한다고,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부모님을 호강시켜 주고, 행복하게 해 줘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연자님께서 부모님께 할 수 있는 만큼만, 마음이 허락하고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자녀로서 해야 할 일을 하시고, 사연자님의 인생, 사연자님의 평안, 사연자님의 행복에 집중하시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그래야 이후에 사연자님의 인생에서 힘든 일이나 시련이 닥쳤을 때도 ‘부모님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됐잖아. 혹은 너무 힘들어졌잖아.’라고 부모님을 향한 원망과 책임으로 돌리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연자님 부모님의 삶과 행복, 책임 등이 그들의 것이듯이, 사연자님의 인생 역시 성인이 된 후로는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남겨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모님의 폭언이 지속된다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솔직한 마음을 단호하게 표현하세요. 그런 말은 사연자님께 마음에 큰 상처가 되니,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말이죠. 그래도 계속 안 좋은 말들을 쏟아 낸다면, 그 자리를 벗어나서 부모님과 공간적으로 떨어져 계시기를 권유드립니다. 

그래도 이러한 일들이 계속 반복된다면, 차차 독립을 준비하셔서 물리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독립함으로써 부모님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방법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으니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과거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부분을 잘 살펴보시고, 그 부분이 지금 사연자님의 인생이나 마음에, 또 부모님과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되짚어 보는 시간도 한번쯤 가져 보신다면 좋겠습니다. 행여 인정과 애정에 대한 결핍감이 그것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어 부모님께 과도하게 효도해야 한다거나,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마치 사연자님께서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관계의 역전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도 말이죠.

혼자서 이 부분을 다루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상담가와 같은 전문가와 함께 이 문제를 다루어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아울러 어머니의 자살과 관련한 발언이 그냥 어쩌다가 말로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이런 말들이 반복되거나 일말의 행동화 가능성이 엿보인다면, 어머니께도 이 부분과 관련해서 전문가와의 상담을 권해드립니다.  

다행히 사연자님께서는 삶에 대한 애착이 많으신 분 같습니다. 이제는 사연자님의 그릇에 담긴, 원래부터 사연자님의 것이 아니었던 어딘가 악취가 나고, 사연자님의 건강을 위협하는 불량식품 들은 점점 비워 내고,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들로 채우면서 사연자님의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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