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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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삶에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살아가기도 하고, 익숙한 길을 걷거나 늘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반복은 때로는 우리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줍니다. 하지만 어떤 반복은 우리를 깊은 절망과 고통 속에 가두기도 합니다. 바로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 여기에 해당하는데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반복강박을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끊임없이 재연하려는 경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안 좋은 일이 반복되네'라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서, 마치 우리 무의식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혹은 이해하기 위해 그 상황을 일부러 되풀이하려 애쓰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입니다.

 반복강박은 우리의 삶의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반복강박은 대인관계 속에서 흔히 나타나는데요. A씨 사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A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비난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성인이 된 A씨는 늘 왠지 모르게 자신을 무시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끌렸습니다. 연애할 때마다 감정적으로 상처를 주고, 존중해주지 않는 상대방과 관계를 맺고는 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나는 늘 이런 사람들만 만나는 걸까?"라고 자책했습니다. 이런 반복된 패턴에 대해 의아해하면서도 원인을 알지 못해서 오랫동안 속앓이를 했는데요. 심리치료를 받으며 A씨는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재연하며 그 관계 속에서라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지속적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반복강박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비슷한 상황을 반복하며 무의식적으로 '이번에는 다를 거야'라는 기대를 품게 만듭니다.

 반복강박은 때로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폭식하거나, 건강에 해로운 음주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일시적으로 불안을 해소해 주지만, 결국 더 큰 죄책감과 후회를 낳고 다음 스트레스 상황에서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스트레스 상황과 연결된 행동을 반복하며, 그 고통의 감정을 해소하려 하지만 결국 더 큰 자기 파괴의 굴레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왜 반복강박에 빠지는 걸까요? 반복강박의 근본적인 원인대부분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미해결 과제'에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나 트라우마는 우리의 무의식에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트라우마를 경험할 당시에는 너무 고통스러워 감당할 수 없기에 그 기억을 억압하고 회피합니다. 그러나 이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 속에 남아, 우리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비슷한 상황을 유도하게끔 합니다.

  이는 마치 깨진 조각을 다시 맞추려는 노력과도 같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아픈 기억을 마주하고 이해하려 하는 것이죠. 그러나 스스로는 그 과정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된다'라고 느낄 뿐입니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반복은 결국 우리를 지치게 하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게 만듭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이런 반복강박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익숙하고 안전하다‘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입니다.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라는 느낌을 막연하게 받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힘든 선택이 될 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 방향을 택하게 됩니다.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익숙함의 함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반복강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과정은 물론 단기간에,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반복강박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반복되는 패턴을 인식하고 인정하기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내 삶에 어떤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나는 왜 늘 이런 사람과 관계를 맺지?", "나는 왜 힘들 때마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세요. 이 패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입니다. 일기를 쓰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도움을 요청하여 나의 패턴을 함께 파악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2. 과거의 상처와 직면하고 이해하기

 반복강박은 과거의 미해결 과제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과거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직면하고 이해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기에, 혼자서 감당하기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심리 상담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안전한 환경에서 다시 탐색하고, 당시의 감정을 해소하는 과정을 거치면 반복강박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3. 과거와 현재를 분리해서 바라보기

 관계나 상황에서 과거의 나, 예전의 환경이 여전히 지금의 내 삶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세요. 지금 내 감정이 지금의 현실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과거에서 비롯된 감정이 덧씌워진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는 연습이 도움이 됩니다.

4. 새로운 선택을 의식적으로 시도하기

 반복되는 패턴을 인식하고 원인을 이해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선택을 의식적으로 시도해야 합니다. 반복강박은 무의식적으로 익숙한 패턴에 안주하려는 심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진짜 내가 원하는 선택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 질문하고, 작은 변화라도 실제 행동에 옮기는 연습을 해보시길 권합니다.

 늘 비난하는 사람에게 이끌렸다면, 이번에는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보세요.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폭식했다면, 산책이나 친구와의 대화처럼 다른 건강한 대처법을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안할 수 있지만, 이러한 작은 시도들이 반복강박의 악순환을 조금씩 끊어내는 힘이 될 것입니다. 반복강박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오셨다면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으로 나아가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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