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4세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우선 저의 가정사를 이야기해 보자면 부모님은 정말 절 사랑해 주시고, 저도 많이 의지하고 사이가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두 살 위 오빠가 있는데, 어린 시절부터 사고도 많이 치고 변변한 직업도 없이 빚도 많이 지고 있는 상황인 걸로 압니다. 저와는 2년간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을뿐더러 제가 스무 살 때 오빠의 빚을 갚아 주느라 부모님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스트레스가 쌓이다 못해 터져서 어쩌다 보니 일 년간 가족을 떠나 먼 곳에서 살 기회가 생겼습니다. 처음엔 얼굴을 보지 않으니 행복하더라고요. 그런데 여섯 달이 지났을 무렵, 공황장애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에 갑자기 숨이 막혀 오며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급하게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 약 2년간 병원을 다니며 약물치료를 하였습니다. 현재 약 복용은 하고 있지 않고, 예전과 같이 일상생활엔 문제가 없을 정도로 돌아갔습니다. 부모님은 최대한 오빠의 상황을 저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려 하지만, 한 집에 사는 한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고 그때마다 다시 공황 발작이 옵니다. 

솔직히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오빠 문제, 취업 문제 전부 다 제게는 벅찹니다. 다만, 제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과연 ‘저만의 욕심으로 제가 삶을 그만둔다면, 남은 부모님은 과연 멀쩡히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저만 바라보고 사는 듯합니다. 막상 저는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부모님에게 조금이라도 행복을 드리고 싶어 그냥 빨리 취업하고 싶어 하는 척, 행복한 척을 합니다. 

이 생활이 계속되니 저도 너무 지치고 잠도 제대로 못 잔 지 몇 개월째입니다. 자기 전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기조차 어렵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머릿속에 계속해서 수많은 생각이 떠다닙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아 질문을 드립니다. 제가 독립하는 게 맞는 걸까요? 취업도 하기 전에 독립을 하려니 경제적인 상황이 우려됩니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면 도와주시긴 할 테지만 말을 꺼내기가 무섭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 감사합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 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현재 대학교 졸업을 앞두신 상황으로 취업과 독립, 가족에 대한 고민 등이 있으시네요. 특히 한 집에 살고 있는 오빠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부딪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공황 발작까지 일어난다고 하니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아무래도 학교 졸업과 취업 문제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으실 텐데, 함께 사는 오빠와도 편안하게 지내지 못하다 보니 오빠와 마주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 등이 올라와서 더욱 괴로우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취업 스트레스나 가족 문제로 인한 어려움만큼이나 걱정되는 것은 사연자님께서 현재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이 그 어떤 것에도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는 점입니다.  

사연에 올려 주신 내용만으로는 취업 문제나 가족 관계 외에 사연자님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하여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답변을 드리는 데 한계가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만, 현재 몇 개월째 불면증이 지속되고 있는 점과 이러한 불면증을 알코올에 의존하고 계신 점, 일상생활에서 의욕을 잃고 자살에 대한 사고가 나타난다는 점 등 우려되는 측면이 엿보입니다. 또한 다시 공황 발작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더욱 염려가 됩니다. 

 

여기서 사연자님께 말씀 드리고 싶은 부분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현재 사연자님께서 겪고 계시는 어려움들, 공황 발작 재발 및 불면증, 알코올 의존 문제, 의욕 없음 등의 측면을 고려해 보았을 때,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소에 방문하시어 면밀한 상담과 정확한 진단 후에 필요한 경우 치료나 상담을 받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현재 겪고 있는 의욕 저하 및 자살 사고 등도 함께 짚어 보신다면 좀 더 실제적인 조언과 도움을 받으실 수 있으리라 판단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알코올에 기대어 불면증 문제에 접근하는 지금의 방법은 적절치 않으니 보다 근본적인 불면의 원인을 찾아 이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보통 불면의 원인이 되는 뚜렷한 신체적, 정신적 질환 없이 수면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를 ‘일차적 불면증’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잘못된 습관이나 환경 혹은 잠에 대한 왜곡된 생각들이 존재하는지 살펴보아야 하는데, 일차적 불면증 중에서 잠에 대한 강박적 수준의 염려가 있어 잘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욱 긴장하면서 잠들기가 어려워지는 경우를 ‘정신생리적 불면증’이라고 합니다. 

정신생리적 불면증을 겪고 계신 분들은 ‘어떻게 하면 잘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잠들기 위한 방법을 찾아 노력하지만 실패가 계속되면서 잠들 시간이 다가올수록 자신도 모르게 불안해져 결국 피곤하지만 잠들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곤 합니다.

이와 같은 일차적 불면증에서는 수면에 대한 왜곡된 생각과 수면에 악영향을 미치는 수면 습관들을 살펴보고 개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지금은 사연자님께서 생각의 양도 많고 자극에도 취약한 상태일 수 있으니, 잠들기 전에는 되도록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고, 격렬한 운동이나 움직임도 피하셔야 수면에 필요한 멜라토닌 분비에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침이나 오전 시간대에 햇빛을 받으며 산책하거나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또 카페인이 포함된 음식(커피, 콜라, 녹차, 초콜릿 등)의 섭취량을 줄이시고, 침실 환경은 조용하고 어둡게 유지하며, 적절한 온도 유지에도 신경을 써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가능한 한 규칙적으로 유지하고, 밤 10시부터 오전 7시 사이에 약 7~8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는 것을 이상적인 수면 사이클로 봅니다. 이러한 다방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면증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문의와 상의하에 소량의 수면 관련 약물을 함께 복용하는 것도 불면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두 번째는 오빠와의 관계 및 독립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까 합니다. 현재는 사연자님께서 한 집에서 오빠와 마주칠 때마다 혹은 오빠와 관련된 문제로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마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활성화되거나 이로 인한 에너지 소모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부모님과 상의하셔서 독립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만약 물리적으로 부모님과 멀리 사는 것이 사연자님의 마음의 안정감을 떨어뜨린다면, 너무 멀지 않은 곳에 거처를 얻고, 전화 통화든 한 달에 몇 번이든 부모님 집에 자주 왕래하면서 부모님을 뵙고 소통하는 것으로 이 부분은 충분히 충족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연상에는 현재 사연자님께서 오빠와 한 집에 살면서 서로 어떻게 지내고, 소통하고 있는지 잘 나와 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거의 대화가 없다시피 지내고 계신 것으로 추측됩니다. 오빠 분께서 어린 시절부터 사고도 빈번하게 일으키고, 변변한 직업도 없이 빚까지 지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또 집안 분위기까지 어둡게 하는 현재의 상황이 많이 답답하시리라 짐작됩니다.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오빠가 밉고 또 한심하게 생각될 수도 있으실 것 같고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연자님도 또 오빠 분도 부모님께는 똑같이 소중하고 사랑하는 자녀라는 것입니다. 같은 자식으로서 또 형제로서 한 번쯤 그동안 오빠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표현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오빠에 대해 걱정되는 점이나 서운한 점 또는 바라는 점, 격려와 지지의 표현도 함께 표현해 보세요.

어느 것이 진정 오빠의 인생을 위해 도움이 되는 방향일지 가족 회의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허심탄회하게 속마음도 털어놓는다면, 가족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때 유의할 점은, 오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나 비난보다는 ‘나 전달법(‘I-message)’을 통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가족들이 오빠에 대해 좀 더 지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입장과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오빠의 삶과 미래를 걱정하고, 필요한 경우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죠.  

이렇게 사연자님께서 할 수 있는, 또 해 볼 만한 몇 가지 노력과 시도를 한 후에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가족에 대한 부담감이나 책임감,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등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사연자님께서 가족과 관련해 애초에 짊어져야 할 부채감 같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 그 누구도 타인의 인생에 갚아야 할 빚 같은 것은 없으니까요. 다만, 가족으로서 내가 돕거나 정서적으로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서로에게 감사한 일일 뿐이죠. 이렇게 해서 이제부터는 오빠를 포함한 가족들에 대한 심적 부담감이나 스트레스는 내려놓고 사연자님의 인생에 집중해 나가야 합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세 번째는 사연자님께서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고, 인생의 여러 영역에서 자기 관리를 해 나가는 문제입니다. 사연자님께서 현재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의욕이 없는 상태는 무기력함에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무언가를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연자님께서는 오빠 문제, 취업 문제 등 자신 앞에 놓인 인생의 문제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것에 압도당해 스스로 이것들을 해결할 힘도, 또 해결할 의지도 없다고 단정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러나 사연자님께는 분명 이것들을 헤치고 나아갈 잠재된 힘이 있을 것입니다. 스무 살 무렵, 오빠를 돕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가족을 떠나 독립적으로 생활해 보기도 하며, 공황장애가 오자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등 스스로를 지키고 또 적절하게 대응하며 지금껏 지내오신 것을 보면 말입니다. 

지금 잠시 여러 문제들이 무겁게 뒤엉켜 있다고 여겨져 혼란스러울 뿐 이것들을 차근차근 풀어 나가고 접근해 간다면, 다시 사연자님 내면에 간직한 힘을 발휘하며 지금의 어려움들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말이죠. 

사연자님께서 혼자만의 안식처를 즐기고, 내면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채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 활동은 무엇이 있는지 곰곰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하루에 한 번은 내면을 재충전할 시간을 따로 마련하고 실천해 보는 것으로 인생에 대한 의욕을 되찾는 걸음을 시작하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그것이 명상이든 독서든 산책이든 반신욕이든 요가든 그 무엇이든지 사연자님의 내면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채울 수 있는 것들을 한두 가지씩 시도해 보고 또 늘려 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차분해진 상태에서 사연자님께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가치관과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런 후에 사연자님의 인생 영역을 한번 세세히 나눠 보세요. 신체적 건강, 마음의 건강, 취업이나 미래, 가족이나 인간관계 영역, 좋아하는 활동이나 취미,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이나 경험, 현재의 생활 패턴, 좋은 습관, 나쁜 습관, 유지하면 좋을 습관, 바꿔야 할 습관 등등. 다방면으로 영역을 나눈 후에 큰 그림과 세부적인 그림을 그려 보고, 그 그림을 채워 가기 위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까지 장기적으로 어떻게 이루어 갈 수 있을지 노트에 정리해 보는 거죠.

물론, 이런 그림이 하루아침에 그려지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무엇보다 하면 좋을지 잘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또 야심 차게 계획했던 일들이 작심삼일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삶의 방향을 설정했고, 언제든지 그 방향은 수정될 수도, 또 속도가 조절될 수도, 중간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 수도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사연자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연자님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나 부담감에서도 자유로워지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께서 사연자님께 진정 바라는 것은, 자녀가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 행복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일 테니까요. 사연자님에 대한 부모님의 진심과 사랑을 믿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택할 때 부모님께서도 사연자님께 더는 바라는 것이 없지 않을까요. 저희도 사연자님의 자유와 행복을 응원하겠습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전문의 홈 가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