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 역사다.”

                               - 카를 구스타프 융

 

사진_ '멀홀랜드 드라이브' 스틸 컷
사진_ '멀홀랜드 드라이브' 스틸 컷

 

스타를 꿈꾸는 한 여자가 있다. 캐나다의 스윙 댄스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여자는 배우로서의 화려한 삶을 꿈꾸며 할리우드에 도착한다. 영화 오디션장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영화감독과 또 다른 여자와도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체할 수 없는 배신감과 치욕감에 휩싸인 여자는 청부업자를 시켜 사랑하는 여자를 죽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괴로워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떠난다. 이 지독하게 섬뜩한 애증(愛憎)의 굴레. 여자의 이름은 다이안, 혹은 베티. 여자가 사랑한 다른 여자는 카밀라, 혹은 리타.

1970년대 컬트 무비의 대명사였으며 이후 제도권으로 성공적인 진입을 보인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은, 화려하고 조화로워 보이는 미국 사회와 중산층의 어두운 이면을 그로테스크한 영상 언어로 직조해 낸다. 그의 영화들에는, 늘 빠짐없이 등장하는 기괴한 느낌의 난쟁이부터, 기형의 인간에 이르기까지 온갖 추악하고 일그러진 대상과 상황들이 포진해 있다. 이런 비정상성은 자본주의 사회의 추악한 속성과 가족제도 균열의 징후를 상징하는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확대경을 통해 들여다보면, 인간 내부에 음험하게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폭력성의 궤적에 대한 계통도를 제시하는 장치다.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보여주는 린치 식 세계의 주요한 구성물 역시 그 비정상성이다. 단, 그 비정상성은 <멀홀랜드 드라이브> 이전 영화들에서 짐승을 닮은 아기 등 구체화한 시각적 이미지로 구축된 반면,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는 시공간에 대한 균열과 무의식의 시각화로 제시된다. 그것은 관객들에게 고도의 신경증적 강박을 불러일으킬 만큼 혐오스럽고 고통스러운 긴장감을 시종 요구한다.

 

사진_ '멀홀랜드 드라이브' 스틸 컷
사진_ '멀홀랜드 드라이브' 스틸 컷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칸 영화제에 최초로 공개됐을 당시 난해하다는 평자들의 반응에 린치는 논리가 아닌 직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역설했다. 그러나 그 직관조차 린치만의 기이한 주술적 주문만으로도 유효하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그 주술적 주문의 제1장은 환상과 현실의 이분법을 무효화하는 ‘악몽’이다. 사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내러티브상 해결할 수 없는 몇 가지 미스터리들을 담고 있다. 그 미스터리들의 불가해성은, 초반에 배치된 여러 이야기가 사실은 종반에 이르러 모두가 꿈 혹은 환상이었다는 고백에 의해, 그리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고 혼란스럽기만 한 몇 개의, 삽입된 에피소드들에 의해 배가된다.

이처럼 꿈 혹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의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아버린 이 괴이한 게임의 판에서 논리적 이해는 유효하지 않다. 결국 그녀, 그러니까 다이안/베티가 꾸는 꿈 혹은 환상과 현실의 이질적 조합을 통해 데이비드 린치는 무의식의 영토에서 펼쳐지는 섬뜩한 내적 욕망의 드라마를 보기 좋게 빚어 낸 것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마지막 장면. 베티/다이안과 리타/카밀라가 한밤중에 달려갔던 클럽에서 푸른색 머리를 한 미지의 여인이 ‘실렌시오(silencio)’를 나직이 읊조린다. ‘침묵’을 뜻하는 스페인어 ‘실렌시오’는, 데이비드 린치가 보여주는 악몽이라는 이름의 ‘시니피앙(signifiant)’이기도 하다. 실재와 꿈 혹은 환상을 연동하는 장소인 클럽 ‘실렌시오’는 그러므로,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중요한 공간인 셈이다. <이레이저 헤드>의 라디에이터나 <로스트 하이웨이>의 고속도로와 같은.

 

클럽 ‘실렌시오’ 시퀀스 이후 급격하게 균열하는 내러티브는, 뚜렷이 구분되는 현실의 비극과 더욱 몽환적인 꿈, 혹은 환상이라는 무의식 사이의 척력(斥力)에 의해 더욱 공고화된 악몽을 드러낸다. 다이안의 꿈 혹은 환상이 실재로 전이되는 매개체인 파란 상자와 열쇠. 베티/다이안과 리타/카밀라가 클럽 ‘실렌시오’를 나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상자를 들고 있던 베티/다이안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까닭 모를 두려움에 휩싸인 리타/카밀라가 상자를 열었을 때 카메라의 시선은 상자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심기 불편한 암전.

이제 영화는 실재계로의 귀환이 이어진다. 꿈 혹은 환상의 세계보다 열 배쯤 더 악몽 같은 세계로 말이다. 꿈 혹은 환상에서 깨어난 다이안에게 기괴한 모습으로 달려드는 노부부와 윙키스의 몬스터.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레퀴엠>에서의 스멀스멀한 공포,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스파이더>에서 보여 준 미니멀리즘적 불안이 연상되는 이 장면은 현실을 괴물에 비유하길 좋아하는 데이비드 린치 영화의 과격하고도 낯익은 결말과 똑같다. 데이비드 린치의 악몽은 비로소, 또 한 번 완결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통해 린치는 꿈 혹은 환상과 실재 사이의 괴리, 성취와 좌절의 잔상들에서부터 할리우드적 시스템의 검은 이면에 대한 적나라한 조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의 악몽을 아로새겨 놓았다.

한 평론가의 언급처럼 포스트모더니즘 무비의 선두주자로서 린치는 할리우드 중독을 치유할 유일한 처방전일지도 모른다. 늘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통로를 남겨 둔 채 둔중한 울림만을 결말로 제시하는 그의 영화들이 매혹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글| 박실비아 기자 

도움말|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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