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도 목적 없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최근 엄마들에게 화제인 드라마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린마더스클럽입니다. 이 드라마는 초등커뮤니티를 둘러싼 엄마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학부모들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이요원(이은표 역)은 가방끈이 긴 엘리트이지만, 불의의 사건에 휘말리면서교수직에서 밀려납니다. 한편 교육열이 높은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자녀 사교육 커뮤니티에서는 도통 자녀 교육에는 관심 없어 보이는 신입맘 취급을 받게 되지요.
그리고 자녀와 같은 반 친구의 엄마이자, 동네에서 최고의 핵인싸 타이거맘인 추자연(변춘희 역)과의 첫 만남부터 뭔가가 꼬이면서 계속 부딪히게 됩니다. 거기다 오랜 인연인지 악연인지 알 수 없는 학창 시절 친구인 김규리(서진하 역)가 등장하면서 엄마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면서 팽팽한 심리전이 시작됩니다. 같은 반 엄마들인 동시에 과거부터 얽히고설킨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사진_JTBC제공
사진_JTBC제공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그리고 그 아이가 학령기 아동의 경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엄마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거나 길을 잃고 헤매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관계는 대부분 호의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좋은 관계들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렇겠지만, 여기에는 특수한 역학관계가 작용합니다. 바로 엄마들과의 관계는 물론, 아이들과의 관계까지 엮이면서 무수한 변수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엄마들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관계를 형성합니다. 바로 내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지요.

비록 그렇더라도 엄마들 역시 감정을 느끼는 한 인간이기에 서로의 관계에서 호감을 갖거나 인간적인 신뢰와 우정을 쌓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처럼 좋은 관계도 언제든지 금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아이들까지 엮인 관계이다 보니 소위 쿨하게 ‘손절’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번 금이 간 관계는 쉽게 회복되기도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출구가 안 보이는 미로 속에 갇히는 기분입니다.

이처럼 적일 수도, 동지일 수도 없는 엄마들과의 미로 속 같은 관계, 과연 출구는 있을까요?

대인관계 이론으로 유명한 설리반sullivan 교수는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개인의 성격, 불안, 자아체계, 성격 양상, 성격 방어 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성격이 대인관계 상황을 비교적 지속적으로 패턴화한다고 했습니다.

대인관계 이론에서 핵심 개념인 불안은 모든 종류의 정서적 고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초조함, 죄책감, 수줍음, 두려움, 무가치함, 혐오감 등의 고통스러운 감정이 불안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은 우리가 흔히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느낄 수 있는 정서이지요.

만약에, 누군가가 내면에서 불안을 경험하면, 이 불안은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불안은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직장 동료와 사이가 좋지 못할 때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특정한 엄마와 만날 때마다 괜히 불편한 마음이 들고 불안감이 느껴진다면, 상대 엄마와의 관계에서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혹은 상대 엄마의 개인적인 성격 특성이 나의 내면의 취약한 어느 부분을 자극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가져오는 원인이나 개인적인 성격 특성, 상황적인 면 등 다양한 요인이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의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갈등에는 어느 정도 패턴이 존재합니다.

 

엄마들 간의 갈등에도 패턴이 있다
일단 아이들을 매개로 새로운 엄마를 알게 됩니다. 상대방 엄마와 대화가 잘 통하고, 괜찮은 사람인 것만 같아 급속도로 친해지면서 일상과 감정을 공유할 만큼 자주 만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상처받는 일이 생기거나 서운함이 쌓여 상대에게 실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급속도로 멀어집니다. 이처럼 급하게 친해지고, 급하게 멀어질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섣부른 판단은 오해였던 것입니다.

1. 너무 급하게 친해지지 말 것
개인적인 이야기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인지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서서히 친해지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습니다.

2. 멀어질 때도 천천히
갈등의 상황에서 감정을 폭발시키고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면, 좁은 동네에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가기 마련입니다. 소문은 돌고 돌아 당사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돌아올 테지요. 데미지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감정은 최대한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면서 천천히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3. 갈등의 불씨를 방치하지 말 것
상대 엄마와의 관계에서 어느 순간 ‘쎄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때 그냥 묻어 두지 말고, 혹시 기분 상한 일이 있는지 솔직하게 물어보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해가 있다면 풀면 됩니다. 작은 불씨가 큰불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할 것
사실 가족 간에도 적당한 심리적인 거리감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핏줄도 아닌 아이를 매개로 맺어진 엄마들과의 관계에서 기대가 크다 보면, 그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가깝게 지내면서 매일의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다 보면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게 되고, 갈등의 불씨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5.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도 있을 수 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관계는 쌍방향적입니다. 문제나 갈등의 원인이나 책임이 상대 엄마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애초에 서로가 성격이 정말 안 맞거나, 나에게도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실마리가 있는지 자기점검을 해볼 필요도 있다는 말이지요.

설리반은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5단계로 접근해 치료하고자 했습니다.
1. 현재 또는 최근의 대인관계, 특히 내담자가 오랫동안 관계 맺어온 대인관계를 탐색한다.
2. 과거의 대인관계를 탐색한다. 부모, 형제, 어릴 적 친구, 이성친구 등이 포함된다.
3. 내담자의 직접적인 대인관계에서의 위기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4. 장래의 대인관계에 대해 논의한다.
5. 내담자-치료자 관계를 탐색한다.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최근의 대인관계나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온 대인관계, 특히 주요한 대인관계(부모, 형제, 친구 등)에 대해 탐색해 볼 것을 권합니다. 대인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요인이 외부에 특정한 상황이나 상대방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내면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인지 대인관계의 위기 상황을 기회로 삼아 내면이 한층 더 성장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엄마들 간의 관계는 독특합니다. 엄마들은 아이나 남편, 시댁과 친정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여자와 엄마, 딸로서의 고민과 혼돈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지이지만, 아이를 중심으로 이해관계나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적으로 돌아설 수 있는 양날의 검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성격을 가진 엄마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보세요. 엄마들과의 관계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혹시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허비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좋은 사람은 절대로 내 흉을 볼 리가 없습니다.
만약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될 때는 아이 스스로 친구들과 관계를 잘 형성해 나가도록, 엄마로서 아이에게 내면적인 힘을 길러 주는 게 더 필요합니다. 엄마가 직접 나서서 아이 친구들의 엄마와 반드시 깊은 관계를 이어 나갈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처음부터 너무 철벽을 칠 필요도 없습니다. 엄마들과의 관계에서도 정말로 좋은 육아 메이트, ‘찐친’이 될 만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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